사설
총회 회의 과정의 성숙을 염원한다
103회 총회가 출발했지만 크게 달라진 여건은 없다. 지금까지 함께 고민했던 숙제들은 여전히 안고 가야만 하고 이전 총회의 성과들은 더욱 발전 승화시켜 나가야 한다. 아울러 이번 총회의 현장을 보면서 앞으로의 논의의 성숙을 위해 생각해 볼 사안들이 있다.
먼저, 절차상 시간 단축을 위해 다각도의 노력이 있기를 바란다. 첫날의 공천위원회, 헌의부, 서기, 총무 보고를 비롯하여 각 상비부의 조직 보고 등은 ‘회의 절차 및 보고서’를 참고하며 최대한 간략히 하는 것이 좋겠다. 본격적인 논의가 필요한 때에는 정작 시간이 없어서 쫓기는 모습이 안타깝다. 모두가 시간에 예민해지다 보니 의견이 있어도 개진할 여유가 없고 그저 급하게 지나치는 경우가 생긴다. 그 여파로 여러 총대들의 자유롭고 충분한 토론이 진행되지 못했고 의장의 회의 진행도 다소 난항을 겪었다. 이는 총회의 본질과는 거리가 먼 모습이다.
또 한 가지는 총대들의 다양하고 적극적인 의견 발표가 이루어지길 바란다. 각 노회에서 총대로 선출하여 맡긴 총회의 한 의석은 영광스럽고 막중한 사명을 지닌 자리이다. 딱히 공감을 얻지 못하는데 불필요한 발언을 반복하는 것은 문제이지만 뭔가 의견이 있음에도 그저 조용히 있다가 가는 것이 덕망 있는 자세라고 여긴다면 그것은 심한 오해이다. 우리는 종교개혁 당시에 지금으로서는 사소하다 싶은 문제에도 열띤 논쟁을 벌인 신앙의 선배들의 역사를 잘 안다.
총회에서의 논쟁이란 부도덕한 일이 아니고 가장 성경적이고 합법적인 결론을 함께 찾아가는 당연한 과정일 뿐이다. 물론 신앙인이요 그리스도 안에서 동역자로서의 인격적인 품위와 예의를 지키는 것이 상식이지만 우리 총회는 총대들의 좀 더 자유롭고 능동적인 회의 참여가 더욱 절실하다. 논의 과정상의 갈등의 표출은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라 지혜롭게 극복할 대상이다. 우리는 성경에서 베드로와 바울, 바울과 바나바 간의 일종의 갈등을 보기도 한다. 반총회적이고 상호 배타적인 혐오나 파괴적인 아집의 표출이 아니라면 때때로 발생하는 긴장과 갈등은 자연스럽게 생각해야 한다. 그런 논쟁 속에서 토론의 성숙도를 높여 가는 총회가 되어야 한다. 무조건적인 압도적 찬성과 집단적 쏠림의 문화가 꼭 바람직한 건 아니라는 뜻이다.
이와 더불어 여전히 몇몇 총대들의 집중적이고 빈번한 발언으로 형평성의 문제를 야기하는 것은 답답한 모습이다. 화목과 건덕을 위해 드러내어 표현하진 않지만 그런 모습에 식상하고 피로감을 느끼는 총대들이 많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다. 아무리 옳고 좋은 의견이라도 같은 종류의 답변이나 의견 개진이라면 개인적 발언 의욕을 절제하도록 하고 가급적 평소에 의견 개진을 한 적이 없는 새로운 총대들에게 기회를 주어야 한다. 매회 몇몇 총대들에게 편중되는 발언은 그들을 소위 ‘총회 발언 전문가’로 만들어 마치 그들이 최종적 전문가요 그 의견만이 가장 옳은 것처럼 보이게 하는 착시 효과를 일으킨다. 일면 그런 전문가도 필요하다는 인식도 있지만 이런 무언의 압박이 있는 분위기에서는 여러 총대들, 특히 처음 선출되어 참석한 총대들이나 후배들이 좋은 의견을 발표할 기회를 갖기 힘들다. 방안을 강구하여 어떡하든 반드시 건설적으로 개선되어야 할 부분이다.
지금까지의 역사를 돌아보면 비교적 인격적이고 상호 배려심이 좋은 편이라 할 수 있는 우리 총회이지만 이번에는 어느 부분 아쉬움을 보인 것도 사실이다.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사전에 좀 더 면밀하고 심도 깊게 연구하고 준비해서 발표하는 진중성의 미흡함도 한 이유라 본다. 회의 도중 ‘긴급’이라는 명목의 선언문을 채택하려는 시도는 안타까웠다. 역사에 남을 ‘문장’으로 발표될 무려 7개 항의 중요한 내용을 사전에 총대들이 면밀히 살펴볼 필요충분한 시간을 주지 않고 현장에서 급히 채택한 과정은 바람직하지 않았다. 더구나 완성되지도 않은 문안으로 총대들의 결의를 서둘러 먼저 받고 후에 수정해도 된다고 하는 방식은 심히 우려할 만한 일이다.
또한 이단사이비대책위원회의 보고를 통해서도 이런 복합적인 문제점이 노정되었다. 보고를 옹호하는 측이나 그에 이의를 제기하는 측이나, 몇몇 총대들의 지적대로 객관적 사실과 그것이 성경에 의거하여 어떻게 문제가 되는지를 총대들에게 개진하는 면에서 더 강한 명증성과 보편적 설득력이 필요했다.
이단사이비대책위원회의 노고와 성과를 폄하할 수는 없다. 누군가는 할 일이고 더구나 총회의 부름을 받은 사역이며 그것은 여러 면에서 예민한 일이요 또 쉽게 비난과 공격의 대상이 되는 일임도 잘 알고 있다. 그렇지만 바로 그런 점에서 더 신중하고 촘촘한 근본적 연구와 철저한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것도 분명하다. 신학연구위원회와의 더 밀착된 동역을 통해 오류를 최소화하고 더 치열하게 미리 준비하는 과정이 꼭 필요하다.
앞장서는 몇 사람의 의욕으로만 분별하고 판단하며 더구나 이를 너무 빠르게 글로 결론을 조직화하고 발표하는 일은 상당한 위험성을 내포한다. 단어 하나 문장 한 줄의 중차대함은 말할 나위없다. 꼭 모든 면에서 점검과 감수의 과정을 미리 거쳐 대표성을 스스로도 확보해 주기를 바란다.
모쪼록 103회를 기점으로 더욱 논의의 성숙과 도약이 현저한 총회가 되기를 염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