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며 섬기며
일기당천 一騎當千
< 이대원 목사_제주선교100주년기념교회 >
한 영혼이 세상의 일천 명과 방불한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선한 영향력을 끼치며 살아가게 하는 것이 복된 목양의 목표
젊은 시절 군대 훈련소에서 자대 배치를 받고 신고식을 치르기 위해 긴장 속에 연병장에 대기하던 중 큰 돌판에 쓰인 글자가 눈에 들어왔다.
‘一騎當千 대통령 박ㅇㅇ’
내가 근무할 부대의 역량을 일러 주는 글귀라 하겠다. 한 명이 천 명을 상대로 싸워서 승리할 수 있는 강력한 부대의 정신을 고무시키는 사자성어였던 것이다.
“아~~ 이제는 죽었구나!” 하고 긴 한숨을 토해낸 기억이 있다.
우리 합신 총회에서 마음과 뜻을 모아 제주선교100주년기념교회를 설립하여 부족한 필자가 이 교회를 섬긴 지도 어느덧 한해를 훌쩍 넘겼다. 그동안 아주 미세하지만 변화가 생기고 계속 일어나고 있다.
제주도는 무속신앙이 뿌리를 깊이 내리고 있고 가족, 친족 간의 전통과 유산이 매우 강한 소위 궨당문화(眷黨文化)가 정착된 곳이다. 궨당이란 제주 토속어로 친인척을 가리키는 말이다. 따라서 한 마을이 대부분 혈족관계로 뭉쳐 있고 섬 전체가 특유의 배타성이 강해 한 영혼을 전도하기란 여간 만만치 않은 특수한 지역이다. 게다가 언젠가 필자가 언급했듯이 현대사의 질곡 중의 하나인 4.3 사건 이후 아픔의 골이 깊어져 타지인과 소통하는 일조차 상당히 버겁다. 그 역시 복음 전도에 큰 걸림돌이 된다.
이런 제주에 섬김이로 오면서 생각했다. 한라산을 오르는 길목에 자리한 교회당 주변에 민가라고는 딱 한 채뿐인 이곳 교회를 과연 어느 누가 찾아올 것인가? 적잖이 걱정이 되었었다.
그러나 지금도 여전히 일하고 계시는 하나님께서는 믿음 없는 나를 부끄럽게 만드셨다. 1년이 되어 원근각처에서 부르신 15여 명의 영혼들을 교회에 채우셨다. 자발적으로 등록하여 기독교 신앙이 어떤 과정을 통해 풍성해지는지 말씀과 교제 속에서 사이다가 튀듯 이전에 경험하지 못한 또 다른 즐거움을 맛보고 있다.
이들을 볼 때마다 바로 그 ‘일기당천’이라는 글귀가 떠오른다. 한 영혼을 숫자로 보고 계수 하는 것만큼 위험한 것은 없다. 목회하면서 한번쯤 유혹받는 생각들이다.
어쩌면 우리는 숫자에 매우 민감하여 자타에 의해 성공한, 혹은 실패한 목회자라는 자랑과 자책하는 자리에 있지는 않은지 돌아볼 일이다.
햇병아리 목회 초년병 시절에 내게는 평생의 영적 스승이신 박영선 목사께서 항상 해 주시던 말씀이 지금까지 내 귓전과 가슴에서 떠나지 않고 있다.
“하나님께서 목사를 먹여 살리기 위해 성도들을 불러 모으심이 아니고 피로 값 주고 사신 양들을 먹이고 살찌우게 하기 위해 목사를 세우고 보내신다.” 는 말씀이다.
교회에 모인 한 영혼이 하나님의 시선에는 어떻게 비추어지실까? 내 눈과 가슴에는 마치 일천 명처럼 다가온다. 아니 그 이상이다. 너무나도 귀하고 소중한 영혼들이다. 단 한명의 영혼을 위해서라도 우리 주님은 기꺼이 가장 낮은 자리에 오셔서 십자가에 죽으심을 결코 외면하시거나 포기하지 않으셨으리라.
한 영혼이 세상에서의 일천 명과 방불한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선한 영향력을 끼치며 이 땅에 하나님나라를 편만케 하는 삶을 살아가는 자리에까지 이르는 것. 그것을 목표로 목양하고 도우심을 구해야 함이 목사에게 주신 가장 복된 사명이요 명예요 영광인 것이리라.
또한 내 자신도 철옹성과 같은 세상 세력 일천 명을 상대하여 싸울 수 있는 영적 맷집과 실력을 쌓는 일에 부단한 훈련과 인내와 수고를 경주해야 한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너 오늘 목회 그만 두어라.” 하시는 날까지, 아니 호흡이 다하는 날까지 모든 어려움들을 감내해야 할 것이다.
일기당천의 믿음의 현장에서 전쟁을 목전에 둔 다윗을 위한 백성들의 간절한 외침을 두고두고 가슴에 새긴다.
“어떤 사람은 병거, 어떤 사람은 말을 의지하나 우리는 여호와 우리 하나님의 이름을 자랑하리로다”(시2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