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유하고 공유하며
< 변세권 목사, 온유한교회, 강원노회장 >
사유하고 공유하며 하나님이 역사
속에서 진행하시는 말씀에 순종하자
우리는 커다란 시대적, 사회적 아픔을 겪고 다시 아무도 가 보지 않은 미래의 길을 의심과 불안, 염려와 걱정으로 나아가고 있다. 그러나 거기엔 분명 희망도 있다.
그동안 우리는 속 깊은 성찰의 시간들을 보내 왔다. ‘탁월한 사유의 시선’을 쓴 인문학자 최진석 교수는 ‘성숙한 개인은 자신의 개인적 성숙을 통해서 이미 사회적 역할을 하는 것이다. 독립된 주체가 발휘하는 인문적 용기는 문명이나 국가, 인간이나 인류의 방향과 관련되는 일이므로 이미 사회적이다.’ 라고 말한다. 박영선 목사는 ‘기독교 신앙은 사적 영역에서만 작동하는 것이 아니라 공적 영역에서도 작동해야 한다. 지금까지 개인적 차원에서만 해명되었을 뿐 사회적 차원으로 확장하지 못했다’라고도 했다.
우리는 이런 사회적 혼란기에 개인적 사유의 높이와 깊이를 사회적 공유의 가치와 삶으로 나누고 함께하며 실천하는 자리에까지 왔다. 이런 것들은 거대한 명제나 명분, 구호나 주장이 아니라 기본적이고 원칙적인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이런 과정에서 언어의 훈련, 지성의 훈련, 혼란의 훈련을 잘 연습해야 한다. 우리는 지금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교육 등에서 다시 태어나야 하는 기회를 맞고 있다. 힘들고 어려운 환경일수록 이 모든 조건과 환경을 이겨내고 나아가는 실력 있는 시민이고 신자여야 한다.
성경의 모든 선지자들과 신앙의 선배들 다수가 한심하고 낯선 이방 적국에서 그들의 신앙이 성장했다. 칼빈도 정치적으로 가장 취약했었던 제네바의 불안한 사회배경에서 제네바 교회의 신앙고백서를 작성하고 교회법을 제정했다. 심지어 사무엘도 엘리 제사장의 무력한 시대에 태어나 성장했다. 우리는 지금 무엇이 잘 되는 것인지, 무엇이 좋은 것인지 알 수 없는 시대를 살고 있다. 우리는 그동안 예수 그리스도를 잘 믿는다는 것이 무엇인지 제대로 배울 틈이 없이 앞만 보고 달려왔다. 일찍이 교회는 영향력은 있을지언정 권력을 가지면 안 된다는 것을 중세 교회에서 배웠다. 이제는 종교적인 기능과 역할에만 머무는 신자가 아니라 그 시대의 상식과 문화, 사회적 흐름을 알고 표현하는 앞뒤 문맥을 가져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나라의 사회적 책임은 한국 교회의 수준과 함께 가기 때문이다.
우리는 종교인 수준에만 머물지 말고 인간의 보편적 호소와 삶으로 나아가는 인문학적 소양도 필요하다. 사람은 잘해서 얻는 결과보다 못해서 얻는 결과가 더 크다. 잘못한 것이 좋은 결과를 만들어 낸다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잘못한 것으로 하나님이 담으시는 것은 잘해서 담는 것 그 이상의 것이 된다는 뜻이다.
물론 잘해야 한다. 잘하는 것은 우리의 명예이기 때문이다. 반면 우리가 잘못하면 불명예이지만 그것이 역설적으로 훨씬 많은 것을 만들어 가기도 한다. 그것마저도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기회가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잘못을 딛고 다시 잘하면 된다. 우리 어떻게 다시 살아가 볼까? 그것은 더 이상 욕심을 내지 말고 우리의 실력만큼 오늘 하루와 이 시대를 살면 되는 것이다.
사람은 이런 과정을 거쳐야 행복하다. 여기를 통과할 줄 아는 인문학적 자세를 가져야 한다. 그것은 인간에 대한 이해, 안목, 용서, 분별… 이런 것들이다. 이것이 인간성을 구성하는 가장 본질적인 내용이다. 교회와 사회의 난국 속에서 우리는 인간이 게으르다는 것, 이기적이라는 것, 허영심이 많다는 것, 남의 말을 잘 듣지 않는다는 것. 이런 것들을 배우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
우리는 차제에 인간이라는 존재와 가치체계에 대해 다시 사유하고 이해해야 한다. 우리는 무엇을 만들고 해결하는 것이 전부가 아니고 무엇이 되느냐에 목적이 있다.
하나님이 우리에 대하여 섭리하시는 계시의 뜻에 긍정적으로 참여하는 자발성을 가지고 우리 신자의 인생을 담아내야 하는 것이다.
우리의 정체성은 하나님이 자기 형상으로 우리를 붙드시는 데에만 있다. 이제 우리는 경직되고 낡은 사고의 틀을 벗고 다시 한 번 우리의 정신과 가치, 물질을 나누며 공유하는 사회적 공동체로 나아갈 수 있어야 한다. 하나님의 주권은 우리의 책임을 개인적으로 감면해 주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격려하시기를 원하시기 때문이다. 세상은 변하고 권력도 변한다.
이 세상에 대단한 것은 없다. 우리는 이렇게 세상이나 교회에 대해 전체적인 배경을 이해하고 그 수준을 높이는 지성을 가져야 한다. 이제 우리 모두 말씀의 권세를 높이고 주님의 형제간에 서로 존경하는 성령의 공동체를 지향하도록 하자. 열린 마음으로 사유하고 공유하며 겸허히 하나님이 역사 속에서 진행하시는 진리의 말씀에 순종하는 교회와 세상으로 만들어 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