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원하시는 교회
< 조대현 목사, 지영교회 >
“교회가 어려움과 혼란기에 있지만 다시 진리이신 하나님께로 돌이켜야”
“교회는 말씀과 기도 이외에 어떠한 것도 첨가해서는 안돼”
목회를 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어떠하심과,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알며, 순종하며, 그분의 뜻을 늘 시인하고 이루어 드리려는 신앙적 태도를 바탕으로 해야 한다. 따라서 목회자로서 어제도 오늘도 미래에도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이다. 바울이 그의 목회 경험을 통해 아들처럼 생각했던 디모데에게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짐이니라.”는 목회적 신앙을 강조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만이 우리 삶의 가장 큰 진리요 중요한 기준이기 때문이었다.
이미 지금은 다원주의 시대로 나아가고 있다. 진리에 대한 절대성을 인정하지 않고, 하나님의 권위에 대해 도전하며, 사람의 생각으로 하나님의 절대성을 상대성으로 바꾸려는 시도가 대담하며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바울이 로마서 1:18-21에서 언급한 것처럼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금수와 버러지 형상의 우상으로 바꾸는” 일이 세상은 물론 오늘날 교회 안에서도 자연스레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후기 현대주의를 표방하는 사회에서 가치의 다양성이 허용되고 소수의 입장과 가치관일지라도 받아들이는 시대적 경향이 교회 안에도 자리 잡게 된 것이다. 이런 흐름은 종교다원주의의 신학을 만들어내었고 성경에 대한 권위와 무오성에 심각한 도전을 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런 도전은 결국 교회 밖에도 구원이 있다는 결론을 내어놓기까지 했다. 이 흐름에 편승한 신앙적 성향은 자기중심적이며, 이기적인 신앙으로 하나님의 뜻 보다는 자신의 뜻이 더 중요하다고 믿는다. 그래서 신앙의 기준을 하나님이 아닌 자신에게서 찾는다.
이러한 논리는 받아드릴 수 없다. 왜냐하면 원죄로 인해 끊임없이 발생하는 죄의 굴레 속에서 영원히 죽어야할 우리를 위하여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통해 영생을 누리며 하나님을 우리의 아버지로 섬기는 삶이 구원이란 사실을 성경이 분명하게 선언하고 있기 때문이다. 요한복음 14:6은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고 말씀하신다. 다른 종교들이 말하는 신(god)은 우리 기독교의 하나님과 비교조차 될 수 없는 존재들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거짓 신이기 때문이다. 예레미야 10:10-14에서는 “오직 여호와는 참 하나님이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이시요 영원한 왕이시라 그 진노하심에 땅이 진동하며 그 분노하심을 이방이 능히 당하지 못하느니라 너희는 이같이 그들에게 이르기를 천지를 짓지 아니한 신들은 땅 위에서, 이 하늘 아래에서 망하리라 하라 여호와께서 그의 권능으로 땅을 지으셨고 그의 지혜로 세계를 세우셨고 그의 명철로 하늘을 펴셨으며 그가 목소리를 내신즉 하늘에 많은 물이 생기나니 그는 땅 끝에서 구름이 오르게 하시며 비를 위하여 번개 치게 하시며 그 곳간에서 바람을 내시거늘 사람마다 어리석고 무식하도다 은장이마다 자기의 조각한 신상으로 말미암아 수치를 당하나니 이는 그가 부어 만든 우상은 거짓 것이요 그 속에 생기가 없음이라.”고 선언하신다.
이 시대는 하나님의 절대성 및 사도들이 전해준 십자가와 부활 신앙과, 우리 믿음의 선조들이 물려준 사도신경적 신앙고백에 도전하며 그것을 파기할 것을 요구한다. 그렇다 해도 우리는 과거 우리의 선조들이 목숨을 걸고 신앙을 지켰던 것처럼 그 복음을 지키며 우리의 후세에 전해야 할 것이다. 요한복음 17:17 후반부에서 예수께서는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라고 진실을 말씀하셨다. 예수께서 친히 증명하심으로 하나님의 말씀은 변함이 없으시고 그 자체로 생명력이 있음을 나타내셨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은 그 자체로 충족하며 우리 인생의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현재 우리나라의 교회가 많은 어려움과 혼란기에 들어있지만 이제 다시 진리이신 하나님께로 돌이켜야 할 것이다.
교회는 마태복음 16:16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라는 하늘 아버지로부터 온 정당한 신앙고백 위에 세워졌다. 바울은 디모데전서 3:15에서 이것을 “이 집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교회요 진리의 기둥과 터니라.”고 선언한다. 그러므로 올바른 교회의 표지는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을 바르게 선포함과 바른 성례와 권징의 신실한 시행이다. 교회가 교회 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이 주인 되실 때이다.
종교개혁자들이 “하나님을 하나님 되게 하라.”는 신앙으로 개혁했던 것처럼 영적전투의 최전선에 있는 목회자들이 세속적 프로그램과 무분별한 확장주의에서 떠나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교회를 통치하실 수 있도록 자리를 내어드리는 일이 그래서 중요하다.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되심은 우리가 믿어 의심할 수 없는 진리이다. 바울이 디모데에게 말씀과 기도로 목회할 것을 당부한 것은 말씀이 곧 그리스도이시기 때문이다. 그리스도를 떠나서는 목회의 의미가 없고, 기도 없이는 그것을 이룰 수 없기에 마지막 유언과도 같은 말씀을 후배 목회자인 디모데에게 당부했으리라. 그 당부는 오늘 말씀을 맡은 모든 목회자에게 동일한 유언일 것이다.
또 한 가지 목회자가 말씀과 기도로 돌아감이 시급한 이유는 바울이 디모데에게 말세의 때에 세상을 이길 수 있는 유일한 방편은 성경이라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딤후 3장). 말세가 깊어질수록 목회자와 성도들은 성경에 깊어져야 한다. 성경만이 우리를 온전하게 하여 하나님의 선하신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 교회 안에 유행처럼 번져가는 현상은 하나님에 대한 열심은 있는데, 하나님께 대한 관심은 없다는 것이다.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는데, 하나님께서 무엇을 좋아하시는 지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 성경으로 돌아가자는 것은 하나님을 알자는 것이며, 그 하나님이 어떠한 분이신지를 내 삶에서 인정하고 나타내는 것이어야 한다. 신앙의 기본은 하나님을 아는 것이다.
안다면 믿어야 하고, 믿으면 순종으로 나타나야 하는 것이다. 순종 없이 ‘하나님을 안다.’고 하는 것은 실은 죽은 믿음이다(계3:1). 죽은 믿음으로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수 없다.
따라서 교회는 과거나 현재나 미래나 “살아계신 하나님의 교회요 진리의 기둥과 터”가 되기 위해 말씀과 기도 이외에는 그 어떠한 것도 첨가해서는 안 된다. 이것이 입에 쓸지언정 다원화의 혼란한 시대를 맞은 성도들에게 꼭 선포해야할 참된 신앙이요, 말세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아 내게 하는 기준이 될 것이다. 하나님은 그런 교회를 돌보시기를 원하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