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언| “그들은 별을 보고 따랐더라”_남웅기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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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별을 보고 따랐더라”

(동방박사와 관련된 고정관념 깨뜨리기)

 

< 남웅기 목사, 바로선교회 >

 

 

“동방박사들이 마굿간에서 아기 예수를 만났다는 편견 깨뜨려야”

 

   성탄절이 코앞에 닥쳐왔습니다. ‘성탄절!’하면 물론 아기 예수이시지만 곁따라 떠오르는 동방박사 이야기 또한 빼 놓을 수 없습니다.

 

익숙한 동방박사들 이야기

 

   베들레헴 인근의 목자들 외에는 유대인들 모두가 메시야의 오심에 대해 깜깜 무소식이었을 때, 하나님은 유독 동방의 점성가들에게만 알려주셨습니다. 그들은 결정적일 때 하나님께 귀하게 쓰임 받은 사람들입니다.

   평소 연구하던 하늘의 별들을 통해 메시야 오심을 감지(感知)한 그들은 황금과 유향과 몰약 등의 예물을 갖추어 유대 땅으로 찾아 나섭니다. 그분이 메시야라면 그분을 찾아 경배하는 일만큼 삶의 우선적이며 값진 일은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들이 재산을 털어 예물을 준비하고, 그 멀고 험한 길에 온갖 어려움을 무릅쓰고 마침내 유대 땅을 찾은 것은 그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에 한 발자국 더 들어가는 비결은 우리의 고정관념을 벗어나 성경이 말씀하고자 하는 본뜻을 바로 헤아리는 데 있는 줄 압니다. 우리는 때때로 그 고정관념 때문에 하나님이 알려주시려는 본뜻을 지나쳐버릴 경우도 있고, 우리의 무지로 인해 엉뚱한 지식을 붙잡고 있을 경우도 있기 때문입니다.

   예컨대 개역한글성경에서 ‘홀’(笏)이라고 기록되었던 임금의 지팡이가 금번 개정개역성경에선 생뚱맞게 ‘규’圭)로 번역되지 않았습니까? 그러나 생뚱맞은 게 아니라 이전 성경이 잘못 번역된 탓이었습니다. 사전적 의미로 보면 홀(笏)은 벼슬아치가 임금을 만날 때에 손에 쥐던 물건인데 비해, 규(珪)는 천자가 제후를 봉할 때 쓰던 것으로 설명되어있기 때문입니다.

   동방박사 이야기도 그렇습니다. 다음 몇 가지는 우리가 되새겨 볼 대목입니다.

 

   1) 박사들이 동방에서 예루살렘을 찾아올 때 별을 보면서 따라 왔으리라는 것은 고정관념입니다.

마태복음 2장 9, 10절에 의하면, 박사들이 헤롯을 만난 후 예루살렘을 출발할 때의 장면을 이렇게 그리고 있습니다. “동방에서 보던 그 별이 문득 앞서 인도하더라”(마 2:9).

   박사들은 ‘길을 인도하던 그 별’이 아니라 ‘동방에서 보던 그 별’에 주목합니다. 그들이 스스로 찾아갈 수 있는 길을 굳이 별이 앞서 인도할 필요는 없었기 때문입니다.

 

   2) 동방박사들이 아기 예수께 경배하러 당연히 베들레헴으로 갔을 거라는 것은 지레짐작입니다.

동방박사들의 경배는 성경 어디에도 베들레헴이라고 밝혀놓지 않았습니다. 다만 박사들이 예루살렘을 찾아 메시야 탄생에 대해 물었을 때 헤롯이 베들레헴을 지목해서 말했을 뿐입니다. 근데 동방에서 보던 그 별이 갑자기 나타나 박사들을 인도합니다.

   이상하지 않습니까? 동방에서 올 때 그 먼먼 길에서도 인도하지 않던 별이 갑자기 나타나서 박사들을 인도하기 시작했다는 게 말입니다. 그때 박사들은 베들레헴을 목적지로 삼아 출발했지만, 그 별은 베들레헴이 아닌 다른 곳으로 인도했음에 틀림없습니다.

   그러므로 아기 예수님이 동방박사들을 접견한 곳은 베들레헴이 아닌 것만은 분명합니다. 이는 근거 없는 억측이 아니라 합리적인 추론입니다. 누가복음 2장 21-38절은 아기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셔서 할례를 받는 기사가 나옵니다. 그 기사의 마지막 39절은 이렇게 끝을 맺습니다.

   “주의 율법을 따라 모든 일을 마치고 갈릴리로 돌아가 본 동네 나사렛에 이르니라”(눅 2:39).

할례 후 나사렛으로 곧장 가셨다면, 베들레헴으로 향하던 박사들 앞에 굳이 그 별이 황급히 나타나서 길을 인도하던 이유가 풀릴 것도 같습니다. 설령 누가복음 2장 39절이 마태복음의 애굽 피난을 빠뜨린 축약문장이라 치더라도, 베들레헴 구유만은 아닌 게 분명합니다.

   호적을 마치면 서둘러 귀가하는 게 상식이지, 도대체 남의 구유에 몇 달이고 죽치고 있을 부모가 어디 있겠습니까? 그것도 동방박사가 올 때까지 말입니다. 물론 어떤 이들은 박사들이 아기예수 탄생일에 맞춰서 미리 출발했을 것으로 가정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헤롯이 동방박사들에게 ‘별이 나타난 때’를 자세히 물었다는 건(마 2:7) 그 때를 탄생일로 인식했음을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다만 우리의 고정관념이 베들레헴 구유로 이미 굳어져 선뜻 받아들이기 어려울 뿐입니다.

 

극적인 아기 예수와의 만남

 

   어쨌든 박사들이 헤롯이 가르쳐 준 베들레헴 대신에, 메시아 탄생을 알려주었던 그 별의 인도함을 받았으며, 갈 바를 알지 못한 채 즐겨 따른 끝에 마침내 아기예수를 찾아서 경배한 그 대목이 감동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