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개혁 500주년을 앞두고_나종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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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개혁 500주년을 앞두고  

< 나종천 목사, 한사랑교회 >

 

“성경이 진정 말하고자 하는 구원의 복음 전해야” 

   미래학자 최윤식 목사는 한국교회를 한 단어로 표현했다. 그것은 ‘혼란’이라는 것이다. 지도자들의 성윤리, 부적절한 재정운영, 교회를 빚내서 건축하다가 경매에 넘어가고 있으며, 부채로 매년 감당할 이자 2,250-5천억, 매달 드려진 헌금 중 187-416억이 이자로 나가고 있다. 매 주일 1-2천원 주일헌금 드리는 기준으로 하면 500-800만 명이 필요하다. 헌금으로 갚으려면 지금보다 2-3배 헌금이 더 필요하다.

   2017년은 종교개혁 500주년이다. 종교개혁 5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한 여러 행사들이 준비되고 있음은 고무적인 일이다. 그러나 한국 교회를, 특히 한국 장로교회를 되돌아보며 유의해야 할 점은 종교개혁 당시의 역사적 상황과 현재 한국 교회가 처해 있는 역사적 상황에 차이가 있다는 사실이다.

   종교개혁자들이 속해 있던 로마 가톨릭교회는 오랜 세월을 거쳐 기독교화된 서방 세계에서 사회와 문화를 지배하는 권세를 향유해 오던 교황주의 교회였다. 종교개혁자들의 과제는 이러한 기독교화된 세계에서 성경의 진리를 밝히며, 중세 로마 가톨릭교회의 비리를 개혁하는 일과 자신들을 제3의 신령주의적 급진주의자들과 구별하는 것이었다.

   이에 반하여 오늘의 한국 교회는 교파와 교단으로 분열된 교회로 다종교사회에서 타종교와 공존하는 가운데 개혁주의 전통을 밝히며 전도와 선교에 힘쓰는 가운데 있다. 중세보다 더 다양하고 복잡한 과제들을 목전에 두고 있음을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한국교회의 어두운 현주소를 회복하기 위해 최근 열심을 내고 있는 것이 칼빈의 오대교리와 소요리문답 등 교리 공부이다. 이것은 신앙의 기초를 다지지 못한 한국교회에 우선된 일임이 분명하다. 그리고 교단의 고무적인 일이기도 하다.

   우리는 개혁주의 분명한 교리를 믿는다. 목사 안수와 교회 직원을 세울 때 ‘본 장로회 신조와 웨스트민스트 신앙고백서 및 대·소요리문답은 신구약 성경에 교훈을 총괄한 것으로 알고 성실한 마음으로 받아 신종할 것을 선서합니다’라고 고백했다.

   여기 문답서는 그 시대 영국교회와 사회가 가진 질문에 대한 성경의 답을 내놓은 것이다. 그러나 우리 조국의 교회와 사회에서 질문을 한다면 어떤 질문을 하겠는가? 그 질문조차 찾아내지 못한다면 어떤 답을 만들어 낼 수 있겠는가?

   분명 16, 17세기와 오늘 우리가 가지고 있는 질문과는 다를 것이다. 그러나 16, 17세기의 질문에 대한 성경의 답은 오늘날 어떤 질문에도 동일하다. 그러나 그 시대의 질문과 오늘날의 질문은 다를 것이다. 그렇다면 오늘 그 질문을 찾아내고 그 질문에 대한 답을 내놓은 것이 종교개혁 500주년을 준비하는 신학교와 교단과 교회의 사명일 것이다.

   Philip G. Ryken 목사는 오늘의 왜곡된 복음을 다음과 같이 지적하고 있다.

“오늘날 현대교회는 많은 복음을 가지고 전하고 있다. 첫째, 물질번영의 복음, 예수께서 경제적인 성공의 비결을 가르쳐 주신다. 둘째, 가족가치의 복음, 예수께서 행복한 가정을 가르쳐 주신다. 셋째, 자기성공, 성취의 복음, 예수께서 성공하는 인생의 길을 가르치신다. 넷째, 종교적 전통의 복음, 예수께서 전통적인 종교에 대한 존경과 신뢰를 가질 것을 가르치신다. 다섯째, 도덕적 복음, 예수께서 인간으로 살아갈 차원 높은 도덕을 가르치신다. 이런 것들은 성경이 진정으로 말하고자 하는 구원의 복음이 결코 아니다.”

   그렇다. 오늘날 교회는 우리가 갖고 있는 이 성경, 동일한 성경을 가지고 각종 이런 저런 프로그램을 개발하여 그런 것을 가르치기에 여념이 없다. 마치 학원과 같이, 슈퍼마켓과 같이 다양한 상품을 진열해 놓고 고객들로 하여금 취사선택하게 한다. 이들은 복음을 버리고 그 자리에 이런 것들을 채워 놓고 그러한 상품을 팔고 있는 것이다.

   기독교인의 고통은 복음전파 때문에 일어나야 한다. 진리를 파수하는데서 일어나야 하고 예수님을 닮은 삶을 사는데서 일어나야 한다. 신앙을 지키려고 일어나야 한다. 그러나 앞으로 한국교회의 고통은 신앙을 지키는데서 오는 것이 아니라 건물을 지키는데서 오는 고통일 것이다. 복음전파 때문에 오는 고통이 아니라 건물을 등에 업고 허세와 위세를 전파하는데서 오는 고통일 것이다.

  종교개혁 500주년, 다시 복음으로 돌아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