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하는가<칭의>
– 갈라디아서 2장 14-21절
< 김근배 목사, 동해참빛교회 >
“칭의는 종말론적이지만 현재 여기에서 실행되고 있는 값비싼 은혜”
- 들머리(발단)
갈라디아서 2장 16절, “사람이 의롭다고 인정받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된다”에 대해서 말해야겠다.
이 구절은 ‘왜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사람이 하나님께 의롭다고 인정받으려고’ 대답한 모양새이다. 그렇다면 사람이 왜 ‘의’를 확보해야 하는가? 사도 바울이 대답하길, “내가 하나님을 향해 살게 되었다”(갈2:19)고 했다.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일로 하나님과의 관계가 올바르게(의롭게) 회복되었다는 의미이다.
- 주제(전개)
우리가 정말로 하나님과의 관계가 올바르게 회복되었단 말인가? 우리 안에서는 여전히 성령과 육체가 화해 없는 전쟁(벧전2:11, 갈5:17)을 계속 하고 있는데도 말이다.
대답은 ‘그렇다’이다. 우리 안에는 여전히 부패성이 남아 사탄의 유혹에 끌려 죄와 죽음으로 빠져 들어가는 죄인이나, 내 마음에 믿음으로 접붙여 옮겨놓은(전가됨) ‘그리스도와 그리스도의 의’(빌3:9) 덕택에 하나님께서 죄인의 인격을 의롭다고 하시고 받아들이셨다.
그런데 이렇게 받아들인 은혜가 언제 일어날까? 하나님의 최후 심판인 종말에, 그리고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하나님나라 백성이 된 지금에 일어난다. 종말에는 무죄선언으로 구원을 완성함으로, 지금은 죄용서(죗값을 치러 하나님 공의 만족)로 관계회복(새언약 관계)을 이뤄 성령과 말씀(도덕법)으로 내 죄 된 인격을 거룩하게 정화하는 의로운 길에서 일어난다.
- 전개(위기)
하나님께서 사람을 의롭다고 받아주시는 것이 좋아할 만한 은혜인가? 솔직히 우리는 잘나가고 있지 않는가? 하나님과의 관계를 올바르게 맺게 하는 ‘의’를 잃어버려 하나님과의 교제가 끊어졌는데도 지금까지 사는데 크게 불편하지 않았다. 우리가 죄 때문에 하나님과의 교제가 끊어져 하나님의 저주 아래 있었다(갈3:10)고 성경은 말하는데, 정말 저주 아래서 비참들 했을까?
성경이 말하는 비참은 사람이 더 이상 하나님이 기뻐하실 만한 신령한 선(any spiritual good)을 원하거나 행할 의지가 없어졌다는 데서 오는 절망이었다. 죄인이었을 때는 몰랐다가, 복음을 받고 하나님의 말씀을 점점 더 알아가면서 더욱 분명해진 미안함이었다.
- 증거(절정)
그런데 지금에 와서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만한 선을 원하거나 행할 의지가 생겼을까? 이 의지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만 생긴단다.
의지가 내 것이나 그리스도의 것으로(갈2:20) 돌리지 않으면 하나님을 기쁘게 하려는 마음이 생기지 않는다. 그럼 이 의지는 죽은 의지요 죄의 의지이다. 이 상태로 있다면 그 사람은 하나님과 아무 상관이 없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을 수 있는 것은 오직 은혜로만 가능하다. 그런데 오직 은혜는 전적으로 피동적이다. 사람을 그 모양으로 그냥 내버려두면 온갖 악을 행하는 능동적 성향만을 띤다. 즉 하나님을 기쁘게 하려는 생각을 전혀 갖지 않고 단지 자기 자신에게서 나오는 고상한 생각들을 괜찮다고 실천하며 산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처음부터 끝까지 다 퍼주려고 계획했고 실행했고 성취했다. 사람은 받기만 했다.
- 마무리(결말)
사람이 하나님을 향해 살려면 오직 은혜 안에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어야 한다. 다시 반복하지만, 이 일이 하나님을 기쁘게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당신 안에 당신 말고 그리스도께서 계시는가? 그렇다면, ‘지금부터’ 그리스도께서 가신 길을 따라갈 것이고, ‘여기에서부터’ 그리스도께서 명령하신 말들을 지키려고 할 것이고, ‘마침내’ 그리스도께서 계신 곳에 도착해 있을 것이다. 아마도 이것이 칭의의 현재(여기)와 미래(종말)가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