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릎 꿇게 하소서
< 이상목 목사, 동산안교회 >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는 것은 평생을 걸쳐 익히고 살아갈 일”
무릎을 꿇는 것은 대가 앞에 서는 초보의 예의다. 예전에는 부모님이나 스승, 상전과 앉아서 대화를 나눌 때에 기본자세가 무릎을 꿇는 것이었다. 하지만 방바닥문화가 의자문화로 바뀌면서 이제는 좀처럼 무릎을 꿇을 기회가 없다.
문화가 바뀐 탓이지만 그렇다고 무릎을 꿇는 의미마저 없어진 것은 아니다. 아니 무릎을 꿇을 일이 적을수록 무릎을 꿇는 마음을 지니는 것이 더욱 요긴해 진다. 왜냐하면 무릎을 꿇는 것은 단순히 몸을 낮추는 것 이상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상대에 대한 존경의 표요, 상대의 크고 귀한 은혜를 입은 자로서 자신을 낮추며 표하는 감사이다.
한편 존경하는 분과 함께 하며 무릎을 꿇는 것과 마음으로부터 사랑과 존경을 품는 것은 같지 않다. 마음으로 드리는 사랑과 존경은 인격이 감복하고 나서야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존경과 사랑 없이도 무릎은 꿇을 수 있으며 이럴 경우 무릎을 꿇었다 하더라도 예의를 다했다 할 수는 없다. 사람의 중심은 모름지기 겉이 아니라 마음이기 때문이다.
부족하나마 나는 모태신앙이다. 어렸을 때 은혜를 알았고, 은혜를 경험한 이후 하나님께 무릎을 꿇는 것은 자연스런 내 자세가 되었다. 그렇지만 무릎을 꿇었다고 해도 내가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은혜에 나를 맡기고 모든 일에 주의 뜻대로 순종하기에 애썼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왜냐하면 오늘 아침에도 나는 ‘무릎 꿇게 하소서’ 하고 하나님께 구하였고, 왜 무릎을 꿇어야 하는지 조목조목 짚어서 아뢰며 소원했기 때문이다. 나는 주님께 무릎만 꿇었을 뿐 더 중요한 마음은 꿇지 못하였고, 이를 슬피 아파하며 이제는 주께 마음의 무릎을 꿇은 채 살고프다. 내 무릎을 하나님께 꿇어야 할 이유를 이렇게 아뢰었다.
첫째는, 하나님은 나를 만드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나의 창조주이십니다. 그러니 내가 주께 무릎 꿇게 하소서. 나를 만드신 능력과 지혜와 사랑을 알고 엎드리게 하소서.
둘째는, 하나님은 내 아버지이시기 때문입니다. 원래부터 내 아버지이시고, 아버지이신 것을 가르치려고 내 평생 동안 그리스도의 은혜로 찾아오시고 말씀으로 가르치시고 세밀하게 돌보셨습니다. 그러니 내 보호자이신 아버지 하나님께 무릎 꿇게 하소서.
셋째는, 말과는 다르게 하나님의 뜻을 행하기 위해서 산 날이 적기 때문입니다. 주의 뜻을 행하려는 생각이 있어도 주저한 시간이 많으며, 주의 뜻을 행하는 것보다 더 내 뜻을 이뤄지기를 바라고 기대했습니다. 그러니 불충하고 파렴치한 이 많은 죄를 인하여 주의 긍휼이 필요합니다. 그러니 주께 무릎 꿇게 하소서.
넷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나를 용서하시고 사랑하시고 은혜를 베풀어서 오늘까지 돌보셨을 뿐 아니라 이런 나를 충성되이 여겨 믿고 당신의 교회를 맡기시니 당신의 은혜 앞에 무릎 꿇기를 원합니다.
사실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는 것은 자세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구호도 아니다. 하나님께 무릎 꿇는 것은 하나님이 주신 인생을 내가 송두리째 훔쳐 스스로 주인이 되려는 도적놈의 심보를 쳐 복종시킴이요, 하루나 이틀 했다고 될 일이 아닌 평생을 걸쳐 익히고 살아갈 일이다.
하나님께 무릎 꿇는 것은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크게 인정함이다. 하나님이 내 창조주이시며 내 구속주이시며 세상을 그분의 지혜와 능력과 사랑으로 통치하는 선하신 주이심을 통감하는 것이다.
하나님께 무릎 꿇는 것은 하나님이 나를 세우신 자리가 가장 복된 자리요, 하나님이 살도록 허락하신 지금이 가장 복된 시간인 것을 깨달음이다. 그래서 지금 내게 맡긴 일을 즐거이 순종함이다. 그것은 나눔이요, 사랑함이요, 그러고도 참음이요, 기다림이요, 또 허전함과 외로움을 감내함이다.
그것은 내가 하는 일이 하찮아 보이고, 남들이 보기에도 작아 보이나 낙심치 않음이요, 오히려 영광으로 알고 끝까지 충성함이다. 그것은 남을 비난하지 않음이요, 나를 비난하는 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음이다. 그것은 이웃을 나와 같이 하나님의 사랑을 입는 자로 알아 귀히 여겨 존중함이다.
무엇보다 그것은 하나님이 주신 “지금 여기”를 하나님의 기적과 은혜가 펼쳐지는 무대로 알아 감사히 받는 것이요, 하나님이 보이실 솜씨에 대한 기대로 주를 바라보는 것이다. 이는 결코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으실 하나님의 성실하심을 믿음으로 범사에 그 안에서 평안을 누리는 것이다.
하나님께 무릎을 꿇고야 하루를 주의 뜻대로 살 마음에 젖을 수 있으니 무엇을 이보다 더 원하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