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신 교수에게서 듣는 성탄절 이야기_그의 이름을 예수라 하라(마 1: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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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신 교수에게서 듣는 성탄절 이야기

그의 이름을 예수라 하라(마 1:18-25)

이복우 교수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 신약신학

 

마태복음은 예수님의 탄생을 세 가지 방식으로 말씀 한다. 마태는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한 측면으로만 설명하는 것이 무리한 일이기에 세 가지 방법 즉, 3차 원(입체)적으로 설명했다고 볼 수 있다. 이 세 가지 방식은 모두 “출생/나심(γένεσις,) ” 또는 “낳다”(γεννάω)라는 말로 시작한다. 첫째는 계보 중심으로(1:1-17) “예수 그리스도의 ‘출생’의 책(계보)”(1)이라는 말로 시작한다.

둘째는 부모 중심(1:18-25)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나 심’은 이러하니라”(18)는 말로 시작한다. 셋째는 역사와 시대적 상황 중심(2:1-23)으로 “헤롯 왕 때에 예수께서 유대 베들레헴에서 ‘나시매’(γεννηθέντος)”(마 2:1)로 시작한다.

이들 중에 마태복음 1:18-25은 예수님의 탄생을 부모와 관련하여 설명한다. 그럼에도 본문에는 ‘어머 니’(18)라는 말만 있지 ‘아버지’라는 단어가 나타나지 않는다. 예수님의 계보에서 한결같이 반복되는 말은 “낳 고”(γεννάω)라는 단어이다. 이 낱말은 아브라함부터 요셉(16a)까지 끊이지 않고 나타난다. 그러므로 16절 하반절은 “요셉은 마리아에게서 예수를 낳으니라”고 해야 맞다. 하지만, 이 규칙을 깨고 “마리아에게서 그리스도라 칭하는 예수가 나시니라”고 말씀한다. 계속되던 철기둥 같은 계보의 틀이 무너진 것이다. 그 이유는 예수 님이 요셉과 마리아 사이의 부부관계를 통해 임신 되고 출생한 것이 아니라, 처녀인 마리아에게서 출생했기 때문이다(마 1:18, 25).

그러면 어떻게 이 일이 가능했을까? 그 답은 성령님 이시다. 18절은 예수님이 “성령으로(ἐκ πνεύματος ἁγ ίου) 잉태”되었다고 말씀하고, 20절도 “그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ἐκ πνεύματός ἐστιν ἁγίου)” 고 말씀한다. 동정녀 마리아가 예수님을 ‘잉태’한 것은 성령님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그런데 독특하게도 헬라어 성경은 이 둘 사이를 대조로 표현한다. 18절은 성령 님으로 말미암은 ‘잉태’(ἔχουσα)를 말하지만, 20절은 성령으로 된 ‘출생’(γεννηθέν)을 말하기 때문이다. 모든 번역본이 “잉태”(20)로 번역한 단어(γεννάω)는 앞의 계보 에서 쉬지 않고 반복되는 “낳다”라는 바로 그 단어이며, 마태복음 2:1의 “나시매”와도 같은 단어이다. 따라서 이짧은 문맥 안에서 한 단어(γεννάω)가 잉태와 출생이라는 정반대의 두 가지 의미로 사용되었다고 보는 무리한 해석을 하지 않는 한, 둘 다(18, 20) ‘출생’으로 번역 하는 것이 합당하다. 게다가 “잉태하다”라는 단어가 18 절에서 사용되었으므로 20절이 반드시 예수의 ‘잉태’를 말하려 했다면 18절에 있는 “잉태하다”라는 단어를 반복하여 썼으면 된다. 하지만 20절은 굳이 “낳다”’라는 다른 단어를 사용했다. 그러므로 20절의 “잉태된 자”는 ‘출생한 자’(τὸ γεννηθέν)로 바꾸어 번역함이 합당하다.

한편, 21절에서 주의 천사는 아들을 “낳을 것이다”(τέ ξεται, τίκτω)라고 미래형으로 말했다. 예수님의 출생은 분명 미래의 일이다. 그렇다면 주의 천사가 잉태를 출생(20)으로 말한 이유는 무엇인가? 성령님에 의한 예수 탄생은 틀림없이 장래의 일이지만, 이것이 너무나 확실한 일이므로 이미 성취된 것으로 말한 것이다. 결국 예수님의 동정녀 잉태와 탄생은 성령님의 초월적인 역사로 말미암은 것이다.
이것은 무엇보다 예수님의 무죄성을 강조한다. 아담 이후의 모든 사람은 남녀의 결합을 통해서 출생한다.
이때 아담의 죄가 태어나는 모든 사람에게 유전된다.모든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죄인의 ‘상태’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인류 구원을 위해 아담의 죄가 유전되는 방식이 아닌 완전히 다른 방식 즉, 예수님이 성령님으로 말미암아 남자를 알지 못하는 처녀의 몸에 잉태되고 출생하도록 하신 것이다. 예수님은 죄가 없으신 분이시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인류의 모든 죄를 대신 담당하실 수 있었고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실 수 있었다. 주의 천사가 요셉에게 “그의 이름을 예수라 하라 왜냐하면 그 자신이 그의 백성을 그들의 죄들로부터 구원할 것이기 때문이다”(마 1:21)라고 말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는 또한 모든 인류가 예수님의 탄생을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참된 이유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