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네 부모를 공경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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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부모를 공경하라

기독교는 가장의 권위 아래 가솔(家率)이 자동적으로 종교적 혜택을 받는다는 식의 가정 종교는 아니지만, 가정의 중요성을 강조한다는 점에서는 일면 가정 종교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기독교는 구원의 문제에 있어서 개별 신앙을 주장한다. 아버지가 신 포도를 먹는다고 해서 아들의 이가 신 것이 아닌 것처럼, 아버지가 믿음을 가진다고 해서 아들도 구원을 받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이 처음부터 끝까지 가정 모티브를 제시하는 것은 기독교가 가정 종교의 면모를 가지고 있다는 좋은 증거가 된다. 사실 성경에는 아담과 하와를 언급하는 창세기로부터 신랑이신 그리스도와 신부인 교회를 말하는 요한계시록까지 가정 모티브가 줄기차게 흐른다.

이와 더불어 기독교를 가정 종교라고 부를 수 있는 까닭은 가정 안에서 신앙의 계승을 소중하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구약시대에도 부모가 자녀에게 물려주는 신앙전승은 아주 중요하였다. 부모에게는 자녀에게 집에 있을 때나 길을 갈 때나, 누워있을 때나 일어날 때나 하나님 신앙을 부지런히 가르칠 의무가 있었다. 신앙을 전승하기 위해서 말씀을 손목에 매게 하고 이마에 붙이게 하였고, 심지어 문설주와 바깥문에 기록하게 하였다. 신앙 전승에 열심을 낸 것은 신약교회도 마찬가지였다. 자녀들을 주님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는 것은 가정 지침 가운데 중요한 항목으로 자리 잡았다. 이 때문에 초대교회 신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는 자리에 자녀들도 대동하였다.

신앙 계승에 관한 중요한 지시는 십계명 가운데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다섯 번째 계명에서 발견된다. 여기에는 장수에 대한 약속까지 곁들인다. 하나님의 크나큰 시혜이다. 특이하게도 십계명에는 하나님 관련 단락과 사람 관련 단락에 각각 하나씩 약속이 들어있다. 하나님은 우상 배격을 가르치는 둘째 계명에서 천 대까지 은혜를 베푸실 것을 약속하시고, 부모 공경을 가르치는 다섯째 계명에서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고 약속하신다. 다른 점이 있다면 앞의 약속은 자손들에게 주어진 반면, 뒤의 약속은 당사자에게 주어졌다는 것이다. 어쨌든 장수의 약속까지 곁들임으로써 부모 공경의 중요성은 그만큼 부각된다.

부모 공경이란 무엇인가? 일차적으로 부모를 물질로 섬기는 것이다. 예수님은 부모를 섬겨야 할 물질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으로 부모를 공경할 것이 없다고 정당화하는 사람들에게 맹렬한 비판을 가하셨다. 자녀는 부모에게 보답하기를 배워야 한다. 그러나 물질 공경 이전에 마음의 공경이 중요하다. 주위의 눈치에 못 이겨 마지못해 부모에게 물질을 제공하는 것은 옳지 않다. 부모에게 물질보다 마음이 먼저 가야 한다. 물론 마음을 드렸으니 물질을 드리지 않아도 된다는 말은 아니다. 부모 공경은 사회의 도덕질서를 유지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런 점에서 부모 공경은 윤리적 성격을 가진다.

하지만 부모 공경의 의미는 이 정도로 끝나지 않는다. 우리말로 “공경하다”로 번역된 단어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을 가리킬 때 자주 사용된다. 그러므로 부모를 공경하라는 말은 마치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듯이 부모에게 영광을 돌리라는 뜻이다. 성도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처럼, 자녀는 부모에게 영광을 돌려야 한다. 하나님이 성도에게 영광을 받으시는 것 같이, 부모는 자녀에게 영광을 받아야 한다. 부모는 자녀가 칭송해야 할 대상이다. 부모를 칭송하는 것에는 부모의 신앙을 칭송하는 것이 포함된다. 부모의 신앙을 칭송한다는 것은 부모의 신앙을 계승한다는 의미이다. 부모를 공경하는 사람이라면 마땅히 부모의 신앙을 계승해야 한다.

우리는 다섯째 계명과 관련하여 부모가 공경받는 것은 당연하다는 생각에서 그치고 만다. 그러나 이 계명은 부모에게도 사명이 있다는 것을 가르친다. 부모는 자녀에게 부모 공경을 가르칠 사명이 있다. 이렇게 함으로써 부모 공경이 하나님의 계명임을 자녀에게 전수하는 것이다. 이와 더불어 또 한 가지 중요한 사명은 부모 자신이 자녀에게 공경을 받을 만한 자격을 갖추는 것이다. 부모가 공경 받을 자격을 갖추고 있지 않으면서 자녀에게 공경을 요구하는 것은 한참 잘못된 것이다. 부모는 자녀에게 공경을 요구하기에 앞서 자신이 하나님의 계명들을 준수하는 모범을 보이고 있는지 점검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