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화의 샘 26] 평양의 백선행 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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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의 백선행 집사

오래전 평양의 백과부가 살고 있었다.
이 집사님은 결혼 2년 만에남편을 잃고 16세 나이로 청상과부가 되었다.
삯 바느질 등 온갖 일을 해서 돈 이 백냥을 모았다.
그 돈으로 일찍 죽은 남편과 시아버지의 묘를 이장하기 위해 산을 샀다.
세상물정을 잘 몰랐던 백과부는 사기를 당하고 말았다.
나무 한 그루 살 수가 없는 바위산을 산 것이다.
백집사는 크게 실망하였지만 도리어 하나님께 감사기도를 드렸다.
“다른 사람이 샀더라면 그도 망했을 텐데 나만 망했으니 감사합니다.”
그때 일본인들이 대동강에 다리를 놓으려고 시멘트 재료를 찾고 있었다.
그런데 이 백과부의 바위산이 시멘트 재료에 딱 맞는 석회암으로 되어있었다.
일본 오노다 사장은 백과부에게 300냥에 산을 팔라고 했지만 백과부는 거절했다.
백과부는 산 가격의 열 배인 이천 냥을 주겠다는 오노다 사장의 제안도 거절했다.
속이 탄 오노다 사장은 이만 냥에 거래하려 했지만, 이 또한 거절당했다.

듣자 하니 이 백과부가 목사님의 말은 잘 듣는다는 것을 알고 그 목사님에게 이 과부를 잘 설득해 달라고 부탁하였다. 목사님이 가서 말하니 이 백과부는 사기당해 산 땅을 어떻게 다른 사람 망하라고 다시 팔 수 있느냐고 했다. 그러자 목사님이 자초지종을 이야기하니 이 과부는 그 자리에서 이만 냥에 산을 팔았다. 백과부는 그 전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기로 작정하고, 평양에 3층 규모의 공회관을 건립하고 평양 광선학교와 창덕학교의 토지 구입에 기부했다. 그리고 그 유명한 평양신학교와 숭실학교 토지 구입에도 돈을 보탰다.

그동안 백과부로 불렸던 그를 워낙 선한 일을 많이 하여 백선행집사로 사람들이 부르기 시작했다. 1933년 5월 12일 그의 나이 86세로 세상을 떠났을 때, 우리나라 여성 최초로 사회장으로 장례를 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