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무를 넘어서
김수환 목사(새사람 교회)
해마다 새해가 되면 우리는 “복 많이 받으세요” “더욱 건강하세요” “모든 일이 잘 되시길…”과 같은 덕담을 나눈다. 물론 덕담대로 다 되는 것은 아니지만, 설령 덕담대로 다 이루어진다 해도 반드시 좋은 것만도 아니다. 햇빛이 좋은 것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햇볕만 계속 쬐면 사막이 되며, 비가 좋다고 계속 비만 내리면 그곳이 바로 늪이 되는 것이다. 어떤 일이 오늘 좋다고 내일도 좋은 것이 아니요, 올해에 좋은 일이 반드시 내년에도 좋은 것도 아니다. 나아가 현세에 좋은 일이 내세에 가서도 좋다는 보장이 없는 것이다.
‘인간만사 새옹지마’라는 말처럼, 나쁜 일이 얼마 후, 좋은 일이 되기도 하고, 좋은 일이 나쁜 일이 되기도 한다. 그런데도 우리는 이 세상에서도 잘 살고 저세상에서도 잘 살겠다는 탐욕 가득한 기도를 드리며 끊임없이 그런 삶을 추구한다. 어쩌면 우리에겐 “나의 욕망으로부터 나를 구원하소서”(독일 베를린 국립미술관 현관에 걸려 있는 기도문)라는 기도가 더 급선무라는 생각이 든다.
이러한 욕망으로 가득한 우리를 아시는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기도대로 응답하지 않고 당신의 뜻대로 응답하신다. 즉, 기도는 우리 마음대로, 응답은 하나님 마음대로인 셈이다. 내가 기도한 대로 응답 되지 않았다고 불평하지만, 만일 우리가 드린 기도대로 응답 된다면 아마 우리는 그 기도 응답 때문에 벌써 멸망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우리는 기도 말미에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마 26:39, 43)라는 주님의 겟세마네 기도를 반드시 첨부해야 할 것이요, 어떤 응답에도 오직 감사로 화답해야 하리라.
우리가 올 한 해를 사는 동안에도 좋은 일, 나쁜 일, 원하는 일, 원치 않는 일 등, 다양한 일을 경험할 것이고, 그 환경 앞에 우리가 어떤 반응을 보이느냐에 따라서 화가 복이 되기도, 복이 화가 될 수도 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우리는 그 일을 통해서 진리(그리스도)를 발견하고, 그 진리(그리스도)를 내 안으로 끌어들여야 한다. 혹여 우리 앞에 다가온 그 환경을 단순히 물리적이고 표면적인 현상으로만 흘러 내버리고 만다면, 불행하게도 우리는 가인이나 에서와 같은 허무적 존재로 남아있게 될 것이다.
전도서는 언뜻 보면 허무를 노래한 책처럼 보인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허무를 노래한 책이 아니라, 사실 허무를 해결한 책이다. 즉 보이는 세상의 유한한 사물과 사건들을 통해서 영원의 세계와 여호와를 깨닫게 된다면, 허무는 극복이 된다는 말씀이다.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킬지어다”(전12:12-13)란 말씀이 바로 그런 의미이다.
여기서 ‘헛되다’는 표현은 세상 것들이 다 쓸모없다는 말이 아니라 그것이 목적이 아니고 수단이라는 말씀이요, 그러니 그것만 붙들고 있지 말고 그 수단을 통해서 목적에 이르라는 말씀이다. 만일 표면을 통해서 이면에 이르지 못하고, 유한을 통해서 영원에 이르지 못한다면, 그것이 바로 헛된 것이요, 허무한 인생인 것이다.
우리는 땅에서 펼쳐지는 모든 환경을 통해서 그리스도를 깨닫고, 그리스도를 얻어야 한다. 그러지 못하면 그 인생은 그야말로 헛된 인생으로 전락하고 마는 것이다. 좋은 일과 나쁜 일이 고정으로 경계 지어진 것이 아니요, 그 일을 통해서 우리의 최종 목적인 그리스도를 깨닫고 그리스도를 얻으면 다 좋은 일이요, 다 귀한 일이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깨닫지 못한다면 좋은 일도 나쁜 일이 되고 마는 것이다.
경험이 많고 노련한 목수는 작은 나무토막 하나도 버리지 않고, 적재적소에 효과적으로 사용한다. 하지만 어리고 미숙한 목수는 쓸만한 목재까지도 다 내버린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좋은 일만이 아니라 나쁜 일도, 신앙의 세계만이 아니라 세속세계에서도 진리를 발견하고 그리스도를 얻을 수 있어야 한다.
새해가 밝았다. 연초에 우리는 많은 덕담을 주고받았다. 하지만 우리가 나눈 덕담과는 별개로 우리 각자는 언제 무슨 일을 당할지 잘 모른다. 하지만 그 모든 것으로부터 진리를 깨닫고, 진리를 얻는다면, 그것이 바로 성공이요, 축복이다. 반대로 아무리 성공하고, 좋은 일이 눈앞에 있어도 진리를 보지 못하고, 진리를 얻지 못한다면, 그것이 바로 저주요, 실패인 것이다.
뱀은 인간을 유혹했다는 죄값으로 평생 배로 다니고 흙을 먹는 저주를 받았다(창3:14). 우리 인간에게 최고의 저주는 질병이나 실패가 아니라 땅에서 하늘을 보지 못하고 땅에 갇혀서 오로지 땅의 존재로만 사는 것이다. 내 앞에 다가온 모든 환경 속에서 성경과 교회의 담을 넘어 진리를 깨닫고, 그 진리로 나를 채울 때, 허무를 넘어서는 참된 하나님의 사람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