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이 돌들이…영영한 기념이 되리라”(여호수아 4:1-7)_문정식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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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돌들이…영영한 기념이 되리라”(여호수아 4:1-7)

문정식 목사(열린교회, 중서울노회장)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을 기억하는 역사의 중요성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가나안 정복의 가장 첫 난관인 요단강 도하 후에, 강의 중앙에서 돌 12개를 취하여 이를 길갈에 세우게 한 사건이다. 여기서 돌 12개를 취해 어깨에 멘 자들은 12지파의 대표들이었다, 이는 이전의 사건을 돌아보게 한다.

(1) 과거: 이전에 가나안 정복을 위해 탐지할 때(민 13:1-33)도 정탐자들이 각 지파의 대표들이었는데(그때는 족장들), 그 12명 중에 여호수아와 갈렙 두 사람을 뺀 나머지 10명은 모두 하나님의 뜻에 반(反)한 보고를 하였다. 결국 하나님의 진노하심으로 그들은 모두 가나안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광야에서 죽었다.

(2) 현재: 하나님께서 다시금 기회를 주시기를, 출애굽 2세대 중에 가나안 땅을 향해 가던 12지파의 대표들을 택하도록 하시고 그들에게 요단강의 가운데서 돌을 취하여 그것을 가져다가 유숙할 곳에 두라고 하셨다. 여호수아가 그 이유를 설명하기를, “요단 물이 여호와의 언약궤 앞에서 끊어졌었나니 곧 언약궤가 요단을 건널때에 요단 물이 끊어졌으므로 이 돌들이 이스라엘 자손에게 영영한 기념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기념(紀念, a memorial)이라고 번역된 히브리 단어는 가슴에 새기고, 볼 때마다 그 의미를 되새기게 하는 ‘기념비’와 같은 의미이다.

(3) 미래: 그 결과 그릇 행했던 조상들과 달리 이들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각 지파대로 돌을 취하여 총 12개를 세운다(수 4:8). 또한 여호수아는 요단 가운데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이 섰던 곳에 돌 12개를 세웠다. 이는 후에 요단강 물이 흘러 겉으로 보이지 않아도 하나님께서 하신 일을 그 땅에 새기도록 하는 행동이었다. 또한 요단을 건너 길갈에 진을 치고 거기에 돌 12개를 세우며 자손들에게 교훈했다. “후일에 너희 자손이 그 아비에게 묻기를 이 돌은 무슨 뜻이냐 하거든. 너희는 자손에게 알게 하여 이르기를 이스라엘이 마른 땅을 밟고 이 요단을 건넜음이라.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요단 물을 너희 앞에 마르게 하사 너희로 건너게 하신 것이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 앞에 홍해를 말리시고 우리로 건너게 하심과 같았나니. 이는 땅의 모든 백성으로 여호와의 손이 능하심을 알게 하며 너희로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영원토록 경외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라”(21-24절). 요단강에서 취한 ‘돌 12개’는 기념과 함께 출애굽의 역사를 기억하는 도구로 대대로 교훈이 되어, 하나님을 온전히 그리고 영원토록 경외하는 징표가 된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웨스트민스터 표준문서의 중요성

독립운동가였던 단재 신채호 선생이 “역사를 잊은 민족은 미래가 없다”고 했다. 그럼에도 우리는 하나님께서 행하신 역사를 망각한 채 당장 눈앞에 보이는 현실에 급급한지 모른다. 어느덧 종교개혁의 열매로 세워진 개혁교회들이 신앙의 표준인 『웨스트민스터 표준문서』에 대한 이해를 잃어버리고 실용적인 다른 것들에게 마음을 빼앗기고 있다. 이때 장로교회에 속한 직분자들이 정체성을 되새기는 것은 중요하다. 요단강을 건넌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신실한 인도하심에 대해 결코 잊지 않도록 요단강에서 취한 돌 열둘을 길갈에 세웠던 것과 같다. 우리가 누구인가하는 정체성에 대한 자각과 역사적 사명을 잊지 않아야 한다.

정경이 정립된 이후 중세 천년을 지나, 종교개혁이 이루어졌고 그 정신을 담아 곳곳에서 이루어진 신앙의 정립이 『신앙고백서』들이었다.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1543), 『프랑스 신앙고백서』(1559), 『스코틀랜드 신앙고백서』(1560), 『벨직 신앙고백』 (1561), 『도르트 신조』(1619)에 이어 작성된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1647)이다. 신앙고백서를 따라 대·소요리문답과 교회정치와 예배모범이 제시되었다.

(1)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 핵심: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의 특징은 “성경론”으로 시작한다는 사실이다. 신앙의 확고한 기준이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임을 분명히 밝히며 시작하는 것이 핵심적인 특징이다. “본성의 빛과 창조와 섭리의 일들은 사람이 핑계할 수 없을 정도로 하나님의 선하심과 지혜와 능력을 너무나도 명백하게 나타내고 있다. 그럼에도 이것들은 하나님과 그분의 뜻에 관하여 구원에 필요한 지식을 줄 정도로 충분하지는 않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여러 시대에 여러 모양으로 자신의 교회에 자신을 계시하고 자신의 뜻을 선포하기를 기뻐하셨다. 그리고 후에는 진리를 더 잘 보존하고 전파하며, 육신의 부패 및 사탄과 세상의 악의에 맞서 교회를 더욱 견고하게 세우고 위로하기 위하여 바로 그 모든 것을 기록하기를 기뻐하셨다. 이로 인하여 성경은 반드시 필요하게 되었다…”(1장 1절 1항). 성경론에서 출발하여 신론, 인간론, 기독론, 구원론, 교회론과 종말론에 이르기까지 신학의 핵심들이 여기 집약되었다.

(2) 하나님의 영광을 지향하는 신앙교육을 위한 요리문답: 신앙고백서에 따른 아주 유용한 결과물이 목회자들&성인들을 위한 『대요리문답』과, 초신자 &아이들 교육을 위한 『소요리문답』이었다. 종교개혁자 루터와 칼빈의 예를 따라 최상의 교육교재였고, 이를 통해 교회 뿐 아니라 가정에서도 신앙교육이 이루어지게 된 중요한 역할을 했다. 『대요리문답』 제1문답 “사람에게 주어진 첫째가며 가장 높은 목적은 무엇입니까? 사람에게 주어진 첫째가며 가장 높은 목적은 영원토록 하나님을 영화롭게 함과 온전히 즐거워함입니다.”라고 묻고 답함으로써 사고와 삶이 진리 위에 서도록 도왔고 지금까지도 아주 유익한 신앙교육이 되고 있다.

(3) 하나님의 교회를 위한 바른 교회정치와 참된 예배의 모범: 신앙고백의 구현이라고 할까. 이러한 교리가 진정으로 구현될 장은 다름아닌 교회의 정치이고 하나님께 드리는 진정한 예배인데, 『웨스트민스터 표준문서』는 이를 잘 이루어냈다. 바로 『교회정치』와 『예배모범』으로… 가장 성경적이고 개혁교회의 모델이었던 스코틀랜드교회의 모본을 따라 총회의 특사로 초청되어 조언을 아끼지 않고 제시했던 분들이 있다. 스코틀랜드교회의 총회장 알렉산더 핸더슨과 사무엘 러더포드와 조지 길레스피 그리고 로버트 베일리가 그들이다. 그들의 도움으로 성경적인 장로교 정치가 제시되었다. 물론 총회원 중에는 감독주의자도, 독립주의자도, 에라스투스주의자도 있었지만 결국 웨스트민스터 총회는 장로교 정치를 표준으로 정하였다.

웨스트민스터 총회가 1643년에 시작했으니 지금으로부터 380년 전이고, 위치도 영국에서 한국까지 아주 먼 곳이기는 하지만… 하나님의 행하심은 380년이라는 시간적 간격을 뛰어넘고 런던과 서울 간의 공간적 간격을 좁히셔서 우리로 웨스트민스터 표준문서의 중요성을 기억하게 하신다. 얼마나 은혜스러운 일인지 모른다. 우리의 신앙을 이어갈 자손들 역시나 이후로 주님 오시기 전까지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들을 찬양하고 정체성을 이어가는 복된 역사가 있기를 바란다.

[중서울노회 제1차 웨스트민스터 표준문서 번역 및 헌법위원회 개회예배 설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