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단상] 가정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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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단상

가정호 목사(세대로교회)

 

합신 부산노회 목사 안수식에서 ‘권면’의 순서를 맡았다. 훌륭한 선배님들이 한분 두분 떠나가시고 이젠 부족한 내가 그 일을 감당하도록 부름을 받아 그 부담스러운 일을 했다. 세 가지를 당부했다. 그 내용들을 여기에 다시 정리해 본다.

 

섣부른 판단을 하지 않기 위하여 실력을 기르자.

직관에 의지하여 간단없이 판단하지 말자. 삶의 정황, 시세와 역사의 내력은 물론 할 수 있는 한 현장을 충분히 살피고 판단하자. 분별력을 키우는 일은 목회자의 책무이다. 계시에 의존하여 세상을 본받지 않도록 이끄는 리더십은 평생에 걸친 작업을 요구한다. 재빠른 판단과 가벼운 혀의 무분별한 사용은 남과 나, 공동체, 시민들을 죽인다. 최근에 살핀 책 중에 대니얼 스탤더가 쓴 “판단하지 않는 힘(The Power Of Context)”이라는 책이 있었다. 조급한 판단이 불러온 다양한 갈등을 다룬 책이었다. 섣부른 판단은 목회와 목회 현장을 망친다. 무능력한 판단자도 큰 문제이지만 섣부른 판단자는 더 큰 문제를 일으킨다. 급거히 판단하지 않는 능력을 기르자. 계시 의존적 분별력, 성경적 가치에 따른 분별력, 정치, 경제, 역사, 문화, 사회, 종교, 심리가 드러내는 문제들을 묵직하게 타격할 올바른 계시 해석, 진리의 인도하심과 성령의 지도하심을 따르는 정신차린 분별과 판단력을 기르자.

 

삼위일체 하나님의 자유와 그리스도의 순종으로부터 비롯되는 책임있는 리더가 되자.

성부 하나님에 대한 성자 예수 그리스도의 순종은 철저하게 아버지의 보내심에 따르는 관여적 자유에 근거한다. 그리스도의 자유는 100% 성부와 성령과 관계하는 관여적 자유였다. 욕망에 충실한 이탈적 자유는 단 1%도 없었다. 그러나 우리는 그리스도의 이러한 완전한 자유를 100% 구현해내지 못하는 한계인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세속성에 야합하려는 불순종(롬 12:2-3)의 욕망과 그리스도에게 귀속되어 움직이려는 참된 자유를 향한 연합의 열망(요 15:5)을 능동적이며 적극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그리하여 진리가 공급하는 자유의 능력을 실현하는 사역자로 자신을 깎아 세워야 한다(요 8:32). 교회는 물론 세상에서조차 자유의 윤리를 따라 움직이는 책임 있는 리더를 찾고 있다는 점에 유의하자.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자유인의 신비와 능력을 넉넉하게 경험해야 전쟁도, 살인도, 파괴 상황도 눈물로 기도하며, 저항해 내면서 하나님의 경륜에 붙들려 전진할 수 있다.

 

“기이한 빛에 들어간 자”로 결핍을 채워나가고 상처를 감당해내는 리더로 우뚝 서가자.

하나님 나라와 세상은 아이러니로 가득하다. 다양한 이데올로기와 이념들도 한계를 여실히 드러낸다. 거시적으로 보면 강력한 제국도, 교회 부흥의 역사도 결국에는 흥과 망을 반복한다. 풍요와 빈곤의 비대칭은 해결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하여 지구의 절반은 굶주린다. 오대양 육대주 어딘가에서 오늘도 전쟁 중이다. 아주 작은 시선으로 보면 어떤 집안의 아버지는 교통사고로 전신이 마비되어 누워있는데, 그의 아내는 노동하다가 말기 암에 붙들려 신음 중이고, 하나밖에 없는 어린 딸은 백혈병으로 누워있다. 이런 가족이 우리 교회의 성도일 수 있다.

얼마나 아이러니하고 비참한 일인가? 목회지를 원망할 텐가? 하나님께 눈을 흘길 텐가? 원망할 대상조차 없다. 패역한 인간 역사에서 수천 년 동안 누적된 죄, 교묘하게 은폐되고 처리되지 않은 죄들을 회개하면서 가슴 치며 걸어가는 것이 목회다. 게다가 자신을 무너뜨리기 위해 쉬지 않고 달려드는 사단의 유혹과 미혹의 영을 대하여 투쟁하고 저항해야 한다. 베드로는 말한다. “너희는 택하신 족속, 왕 같은 제사장, 거룩한 나라, 그의 소유된 백성, 한 발짝 더 나가면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간 사람들이다”(벧전 2:9). 부르심을 받은 사역자들은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간 사람들’이다.

삼위일체 하나님의 신비에 붙들린 사람들이다. 그의 기이한 빛에 사로잡힌 사람들이다. 가난, 고독, 우울, 근심을 감당하면서 기쁨으로 목양을 감당해야 하는 이들이다. 주께서 귀하와 나를 충성스런 종으로 여겨(딤전 1:12) 말씀을 맡겨 주셨으니, 이를 잘 감당하는 동역자들이 되자고 권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