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진기로 바라보는 세상 <21>| 착한아이 증후군_전정식 장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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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아이 증후군

< 전정식 장로, 남포교회 >

“성화의 과정은 과장하거나 연기할 필요 없어”

 

현대를 사는 우리들의 아이들은 경제적인 풍요 속에 온갖 혜택을 누리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배워야 할 것, 해야 할 것이 너무 많아 때로는 보기에 안타깝기만 합니다.

심지어 요즈음에는 ‘4당 3락’이라는 표현도 생겨 초등학생의 경우 다른 아이보다 4년 빠른 선행학습을 받게 해야 대학을 들어갈 수 있고, 3년 빠른 선행교육 만으로는 떨어진다는 말까지 학부모들 사이에 유행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말도 안 되는 교육환경은 한창 육체적, 정신적, 사회적으로 단계를 밟아 한 걸음씩 자라나야 하는 성장과정의 아이들의 입장은 전혀 생각지 않은 학벌, 스펙 지상주의에 물든 부모들의 조급한 교육열 때문에 야기된 문제라는 것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부모들의 이런 건강치 못한 육아와 교육열로 인해 아이들에게 어른이 돼서도 큰 상처를 남게 되는 질환 중 하나에 “착한아이 증후군(또는 콤플렉스)”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이 증후군을 보이는 아이들은 착하지 않으면 사랑받을 수 없다는 두려운 믿음으로 인해 타인의 눈치를 보며 타인의 요구에 순종적으로 행동하기 때문에 남들이 보면 말을 잘 듣는 착한아이처럼 평가됩니다.

그러나 아이 입장에서 보면 다른 사람의 판단을 절대적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자기 주장이나 능동성이 없고 자기 모습을 감추고 착한 모습을 연기하게 됩니다. 이런 아이들은 싫다고 말을 하지 못하며, 자세히 보면 늘 눈치를 봅니다. 그리고 자기 주장을 쉽게 포기하며 항상 불안하고 심해지면 우울증에 시달리다가 무기력하게 됩니다.

이런 콤플렉스는 바로 해결되지 않으면 그대로 성장하게 되어 성인이 되어도 착하다는 소리를 듣기 위해 자신의 느낌이나 욕구는 늘 무시하게 때문에 자신은 늘 위축되고 우울한 감정이 가득하게 됩니다.

부모가 되면 누구나 아이들을 잘 키워야 한다는 마음을 갖습니다. 이런 마음은 자연스럽고 또 바람직합니다. 그러나 시간을 두고 여러 단계를 거쳐 성장해야 하는 자연 섭리를 무시하고 조급한 마음과 또 잘못된 육아관, 교육관을 갖게 되면 아이들을 이런 나쁜 상황으로 내몰 수 있습니다.

착한아이 증후군을 가진 부모들은 보통 말을 잘 듣는 것은 착한 것이며 좋은 것인데 반해 말을 안 듣는 것은 착하지 않으며 나쁜 것이라는 이분론적 교육관을 갖는다고 합니다. 또한 아이들을 평가할 때 아이가 갖고 있는 장점을 보기보다는 다른 사람들의 평판을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합니다. 어떻게 생각하면 아이들이 착한 행동을 계속 하다보면 착한아이가 된다는 사고방식을 갖고 있는 것이 아닌가하는 의심조차 들게 합니다.

이런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먼저 부모가 건강한 육아법을 가져야 하는데 아이에 대해 과도한 욕심과 기대를 키우지 말아야 하며, 아이를 있는 그대로 이해하고 아이가 늘 마음이 내키지 않는데도 ‘네, 네’ 하는 착한 모습을 연기하지 않고 솔직한 마음을 보이더라도 부모에게 인정받을 수 있음을 믿게 해야 합니다.

요즈음 우리 사회의 교회들은 안과 밖으로 큰 곤욕을 치르고 있습니다. 교회 밖 사람들이야 당연히 교회를 배척하겠지만 교계 안에서도 많은 개 교회와 교단들이 때로는 서로 원수 보듯이 눈을 흘기는 것은 참으로 안타깝기 짝이 없습니다. 그런데 주장하는 것을 들어보면 모두 하나님과 교회를 위한다고 하니 그 의도는 하나도 틀린 말은 아닙니다.

어떻게 보면 모두가 긴장 속에서도 서로 착한 성도, 착한 교회인 것을 증명하려고 열심히 노력한다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교회들의 열심을 바라보는 다른 성도의 입장에서는 칭찬은커녕 성도로서의 존재감까지 무기력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이제 사회의 일선에서 물러난 지금의 나이에도 고쳐야 하고 더 연단되어야 할 것이 많다는 것을 피부로 느끼는 저는 믿음의 성화 과정은 서두른다거나 열을 낸다고 빨리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말하고 싶습니다.

그런 점에서 겉으로 나타나는 우리의 행위나 모습이 아닌 우리의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이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런 하나님 앞에서는 우리가 과장하지 않아도 되고 연기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입니다.

과열된 곳에 있는 성도들이 주위 사람이나 세상 사람들의 평판에 휘둘리지 말고, 언제까지라도 우리의 성장을 기다려 주시고 또 감당할 짐만 주시는 하나님 앞에서 서로 정직한 말만하고 솔직해지면 좋겠습니다.

새로 시작하는 이 해에는 서로에게 위로가 되고 하나로 회복되는 일이 있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