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악골 아침사색| 비관적 낙관주의의 모범으로 살아가자_변세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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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관적 낙관주의의 모범으로 살아가자

< 변세권 목사, 온유한교회 >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겨주신 자리에서 성실하게 살아가기를”

 

올 겨울은 큰 추위가 없어서 감사하다. 눈도 많이 내리지 않아 다행이다. 자연은총도 감사함으로 받으면 더 없이 감사한 것이 된다.

때로 우리가 무엇인가 부족하다고 느꼈을지라도 하나님이 우리를 향하여 간섭하신 손길이 멈춘 적은 없었다. 혹 만족스럽지 못했다고 자책하는 마음이 들더라도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일에 좋은 환경과 좋은 여건이 아직 주어지지 않았을 뿐이지 우리가 못나서 그런 것은 아니다.

일반적으로 세상의 경제적, 사회적 안정이 우리 신자에게 나쁠 것은 없지만 어차피 이 세상을 사는 동안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은 우리가 가진 영원한 소망과 그리스도를 아는 믿음 하나로 살도록 부름 받았으니 인내하고 충성하며 살면 될 것이다. 그것도 세상적으로 승리하는 것이 아니라 신앙적으로 승리하는 것을 다짐하는 것을 말한다.

시대가 바뀌고 해가 바뀌어도 우리 신자들의 문제는 바로 예수를 믿는 것이 현실적으로 보상되리라는 기대감에 대한 오해일 것이다. 그리고 더 큰 문제는 한국교회가 꽤 오랫동안 정당한 신앙의 보상을 현실적, 세상적으로 많이 강조해왔다는 점이다.

예수 믿으면 승리하고 형통하고, 예수 믿으면 이 세상에서 크게 쓰임 받는다는 식으로 이 세상에서 누리는 보상을 강조해왔다. 그러나 성경의 가르침도 그렇고 우리가 살아온 현실을 봐도 그러한 사실과 다르기 때문에 그 간격에서 오는 혼란이 매우 깊다.

사실 우리의 필요한 것을 채워주시는 하나님의 심정은 부모의 심정과 같다. 그것은 마치 자녀가 부모에게 기대해야 할 것과 자기가 책임져야 할 것을 구별 못하는 모습과도 같다. 자식은 먹을 것, 입을 것 걱정하지 않고 학교에 가서 공부만 하면 된다.

마찬가지로 신자들은 하나님의 나라와 의만 구하면 된다. 곧 우리 믿는 신자들이 가지는 정당한 믿음의 근거나 토대는 하나님 아버지가 우리를 편드시고, 온 천하 만물의 주인으로서 우리를 지키고 계신다는 사실에 있는 것을 믿는 것이다. 결국 신앙의 싸움은 예수를 믿는 것을 현실적으로 보상을 받을 것이냐, 아니면 그것이 아니라는 것을 각오하느냐의 싸움이 된다.

이런 차원에서 우리 신자들의 기본적인 신앙의 원리는 비관적 낙관주의자가 되는 것이다. 요즘 회자되는 로망롤랑의 ‘지성의 비관주의와 의지의 낙관주의’로 적용해보면, 나는 지성 때문에 비관주의자가 되고 의지 때문에 낙관주의자가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 신자들은 지성의 비관주의로 인간의 타락과 한계와 무능을 발견해야 하고, 이것 위에 거룩과 영생을 신앙의 공동체에서 의지적으로 훈련하고 살아가는 낙관적인 자세를 가질 필요가 있다.

우리는 아무런 변명의 여지가 없는 인생을 살고 있는 것과 같다. 하나님은 우리를 명분이나 이해로 살게 하지 않으신다. 하나님이 우리를 모세와 같이 할 수 없이 붙들어서 가게 하신다. 그것도 사역을 잘 해놓고 매일 욕먹고 져주면서 걸어가게 하신다. 예수그리스도 없이는 어떤 성공, 어떤 보상도 받지 못한다.

자랑으로는 옳은 것의 내용이 없고, 사랑이 없으면 자랑으로 흘러서 사람만 죽이게 된다. 그래서인지 아무리 화를 내도 소용없다는 것을 이제 알아가게 된다. 오히려 말 안할 때 훨씬 인생이 겸손해지는 것을 배우게 된다. 죽지 않고 그 길만 따라가면 되는 것 같다.

목회를 하면서 나도 모르게 분노하고 원망하는 마음이 있다면 사역을 멈추고 목회자 자신의 신앙과 인생의 부요함을 다시 찾아야 한다. 그동안 복수하고 성질을 냈으나 거기에는 항상 정답이 없었다. 목회자로서의 인생을 먼저 살 줄 알아야 하겠다. 정성을 드리면 모든 것이 다 된다고 생각했던 것부터 버려야 한다.

믿음은 오늘도 보이지 않는 그 어떤 길을 가는 것이다. 시대는 갈수록 험악하고 이제야말로 신앙의 본질적인 싸움을 하는 시대가 되었다. 하나님을 역사와 우주의 주인으로 모시고 사는 것이 무엇인가, 하나님의 자비로 사는 것이 무엇인가를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무엇인가 믿을만한 것을 남겨놓고 큰 소리 치는 것이 아니라, 오늘이라는 시간을 살아내는 것이 얼마나 복된 것인가를 놓쳐서는 안 된다. 때로는 우리의 한심한 설교, 나의 답답한 성격에서도 하나님이 영광을 담아낸다는 것을 알고 기죽지 않아야 한다. 오늘도 하나님의 은혜와 통치와 복에서 도망갈 자는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지성의 낙관주의 모범으로 기초를 삼되 의지의 낙관주의의 모범의 실천도 버려서는 안 된다. 올해도 우리의 인생과 직분과 사역에서 주님의 영광된 이해를 가지고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자리를 성실하게 살아가기로 하자.

박영선 목사는 본인이 ‘예전에 비해 많이 훌륭해졌다’고 고백한 적이 있다. 참으로 겸손한 표현이라고 생각했다. 그 훌륭함은 이제 그 어떤 억울함과 오해도 받을 수 있는 자리까지 왔다는 뜻이라고도 한다.

조금 살아보니 이 세상에는 어떤 답도 없다. 우리 독자들끼리라도 늘 같은 편이라는 따뜻한 눈빛을 가지고 서로 격려하며 올 한해를 늠름하게 걸어가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