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지일 목사가 기억하는 박윤선 목사(2)
주석만 쓰게 하자
한번은 내가 윤선이를 찾아보러 부산에 갔습니다. 찾아갔더니 동네에 조그만 초가집에 세를 들어 살고 있는 겁니다. 당시 고려신학교에서 내쫓긴 상황인데 그런 사람에게 퇴직금을 줬겠습니까? 아무것도 안주니까 윤선이한테 어떤 은혜 받은 사람이 쌀을 이어다가 한 되 두 되 가져다주고 하는 것을 봤습니다.
그때는 박윤선이 주석이 잘 됐다는 것보다 주석이 그것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 사람이 이 주석을 마저 해야 하는데, 내가 가서 보니 마음이 상한다는 말씀입니다. 내가 서울에 와서 우리 동창들을 다 모았습니다. 영락교회 장로들 중에도 동창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모아놓고 박윤선이 생활비를 대서 주석만 쓰게 하자고 했더니 다들 좋다고 한 겁니다. 그래서 내가 박윤선한테 다 작정해 놓았으니 오라고 이야기하고, 영등포교회에서 부흥회 집회를 하라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랬더니 윤선이가 “야~ 이거 내가 이렇게 해 가지고 어케 가간?” 하는 겁니다. 윤선이 교단이 고려파고 영등포교회는 통합이고 하니까 그런 겁니다. 그래서 내가 “야 야! 에큐메니고 시카메니고 간에 지금 그거 따지게 됐네? 오라!” 결국 친구가 오라고 하니까 왔습니다.
와서 집회를 하니까 고려파 목사, 합동측 목사, 기장 목사, 우리측 통합 목사도 오고 아무튼 박윤선이 오니까 다 왔습니다. 낮에 목사만 한 사오십 명이 모였습니다. 그런데 첫날 설교하는데 두 시간을 하는 겁니다. 내가 부흥회를 두 시간이나 하냐고 그랬더니, 짧게 하겠다고 하고 십오 분을 했습니다. 그래서 동창들이 모여서 생활비 대기로 했으니까 주석만 하라고 했더니 고맙다고 하면서 오겠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윤선이가 “야, 지일아! 목사가 주일날 강단 안 지키면 목사는 죽은 목숨이야” 하는 겁니다.
이화주 사모님이 아무튼 박 목사님이 주석 쓰시는 것을 돌보고 맛있는 것이 있으면 목사님만 잡수시도록 하는 식으로 건강 같은 것을 잘 돌보신 것 같습니다. 방지일 합동신학교에서 강의 해 달라고 해서 내가 가봤더니 그 사모님이 약을 달여서 꼭 보온병에 가지고 다녔습니다. 그래서 내가 “야! 박 목사, 처덕은 본다.” 그랬습니다. 그래서 “처복은 있구나.” 그랬습니다.
<박윤선과의 만남, 안만수, 영음사, 2013>에서
* 영음사의 허락을 얻어 도서 <박윤선과의 만남>의 내용들을 연재한다. – 편집자 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