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우리에게 남은 것, 우리가 남긴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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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남은 것, 우리가 남긴 것

 피조 세계의 몇 가지 규칙적인 변화와 함께 날과 달과 해는 쉬지 않고 지나가고, 시간이 지나간 자리에는 지을 수 없는 자국이 남는다. 그런데 우리에게 남은 것이 반드시 우리의 의지와 상관있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지상에 흔히 반복되는 가뭄과 홍수로 말미암는 피해는 우리가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할 몫으로 남는다. 코로나19도 그 가운데 하나이다. 감염병이 할퀸 상처는 너무나 깊고 날카로워 아물기 어려운 상태로 남아있고 그 여파는 아직도 한참 더 갈 것처럼 보인다. 때때로 타인의 행동에서 야기된 불행이 우리의 의지와 상관없이 피해로 남는 경우도 허다하다. 적색신호 앞에 정차하고 있는 동안 추돌사고가 발생하면, 뒤 차량 운전자의 부주의 때문에 생긴 고통이 고스란히 앞 차량 운전자에게 남는다. 세계를 한순간에 혼돈의 도가니로 몰아넣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악영향과 후유증도 거기에 속한다.

감염병과 전쟁의 와중에서 한 해를 마무리하는 우리에게 남은 것은 그다지 긍정적인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공권의 논리 때문이든 아니면 개인의 양심 때문이든, 주일 예배를 비롯해서 모든 집회로 모이는 일이 마음에 불편하다. 이 문제를 타개하려는 목적으로 온라인 예배를 병행하거나 아예 온라인 예배로 전환한 것은 신자들의 믿음을 위축시키고 말았고, 결국은 출석 교인수가 현격하게 감소하는 쓴 열매를 맛보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교회의 경제력도 당연히 위기를 맞이하여 복음사역을 위한 다양한 활동에 제동이 걸렸다. 전도와 선교와 교회개척은 저조한 실적에 머무르고, 심지어는 목회자가 되려는 지원자들마저 급격하게 줄어들었다. 그나마 교회 폐쇄가 많지 않은 것에 안도의 숨을 쉴 뿐이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우리의 의지와 상관없이 닥친 일들이라며 위안을 삼을 수만은 없지 않은가?

자연의 재해나 타인에 의한 피해와 상관없이 우리가 남긴 것은 무엇인가? 중요한 것은 우리에게 남은 것보다 우리가 남긴 것이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시점에 우리는 의지적으로 무엇을 남겼는지 물어야 한다. 어떤 이는 외부 조건 때문에 심리적으로 불안한 상황에서도 끝내 성경 일독을 완수하는 기쁨을 맛볼 테이고, 어떤 이는 한 해 동안 설교를 꼬박 받아 적어 한 권의 책으로 엮으면서 책등에 “2022년 설교 필기”라고 새겨 넣는 뿌듯함을 누릴 테이고, 어떤 이는 한 해 동안 매일 아침식사를 금식하며 경건생활에 매진했을 테이고, 어떤 이는 비록 전보다 헌금을 덜 할 수밖에 없지만 교회를 향한 마음을 더욱 뜨겁게 달구었을 테이다. 그들은 의지를 남긴 것이다. 

교회로 눈을 돌려 묻자면, 교회는 올해 무엇을 남겼는가? 어떤 교회는 매일 밤 정한 시간에 기도회를 만들어 몇 명이 모이든 개의치 않고 한 번도 빠짐없이 모임을 이어갔다. 어떤 교회는 자신도 가장 어려운 시절을 보내고 있지만 더 약한 교회들을 찾아가서 성심껏 지원하는 일을 하였다. 어떤 교회는 후임목회자의 청빙을 은혜 가운데 완료하여 선임목사는 감사함으로 멋지게 은퇴하고 신임목사는 겸손함으로 당당히 시무에 들어섰다. 비록 원활하게 모이지는 못했지만, 신자들 사이에 사랑을 나누려고 애타는 마음을 보여준 교회도 있다. 약해져가는 교회를 지키고 뜨거운 믿음의 불을 지피려고 분투하는 목회자를 위해 더욱 간절하게 기도한 교회도 있다. 힘든 시절임도 불구하고 기도 끝에 교회가 설립되기도 하고, 일꾼이 임직하기도 했다.

감사하게 총회도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찬사 받을 일들을 적지 않게 남겼다. 넓게는 다른 교단들과 연합하고 협력하는 성과를 보여준 것이라든지, 교단 안에 작은 교회들을 활성화시키기 위한 노력들이 눈에 띈다. 화재로 전소된 교회를 힘을 합해 복구한 것이나 전쟁지역의 피해자들을 도우러 사랑과 물질을 가지고 달려간 것도 귀하게 남긴 일이다. 함께 사는 인류를 위하여 환경보호를 주창하는 데 발걸음을 뗀 것도,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이해하도록 내용이 알찬 공과를 발행한 것도 모두 강한 의지를 가지고 남긴 일이다. 총회의 각 부서와 각 위원회가 맡겨진 업무를 물러서지 않고 부지런히 수행한 것은 소소하게 보여도 큰일을 남긴 것이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지금, 우리의 의지와 상관없이 남은 것보다 우리가 의지를 가지고 남긴 것이 무엇인지 돌아봐야 한다. 역사의 흐름 속에 남은 것과 남긴 것은 끊임없이 반복될 것이다. 그러므로 한 해의 끝자락에서 내년 말에 우리가 의지적으로 남길 것을 미리 계획하고 벌써 시작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