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의 향기 17] 구약과 하나님의 나라 13_김진수 교수

0
124

구약과 하나님의 나라 13

김진수 교수(합신, 구약신학)

 

지난 글에서 창조시에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생육과 번성의 축복이 구약 이스라엘의 역사를 거쳐 마침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하나님의 백성에서 성취된 것을 살펴보았다. 이와 더불어, 하나님이 일으키실 하나님의 자녀에 대해 더 살펴보아야 할 내용이 있다. 구약에는 이스라엘 자손이 수적으로 번성할 것을 강조하기 위해 자주 바닷가의 모래나 하늘의 별이 수사적 수단으로 사용된다(창 15:5; 22:17; 26:4; 32:12; 왕상 4:20; 사 48:19; 호 1:10[2:1]). 그런데 놀랍게도 예레미야의 예언에서 동일한 수사적 표현이 다윗과 관련하여 사용된다: “하늘의 만상은 셀 수 없으며 바다의 모래는 측량할 수 없나니 내가 그와 같이 내 종 다윗의 자손과 나를 섬기는 레위인을 번성하게 하리라 하시니라”(렘 33:22). 이 예언에 따르면, 하나님은 다윗의 자손을 “하늘의 만상”과 “바다의 모래”같이 “번성하게” 하신다. 이 예언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일까? 왜 이스라엘 자손의 수적 증가를 강조하는 표현이 다윗의 자손에게 사용되는가? 또한 왜 인류의 수적 증가를 묘사하는 창세기 1장의 표현(“번성하다”)이 다윗의 자손과 관련하여서도 사용되는가?

사실 예레미야 33:22에 나오는 “다윗의 자손”에서 “자손”은 히브리어 ‘제라’를 번역한 말이다. 구약에서 “제라”는 주로 하나님이 누군가에게 주시기로 약속하신 자손에 대해 사용된다. 창세기 3:15에서 여인에게 약속된 “후손”이나 창세기 12:7과 15:5에서 아브라함에게 약속된 “자손”이 ‘제라’이다. 더 나아가 사무엘하 7:12과 역대상 17:11에서 다윗에게 약속된 “자손”(개역개정역에서는 “씨”로 번역됨)도 역시 ‘제라’이다. 구속사의 차원에서 창세기 3:15의 여인과 아브라함과 다윗은 ‘제라’를 통해 연결된다. 다시 말해, 여인의 후손은 아브라함의 후손으로 이어지며, 아브라함의 후손은 다시 다윗의 후손으로 이어진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아브라함의 후손의 증가를 표현하는 말(하늘의 별, 바다의 모래)이 다윗의 후손과 관련하여 사용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로 보인다.   

그런데 다윗에게 약속된 자손/씨는 다윗계열의 왕을 가리킨다. 사무엘하 7:12과 역대상 17:11에 언급된 다윗의 자손/씨는 분명히 다윗의 뒤를 이어 왕위에 앉을 왕을 가리킨다. 선지서에는 다윗에게서 날 왕을 가리키는 비유로 “싹”이나 “가지”가 사용된다(사 11:1, 10; 렘 23:5; 33:15). 특히 “싹”이나 “가지”는 구약 선지자의 관점에서 먼 미래에 등장할 메시아 왕을 가리키는 표현이다. 이런 배경에 비추어볼 때, “다윗의 자손”은 메시아로 이어지는 다윗계열의 왕을 지칭하는 표현으로 보는 것이 가장 자연스럽다. 주지하다시피, 신약은 예수님을 “다윗의 자손”으로 소개한다(마 1:1; 20:30; 막 10:47; 눅 1:27).

바로 여기에 어려움이 있다. 다윗의 자손이 하늘의 만상(별)과 바다의 모래 같이 번성할 것이라는 예레미야의 예언은 이 칭호가 지시하는 대상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시대마다 혈통적인 의미에서 다윗의 자손은 하나일 수밖에 없으며 궁극적으로 메시아도 한 분이다. 그러므로 예레미야의 예언은 다른 차원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그것은 다윗의 자손인 메시아 안에서 생겨날 수많은 백성을 바라본다. 다시 말해 그리스도와 한 몸으로 연합될 신자의 큰 무리가 선지자 예레미야가 바라본 다윗의 자손이다. 이것은 이사야 53:10에 의해서도 뒷받침된다. 이 구절은 여호와의 종(메시아)이 받을 고난의 열매를 “씨”(제라)로 표현한다. 메시아의 고난을 통해 생겨날 백성이 메시아의 “씨”이다. 여기서 “씨”는 물론 메시아를 통해 생겨날 수많은 사람을 가리키는 집합명사이다. 이사야 선지자는 혈통적인 후손을 뜻하는 단어를 사용하여 메시아에게 속할 백성의 집합체를 표현한다.

이렇게 보면, 사무엘하 7:12과 역대상 17:11에서 다윗에게 약속된 “씨” 역시 집합적으로 이해할 가능성이 열린다. 앞에서 창세기 3장에 나오는 여인의 “씨”에서 아브라함의 “씨”를 거쳐 다윗의 “씨”에게로 연결되는 구속사의 궤적을 언급한 바 있다. 이 “씨”에 대한 주석가들의 의견은 다양하다. 그 중에서 가장 적절한 해석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악의 세력을 정복할 한 특별한 인물과 그에게 속한 사람들이라고 보는 해석이다. 칼빈은 여인의 “씨”가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교회를 가리키는 것으로 해석한다. 이 관점을 확장하면, 다윗의 “씨”는 일차적으로 다윗의 후손인 그리스도를 가리키지만, 그와 동시에 그리스도께 속한 교회공동체를 지시대상으로 포함한다고 볼 수 있다. 이는 사무엘하 7장의 맥락에서도 어느 정도 암시된다. 이곳에서 다윗은 백성을 대표하여 하나님과 언약을 맺는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다윗과 백성의 구분이 허물어진다는 인상을 받는다. 4-16절에서 다윗에 관한 말씀과 백성에 관한 말씀이 아무 구분이나 이음매 없이 통으로 연결된다. 여기서 본문이 다윗과 백성을 동일시한다는 것을 알 게 된다. 이것이 갖는 신학적 함의는 매우 크다. 나단 선지자가 다윗에게 예언한 “씨”는 종국적으로 다윗의 후손인 메시아와 메시아를 통해 형성될 백성을 함께 지시한다. 그리스도께 속한 자는 모두 다윗의 후손이다.

이 설명은 다윗의 자손이 “하늘의 만상”과 “바다의 모래” 같이 많아질 것이라고 한 예레미야의 예언을 더욱 잘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다. 그런데 “다윗의 자손”은 “여인의 후손”이나 “아브라함의 자손”에 비해 독특한 뉘앙스를 지니는 표현이다. 그것은 특별히 왕의 지위나 신분을 생각하게 만든다. 다윗이 왕이듯 다윗의 자손도 왕이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이렇게 왕의 신분과 지위를 연상시키는 칭호를 사용하여 메시아를 통해 생겨날 많은 백성의 무리를 언급한다.

주석가 카일은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이곳에서 다윗의 자손…에게 약속된 수의 증가는 이방인들이 새 언약 안에서 하나님의 백성이 갖는 왕…의 자격을 얻게 됨으로써 실현된다.” 카일의 설명을 따르면, 선지자 예레미야는 이방인을 포함한 모든 신자의 무리가 다윗 계열의 메시아 왕인 그리스도 안에서 왕의 지위와 신분을 얻게 될 일을 바라본다. 이것은 이사야 55:3의 예언과도 연결된다.
 너희는 귀를 기울이고 내게로 나아와 들으라 그리하면 너희의 영혼이 살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영원한 언약을 맺으리니 곧 다윗에게 허락한 확실한 은혜이니라
 
이 구절에서 “너희”는 이스라엘 자손을 가리킨다. 이사야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자손을 위해 “영원한 언약”을 맺으실 일을 예언한다. 이 “영원한 언약”은 “다윗에게 허락한 확실한 은혜”이다. “다윗에게 허락한 확실한 은혜”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구문(ḥasdê dāvid hanne’ěmānîm)은 문자적으로 “다윗의 확실한 은혜”를 뜻한다. 문법적으로 이 구문은 “다윗을 위한 확실한 은혜” 또는 “다윗이 베푸는 확실한 은혜”로 번역될 수 있다. 후자를 택한다면, 다윗은 역사적으로 과거의 다윗일 수 없다. 다윗이 은혜를 베푼다는 개념도 낯설 뿐만 아니라 과거의 다윗이 현재 또는 미래에 은혜를 베푸는 것은 불가능하다. 다윗은 미래에 나타날 다윗 곧 메시아로 이해되어야 한다. 이 구절은 장차 모든 민족이 메시아로 말미암는 은혜에 참여할 것을 예고한다. 젠트리에 따르면, 이 은혜는 하나님과 아버지-아들의 관계로 들어가는 은혜이다. 즉 다윗 왕가의 왕이 하나님의 아들로 받아들여졌듯이(삼하 7:14), 모든 민족이 메시아로 인해 하나님의 아들이 된다는 것이다. 다른 말로 하면, 모든 민족이 메시아 안에서 왕의 신분을 얻는다. 창조시에 인간을 지으신 하나님의 뜻 –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통치자 – 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형성될 새 인류를 통해 성취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