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며 섬기며] 죽마고우의 죽음 앞에서_김승주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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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마고우의 죽음 앞에서

김승주 목사 (안양호스피스선교회 대표)

 

나에게는 70년 죽마고우 둘이 있었다. 서울 신설동에서 태어난 우리 삼총사의 본격 만남은 1.4후퇴 이후 아주 어린 시절부터였다. 함께 성장하면서 사춘기 시절에는 밥만 먹으면 몰려다니던 기억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 그렇듯이 성인이 되고 나서는 피차 사는 게 너무 팍팍하다보니 자주 만나지는 못했다.

애경사에 만나는 정도로 지내다가 중년 쯤 되어 너무 아쉬운 생각에 언젠가는 부부 동반의 식사도 가졌고. 그 후엔 셋이 식사를 하기도 하였다. 최근에는 코로나로 서로가 힘들었으니 추석 지나면 한번 만나기로 하였다.

그런데 그 중 한 친구가 그만 며칠 전 한밤중에 별세를 하고 말았다. 피차 나이 들어 어쩌면 당연한 소식인데도 ‘아! 이런 일도 있구나!’ 좀체 믿어지지가 않았다. 조문 길에 부인으로부터 남편이 ‘삼총사 만날 기대로 들 떠 있었다’는 말을 들으면서는 더욱 마음이 아팠다.

지금 믿고 싶지 않은 일들이 내 주변에서도 일어나고 있다. 죽음이 그만큼 내 코앞까지 다가오고 있다는 이야기다. 하나 남은 친구와는 ‘둘이서라도 자주 만나야지…’ 하며 9월 중으로 약속을 해 두었다.

덧없어 보이는 인생길에서 이런 생각을 해 본다. 인생은 ‘이래도 후회 저래도 후회!’라는 말이 있지만, 그래도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을 때까지는 ‘최선을 다하면서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다시 한 번 다짐하게 되는 요즘이다.

나는 1980년, 35세 늦가을에 주님을 만났다. 거듭남의 과정은 대개가 디모데 형과 바울 형이 있다고 한다. 나는 바울 형이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시기적으로 돌이켜 볼 때 그 때는 영적으로는 첫사랑 시절이다. 그 시절엔 참 눈물이 많았다. 주로 바람 부는 대로 소비지향적 삶을 살아 왔던 날들에 대한 회한의 눈물이었다.

찬송가 ‘천부여 의지 없어서 손들고 옵니다’에서 ‘천부여…’ 그 다음은 목이 메어 부를 수가 없었다. ‘우물가의 여인처럼 난 구했네. 헛되고 헛된 것들을…’이라는 성가도 많이 불렀고, 심지어는 대중가요 “난 바보같이 살았군요”를 눈물 흘리며 따라 부르기도 하였다.

얼마 전에는 우연히 당시 그 노래를 불렀던 이종용 씨(지금은 미국 코너스톤 목회자)가 ‘열린 음악회’에 초대되어 역시 그 노래를 부르는 것을 보았는데 40년 전이 오버랩 되면서 감회 속에 혹 누구라도 보게 될까 봐 문을 닫고 소리 내어 울기도 하였다. 물론 지금은 회한이 아니라, 그 깊은 수렁에서 건져 주신 은혜를 고마워하며 흘리는 감사의 눈물이다.

그 시절. 그러한 폭풍의 시간을 보내면서 주님께 드린 다짐이 있었다. “주님! 남은 생애 돈은 벌어야 되겠지만, ‘자랑할 것이 돈밖에 없는 인생’은 되지 않겠습니다.”라고. 이것은 단지 돈 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 신학의 문을 노크한 것도 그런 다짐의 일환이었다. 이제 70년 죽마고우가 훌쩍 떠나가 버린 마당에 내 살아 온 길을 반추하는 일은 남은 자의 의무다.

적어도 거듭 난 이후 산전수전 공중전까지 치루며 살아오는 동안 나는 더할 수 없는 은혜를 입으며 살아왔다. 비전을 주시고(빌 1:6), 걸음을 이끌어 주셨고(잠 16:9), 수시로 기도제목을 주셨을 뿐 아니라(빌 2:13), 때를 따라 도우셨고(히 4:16), 혹 실수가 있었어도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며(롬 8:28) 오늘까지의 건재를 도우셨다.

그런데 나 자신은 40년 전 다짐을 기준으로 지금 과연 몇 점의 점수를 줄 수 있을까? 솔직히 자신이 없다. 또한 주께서는 지금까지의 나의 삶을 어떻게 평가하실까? 몹시 두려운 일이다. 직접 대면해서 뵈올 때까지는 긴장을 풀 수가 없다.

또한 돌아보니 나는 비록 의도한 것은 아닐지라도 정말로 실수가 많았다. ‘그 상황에서 꼭 그런 선택(말이나 행동)을 할 수밖에는 없었던가?’ ‘좀 참을 수는 없었던가?’ 등 후회스런 부분도 많다. 생각해 보면 아쉽고 부끄럽다.

하지만 나는 내가 처음 주님을 만날 때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마 9:13) 하시던 약속은 지금도 유효하다고 굳게 믿고 있으며, 한없으신 긍휼하심을 의지하고 날마다 어김없이 사라지는 날들 속에 남은 날들을 금쪽같이 아끼면서 열심히 살고 싶다. 

“우리에게 우리의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의 마음을 얻게 하소서!”(시 9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