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조용한 부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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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한 부활

부활절을 맞이하면 우리의 머릿속에 금방 떠오르는 그림이 있다. 빈 무덤 앞에는 부활 예수님이 두 손을 든 채 서 있고, 빛나는 하늘에는 무수한 군중이 환호하며 떠 있는 장면이다. 성대한 잔치를 거행하는 것 같아 가슴 뭉클한 감동을 자아내는 그림이다. 하지만 이것은 성경이 말하는 바와는 많이 다르다. 예를 들어 마가복음을 들여다보면, 희한하게도 예수님의 부활은 조용하고 조촐하게 진행되었다. 부모를 비롯하여 목자들, 박사들, 천군 천사 같은 많은 무리가 모였던 예수님의 탄생과 비교할 때 너무나 대조되는 장면이다. 부활의 날은 두려울 정도로 조용하였다. 땅의 대표로 오직 여자 세 명이 방문했고, 하늘의 대표로 오직 한 천사가 등장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예수님의 부활은 사람이나 천사를 드러내는 행사나 이벤트가 아니기 때문이다. 사람이나 천사가 부활축하무대를 열면 결국 예수님은 사라지고 그들이 박수를 받는다. 이런 점에서 우리의 문제점을 발견한다. 우리는 예수님을 위해서 뭔가를 하려고 하면 언제나 인력을 동원하는 행사를 계획한다. 예를 들면 부활절 연합예배에서도 이런 현상이 나타난다. 그러나 예수님의 부활현장은 너무나 조용했다. 거기에는 이벤트도 팡파르도 축하무대도 퍼레이드도 없었다. 부활은 조용한 현장이었다. 부활 그 자체에 능력이 있는 것이지 부활 행사에 영광이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다른 이유는 오직 예수님의 부활에 집중하는 것이다. 부활 현장에서 천사는 여자들이 진정으로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알려주었다. 천사는 “그가 살아나셨다”고 알려주어 예수님의 부활에 대한 확신을 불러일으켰다. 중요한 것은 부활 현장에 사람의 많고 적음이 아니라 예수님의 부활 사실을 확신하는 것과 부활 메시지를 마음에 새기는 것이다. 사실, 부활 현장이 조용했던 까닭은 이 확신에 집중하도록 하기 위함이라고 생각해볼 수 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부활절을 맞이하면서 물어야 할 것은 부활 예수님을 위해 무슨 행사를 할 것이냐가 아니라 부활 예수님에 대한 확신을 어떻게 새기느냐이다.

예수님의 조용한 부활은 하나님의 뜻이었다. 사탄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기 위해서 온갖 사람들을 동원하였다. 빌라도, 헤롯, 대제사장을 필두로 유대교 지도자들, 군인들, 하인들, 거짓 증인들, 심지어 지나가는 군중들 등등 위아래의 모든 사람들이 투입되었다. 만일 사탄이 자기의 세력을 이기기 위해 하나님도 똑같은 방식을 취하실 것이라고 생각했다면 오판 가운데 정말 큰 오판이다. 하나님은 조용한 부활로 사탄의 허를 찌르셨다. 하나님은 바늘 하나를 가지고라도 사탄의 나라를 무너뜨리실 수 있다. 마귀의 나라를 분쇄하는 데 구태여 능력을 발휘하고, 인력을 동원하고, 화력을 사용하실 필요가 없다. 하나님의 뜻 앞에서 사탄의 계획과 공작과 나라는 여지없이 무너진다. 언뜻 보면 힘없이 보이는 하나님, 이것이 하나님의 지혜이며 전략이다. 부활을 설교하는 머리말에서 사도 바울이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고전 15:8) 자기를 하나님이 사용하셨다는 고백이 무슨 뜻인지 깨달아야 한다. 하나님은 약한 중에 강하시다. 

조용한 부활의 뜻을 보면서 교회는 어떤 길을 가야 하는지 생각해야 한다. 우리는 힘을 믿는 습관이 있다. 세상과 비슷해진 것이다. 세상은 힘이 모든 것을 해결할 것이라고 믿는다. 목하 작금에 우크라이나 전쟁만 봐도 이런 것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우리는 사람과  물질 모든 게 많으면 사탄의 기를 죽이고 세상을 이길 거라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하나님이 교회에게 원하시는 것은 소리 없이 사탄의 허를 찌르고 세상에 조용히 스며들어가서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이다.
때로는 대놓고 사탄이나 세상과 싸워야 할 때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이런 때는 기도 부대도 필요하고 전도 부대도 있어야 한다. 그러나 무작정 하나님께 열두 군단이 넘는 천사들을 보내달라고 요구하는 것은 옳지 않다. 사탄을 우리의 힘으로 이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으로 이겨야 한다. 우리는 보잘것없어 보이는 바늘 하나를 가지고도 사탄을 거꾸러뜨리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 혈과 육은 하나님의 나라를 이어받을 수 없고 썩는 것은 썩지 아니하는 것을 유업으로 받지 못한다(고전 15: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