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에 기록된 이적과 기사에 대한 이해
성경의 큰 특성 중 하나는 ‘계시’이다. 곧 예수께서 행하신 행위들을 비롯해 그 행위들이 기록된 사건들 역시 계시적 특성을 지니고 있다. 이런 특성들을 무시하고 성경의 어느 특정한 상황이나 사건, 특히 이적을 일으킨 사건들을 지금 우리들의 삶의 정황으로 곧바로 끌어들인다면 엄청난 괴리와 오류를 낳게 된다.
만일 성경에 기록된 어떤 사건을 지금 우리의 삶의 정황에 곧바로 연결시킨다면 그것은 마치 ‘계시’가 지향하고 있는 메시아이며 구세주이신 그리스도를 바라보지 않고, ‘계시’를 담고 있는 글자만 바라보는 것과 같다.
이것은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을 보고 그 손이 가리키는 대상을 보아야 하는데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만 보고 그 손가락이 가리키는 대상이 어떨 것이라고 자기 혼자 상상하고 판단하는 것과 같이 우매한 일이다.
성경에 기록된 어떤 사건들, 그것이 이적이든 기사든 그것들은 예수님이 오시기 전 구약에서는 메시아의 오심과 관련되거나, 혹은 예수님이 오신 후 지상에 계실 때에는 메시아로 오신 예수님의 하나님 되심을 증거하거나, 또는 예수님이 승천하신 이후에는 지금도 예수님이 교회를 친히 다스리신다는 사실을 보여주기 위함이다.
이런 점에서 성경에 기록된 기이한 일들과 관련해 방언 말함이거나, 신유 곧 병고치는 행위이거나, 축귀(퇴마) 곧 귀신을 쫓아냄이거나, 심지어 죽은 사람이 살아남과 같은 이적과 기사들을 빙자하여 지금도 우리가 그와 같은 일들을 행할 수 있다거나 그 대상이 될 수 있다고 여기는 것은 성경 계시의 특성을 조금도 이해하지 못한 청맹과니와 같은 생각들이다.
따라서 성경에 기록된 엄청난 이적과 기사들을 그 발생한 시점에 따라 바르게 이해하지 못하고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삶의 현장으로 곧바로 끌어다가 마치 우리도 그와 같은 이적이나 기사를 행하거나 경험할 것처럼 나대거나 선전하는 것은 거짓 교사들이나 하는 매우 음흉하고 사악한 짓거리들일 따름이다.
우리는 성경에 기록되었던 이적이나 기사를 예수님과 관련된 계시의 성격으로 이해하고 믿는 것으로 만족해야 한다. 그 사건들은 전적으로 우리에게 계시로 주어졌으며, 그것은 곧 그 사건들이 우리의 구원과 밀접한 관련이 있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큰 이적과 기적이 있다면 그것은 우리가 구원을 받았다는 바로 그 사실임을 명심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