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이 진짜 지옥을 방문하셨나요?
박형용 목사(합신 명예교수, 신약학)
구원받은 성도가 교회생활을 한 기간이 어느 정도 되고 성경을 정독하는 성도라면 예수님이 죽으시고 부활하신 어간에 지옥을 방문하여 “옥에 있는 영”들에게 복음을 전하셨는지에 대한 궁금증을 가질 수 있다. 왜냐하면 우리들이 예배 시간에 고백하는 “사도신경”에는 “지옥에 내려가셨으며”가 포함되어 있지 않지만 모든 영어 번역의 사도신경(The Apostles’ Creed)에는 “지옥에 내려가셨으며”(He descended into hell)가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만약 “지옥에 내려가셨으며”를 포함하여 “사도신경”의 인접된 부분을 번역하면,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되시고, 지옥에 내려가셨으며,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으며”로 정리해야 한다. 그리고 영어 번역이나 라틴어 번역의 “사도신경”이 “지옥에 내려가셨으며”를 구체적으로 명시하고 있는 이유는 베드로전서 3:18~19의 내용 때문이다. 베드로전서 3:18~19은 “그리스도께서도 단번에 죄를 위하여 죽으사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셨으니 이는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려 하심이라 육체로는 죽임을 당하시고 영으로는 살리심을 받으셨으니 그가 또한 영으로 가서 옥에 있는 영들에게 선포하시니라”(벧전 3:18~19, 개역개정)라고 읽는다. 베드로가 “육체로는 죽임을 당하시고 영으로는 살리심을 받으셨으니”라고 말한 뜻은 예수님의 “몸”(body)과 “영”(spirit)을 대칭시키기 위한 것이 아니고, “예수님의 성육신 기간의 생애”와 “예수님의 부활이후의 생애”를 대칭시키고자 한 것이다. 그러므로 “영으로는”의 뜻은 예수님의 부활이후의 영적인 존재 양태를 가리키는 것이다.
본 구절은 난해한 구절이다. 성경은 예수님이 그의 부활과 승천 사이 기간에 방문한 옥에 있는 영들이 노아의 홍수 때에 멸망한 불순종한 사람들이라고 설명한다(벧전 3:20). 이 말씀에 대한 해석이 학자들 사이에 의견의 일치를 보지 못한다. 어떤 이는 예수님이 직접 지옥을 방문하여 홍수 때부터 갇혀있는 죄인들의 영혼들에게 구원의 메시지를 선포했다고 주장한다(Clement of Alexandria). 어떤 이는 선재하신 그리스도께서 노아(Noah)를 통해 홍수이전에 살았던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했다고 주장한다(Augustine, Wayne Grudem, 1 Peter, Inter-Varsity Press, p. 158). 또 어떤 이는 그리스도께서 영으로 지옥을 방문하여 노아 홍수 이전에 회개하여 림보(Limbo: 지옥의 변방)에 갇혀있는 의로운 영들을 구조하셨다고 주장한다(Cardinal Robert Bellarmine). 벨라민 추기경의 견해는 카톨릭 교회의 지지를 받는 견해이다. 또 어떤 이는 예수님이 그의 죽음과 부활 사이에 타락한 천사들(즉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과 결혼한 것으로 표현된 타락한 천사들, 창 6:2; 벧후 2:4; 유 6)에게 복음을 선포하셨다고 주장한다(Friedrich Spitta). 이런 모든 주장은 베드로전서 3:18~19을 바로 해석한 답이라고 인정할 수 없다. 그 이유는 대부분 자신의 상상에 의지하여 조작된 견해로 성경적인 지지를 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성경은 어디에서도 예수님이 그의 부활과 죽음 사이에 지옥을 방문했다고 가르치지 않는다.
그러면 예수님이 죽으시고 부활하신 어간에 진정으로 지옥을 방문하여 그들에게 복음을 선포하셨는가? 우선 이 질문의 답은 “그렇지 않다,” “예수님이 친히 지옥을 방문하시지 않았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예수님이 지옥을 직접 방문할 이유가 전혀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지옥 방문을 인정하는 것처럼 읽히는 베드로전서 3:18~19을 어떻게 이해해야하는가? 베드로는 “영으로는 살리심을 받으셨으니 그가 또한 영으로 가서”라고 기록한다. 원어의 표현으로 “영으로는 살리심을 받으셨다”는 표현은 바울의 고린도전서 15:45의 “살려주는 영”(pneuma zoopoioun: pneu’ma zw/opoiou’n)이라는 표현에서 발견되는 같은 용어(zoopoietheis: zw/opoihqeiv”)이다. 이 용어는 예수님의 부활체와 연관되어 특별한 의미를 함의하고 있다. 예수님은 그의 부활을 통해 성육신 이전의 상태처럼 편재하실 수 있게 되었다. “살려주는 영”의 상태로 부활하신 예수님은 편재하실 수 있는 상태로 다시 진입하셨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한글 개역개정은 베드로전서 3:19을 “그가 또한 영으로 가서 옥에 있는 영들에게 선포하시니라”로 번역한다. 그런데 본 절의 “그가”는 헬라어 “엔호”(en ho: ejn w/%)로 되어 있다. 이 말씀은 부활하셔서 “살려주는 영”이 되신 예수님이 어떤 일을 하셨는지를 설명하고 있다. 예수님은 부활하신 후에 “살려주는 영”이 되셨기 때문에 편재하실 수 있게 되었는데,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성취하신 구속의 복음이 지옥을 포함한 모든 곳에 알려졌다는 뜻이다.
칼빈(Calvin)은 “그리스도의 지옥 방문”을 설명하면서, “나는 그리스도께서 그의 성령의 능력으로 그들에게(지옥에 갇혀있는 죽은 자들) 비추셔서, 그들이 오직 소망가운데서 맛보았던 은혜가 이제는 온 세상에 분명하게 보여 졌음을 깨달을 수 있게 하셨다는 것을 기꺼이 받아들인다. 베드로서에 있는 구절도 이런 의미로 설명될 수 있다. “그가 또한 영으로 가서 옥에 있는 영들에게 선포하시니라”(벧전 3:19). 문맥은 그 시간 이전에(역자 주: 그리스도의 부활이전) 죽은 신자들이 우리와 함께 동일한 은혜를 나누게 되었다는 것을 생각하도록 인도한다. 베드로는 그리스도의 죽음의 능력이 죽은 자들에게 까지도 침투되어 경건한 자들의 영혼이 간절히 기다려왔던 그 방문을 현재 눈으로 보는 기쁨을 칭송하고 있다. 반면에 악한 자들은 그들이 모든 구원으로부터 배제되었음을 더욱 분명하게 인식하게 되었다”(John Calvin, Institutes, Bk. 2, Chap. 16, Vs. 9)라고 정리한다. 칼빈의 베드로전서 3:18-19의 해석은 예수님이 옥을 직접 방문하셨다는 뜻이 아니요,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통한 구속 성취의 소식이 옥을 포함한 온 세상에 전파되었다는 뜻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베드로전서 3:18~19을 근거한 예수님의 지옥 방문은 받아들일 수 없는 견해이다. 단지 베드로는 예수님이 그의 부활을 통해 인간의 죄 문제를 해결하시고 대적으로부터 승리하셨음을 전하기 원한 것이다. 예수님은 그의 부활을 통해 승귀하심으로 죽음을 정복하시고 승리하셨음을 갇혀 있는 타락한 영들에게 선포하신 것이다.(Simon J. Kistemaker, Peter and Jude (NTC). Grand Rapids: Baker, 1987, p. 145). 베드로는 예수님의 부활을 통해 구속의 복음, 화목의 복음, 생명의 복음이 완성되었으며 지옥에 있는 영들도 이 사실을 알게 되었다는 것을 전하기 원한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고백하는 사도신경의 “지옥에 내려가셨으며”는 실제로 예수님이 지옥을 방문한 것이 아니고, 구속성취의 소식이 지옥에도 전파되었다는 의미로 이해해야 한다. 어쩌면 한글 번역의 사도신경이 “지옥에 내려가셨으며”를 삭제한 것은 이런 오해를 불식시키는 데 일조했다고 사료된다.
<박형용 저, 목사님 이것이 궁금해요, 합신대학원출판부, 2020>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