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른 땅에 단비를]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_장홍태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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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장홍태 선교사(GBT, SIL아시아 디렉터)

 

자와(Jawa)에서 신학교를 나온 크리스(Kris)는 성경에 관한 이해가 나름 출중하다. 그래도 왐본어 번역팀에는 유다스(Yudas)보다 더 늦깎이로 들어와, 지금은 번역 끝물인 조판을 위한 마지막 읽기에 참여하고 있다. 궁금한 것이면 생각보다 말이 먼저 터지는 성격이라, 제법 느긋한 성격의 소유자인 유다스와 아내가 번역한 책에 부자연스러운 표현이 들었는지 찾는 것도 컴퓨터 검사기 못지않게 재바르다.

이런 그가, 창세기를 점검하던 마지막 날 자기는 목소리를 내며 읽고, 아내와 왈로리나(Walorina)는 눈으로 따라 읽던 중에 급브레이크를 밟았다. “아, 이거 이상하네요. 확실히 이상해 …” 뭐가 문제인지 아내가 묻기도 전에 꺼낸 질문은 이랬다. “시므온과 레위한테 야곱이 주는 축복이 왜 이래요? 이건 용감한 아들들한테 할 말이 아닌 것 같은데요?” 확신에 찬 그의 음성은 바로 전날 읽었던 디나의 복수 사건 (창세기 34장)을 제대로 지목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에 대한 해석이 엇갈렸다. 듣고 있던 왈로리나까지 설득이 되어 고개를 끄덕이는 상황 … 여동생의 복수를 위해 나쁜 놈만 아니라 그 동네 남자들 씨를 말린 것이 얼마나 용감무쌍한 일인데 아버지의 축복이 그 모양이냐는 것이었다. 성경을 읽다 말고 또 한바탕 왐본 부족의 가치관을 뒤집어 놓는 아내의 설교와 토론이 벌어졌음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러잖아도 지난주에 따나메라(Tanah Merah)에서 청년 둘이 주검으로 발견되어 소문이 자자했다. 디굴강 상류에 사금이 나온다는 소문에 그곳 청년들조차 왐본 북쪽 마을까지 보물찾기 원정을 하러 갔던가 보다. 그리고 정말 사금을 제법 줍자, 한 사람은 더 찾겠다며 앞서 돌아가려던 친구에게 자기가 모은 것을 가족에게 전달해 달라고 부탁했다. 하지만 맡겼던 청년이 나중에 내려와서 그 금을 찾아보니 식구들은 금시초문이라고 했던 모양. 그러자 자기가 사금을 잡힌 친구를 찾아, 그만 아니라 그의 형까지 죽이는 참극이 벌어졌다.

이 일로 또 얼마나 오래, 복수의 피바람이 몰아칠지 두려운 일이다. 원인이야 어찌 되었든, 사건의 경위나 합리성보다 복수 자체가 정의가 되어 온 가문에게로 원수 관계가 대물림되는 것이 이곳에서는 너무나도 흔한 일이다. 어쩌면 얼마 전 우리의 속을 태운 유다스 일도, 그의 할아버지 대에 일어난 사건과 무관하지 않다.

우리 번역팀에서 함께 일한 마띠우스(Matius), 한때 서울까지 함께 여행길에 올라 두 달 가까이 방까지 함께 쓴 동료이자 대학 동문인 유다스에게 왜 그리 깐깐하게 구는지 우리로서는 썩 이해되지 않는 구석이 있었다. 그런데 나중에야, 해답은 그들의 성에 있음을 알게 되었다. 마띠우스는 마웨낌(Mawekim), 유다스는 심빌랍(Simbilap) 집안이다.

지금으로부터 약 65년 전, 마띠우스와 유다스의 할아버지 대에 마띠우스의 할아버지였던 미똡 노마이(Mitop Nomai)는, 촌수를 모르긴 해도 일가 사람으로 따겔롭(Tagelop)과 꼴랏(Kolat) 형제들과 지척에 살면서 서로를 의지했다. 지금 망글룸 활주로의 뒤편이 그 형제네 땅이었고, 마띠우스의 친할아버지는 인접한 뜨딴(Tetan) 시내 오른편에서 북쪽의 산을 아스라이 바라보며 살았다.

그러던 어느 해, 따겔롭의 동생 꼴랏이 세상을 뜨자, 늘 그렇듯 형은 동생의 죽음에 책임을 물을 두 사람을 지목했다. 그리고 그 추측을 바로 행동에 옮겨 한 사람을 죽이자 남은 한 사람은 황급히 피신했다. 따겔롭은 죽은 동생의 원수로 치부되는 시신을 가만둘 리 만무했다. 자신이 시신의 내장을 구워서 먹고, 가슴 위는 본때로 바깥에 내걸었다. 몸 아래는 미똡에게 선물해서 그의 친형제들 다섯이 나눠 먹게 했다.

하지만 도망친 사람 역시 가만있지 않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니옵(Niop), 따룹(Tarup), 까와깃(Kawagit), 꼬후(Kohu) 등 망글룸의 남쪽 지역에 있던 자신의 친구들을 모아 와서 따겔롭 집을 둘러쌌다. 숫자로 보아서는 따겔롭이 곧 죽을 위기에 처했지만, 그에게는 최고의 응원군이 있었다. 다름 아닌 미똡. 그는 단순히 그의 일가가 아니라 그 일대 최고의 궁수였다. 따겔롭의 보호에 나선 그는 활로 일거에 침입자들의 머리와 가슴을 쏘아 죽이며 두려움을 불러일으켰다. 이제는 숨어서 시체라도 뺏기지 않으려고 일주일간의 대치 상황이 지속하던 중에, 미똡은 끝까지 활시위를 놓지 않아 손가락이 거의 끊어질 지경이 되었다고 한다.

결국 적들은 포기하기에 이르렀고, 시신 역시도 따겔롭의 차지가 되었지만, 이 일 이후로 더 많은 적을 두게 된 그는 지역을 벗어나 망글룸의 동쪽 땅으로 이주하게 된다. 미똡은 오히려 영웅 대접을 받고 자기의 땅을 고수할 수 있었지만, 후손을 생각해 가족 명을 개명하기에 이른다. 그 새 이름이 마웨낌(Mawekim)이었다.

한편, 보다시피 이 역사에는 후손들이 구체적으로 이름을 밝히기조차 저어하는 익명의 등장인물이 있었다. 공교롭게도, 바로 그가 유다스의 할아버지였던 줄 우리는 몰랐다. 그런데 그렇게 굳게 비밀로 간직되던 심빌랍가의 연루설은, 유다스가 지금은 아내가 된 크리스티나(Kristina)를 좋아하게 되면서 조금씩 드러나기 시작했다. 크리스티나는 다름 아닌 마웨낌 사람이며, 마띠우스의 사촌 여동생이다. 그러길래 유다스가 어렵게 마띠우스에게 크리스티나를 향한 자신의 마음을 밝히자 마띠우스가 발끈했던 것이다.

“둘이 사귀기만 해봐, 아주……”

그의 대답이 이랬다기에, 우리는 설마 했다. 성격 좋지, 믿음 훌륭하지, 똑똑하지. 이만한 제부감이 또 어디 있다고 그런 말을 했을까 싶었다. 선남선녀가 둘 다 선따니에 있었으니 둘이 사귀네, 마네 말도 많고 평도 많았다. 아내도 우리 딸 어연이 적만큼은 아니었지만 번역하다 말고 연애 상담이 반나절씩 갈 때가 많았다. 그러던 유다스가 용기를 얻은 건 순전히 예수 영화 덕분이었다. 왐본 주민 중 장년층 다수는 자기들 말로 된 쪽 복음이 책으로 나와도 글을 몰라 갑갑하던 차에, 동네 사람들이 더빙에 참여한 예수 영화가 나왔다. 거기에 예수 목소리는 마띠우스, 그보다도 많은 분량을 차지한 내레이터 역은 유다스가 맡았으니, 사상 처음 복음을 왐본 말로 그렇게 잘 설명한 유다스는 왐본 아주머니들에게까지 일약 뭇 여성의 “교회 오빠”로 스타덤에 올랐다. 영화를 연거푸 몇 번이나 보고, 그 명쾌한 복음에 마음이 움직인 크리스티나의 어머니는 유다스에게도 복음으로 답했다. “너, 우리 딸 좋아한다며? 더 볼 것 없으니 당장 결혼해라. 너 같은 청년이라면 신부값도 안 받으마!”

유다스는 감격했다. 싱긋벙긋 우리에게 자랑하던 그 표정이 선하다. 돌아가신 아버지 말고 엄마를 제일 의지하던 크리스티나 역시도 용기를 냈다. 젊은이들의 용기는 약간의 부작용도 따르게 마련이지만 그건 우리가 어떻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우리가 파푸아를 잠시 떠난 사이, 드디어 결혼한다기에 온라인으로 하이파이브를 했는데, 마을에 가서 결혼식을 하자마자 금방 아들을 낳아 왔다.

이름은 파울루스(Paulus). 이 아들이 밝디밝게 자라길래 하나님의 축복 속에 이 신혼부부의 미래는 화창할 줄 생각했다. 이름조차 덮인 두 집안 간 원한의 뿌리에, 이제는 파울루스가 평화의 아이가 된 줄로 믿었다. 그러나, 복음에 감동하고 두 집안의 혼사를 마다치 않던 크리스티나의 엄마가 돌아가시자, 채 일 년이 지나지 않아 다시 약간의 서릿발이 내비친다. 엄마는 필요 없다고 했던 신부값, 마스까윈(maskawin)을 내놓으라고 크리스틴의 언니와 남은 식구들이 저마다 한소리를 하고 있으니 말이다.

우리가 하나님과 원수 되었던 것과 유대인과 이방인 같은 모든 차별의 벽까지 허무시려고 주님께서 오셨다. 복음에 눈뜬 사람은 그 회복을 스스로 누릴 뿐 아니라 자기 편의 벽을 깨고 상대를 초대한다. 하지만 하나는 받고, 나머지는 아직 승강이 중인 사람도 많다. 사실 주님이 우리에게 가르치신 기도 속에도 이웃에게 실천할 때에라야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누릴 수 있는 화해의 유비를 말씀하는데, 그 의미를 아직 모르는 게다.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 (마 6:12) 보복의 정의보다 화해의 복음이 힘 있는 물처럼 왐본 족속과 우리의 삶에 흘러넘치기를 기도한다.

(왼쪽부터 유다스, 파울루스, 크리스티나, 2021년 4월 마을로 향한 선교단체 Yajasi 경비행기에 오르기 전 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