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후감] 리처드 도킨스의 「만들어진 신」을 읽고_김수환 목사

0
642

전투적 무신론자의 오류를 보면서
– 리처드 도킨스의 「만들어진 신」을 읽고

김수환 목사(새사람교회)

 

 

얼마 전, 아파트 우편함에 지역 모 교회의 전도지가 마스크 한 장과 함께 포장되어 있었다. 마스크도 사용할 겸, 전도지에 관심이 있어서 내용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예수 믿고 행복하시고, 축복받으세요” 어쩌면 그렇게 철자 하나까지도 80년대 문구, 그대로였다. 그 전도하는 열정과 마음이야 당연히 절실하게 와 닿았지만 한편으로는 우리 복음이 마스크 한 장이라도 끼워주지 않으면 안 되는 천덕꾸러기가 된 거 같아, 못내 마음이 아팠다. “복음은 완벽한데, 도대체 무엇이 문제일까?”, 마땅한 해답도 없으면서, 한동안 긴 고민을 했다.

자신을 “단순 무신론자가 아니라, 전투적 무신론자로 불러 달라”고 했던 R. 도킨스 박사(영국 옥스퍼드대학교 교수)는 2006년경에 「만들어진 신(The God Delusion)」이라는 책을 발간하였다. 책이 출간되기가 바쁘게 전 세계적으로 100 만권 이상이 팔렸고, 국내에서도(600페이지가 넘는 두꺼운 책임에도) 15 만권 이상이 팔려나갔다. 지금까지 누적된 판매량을 모두 합친다면, 그 숫자는 상상을 초월하리라고 본다.

R.도킨스는 그 책에서 “신이 존재할 확률은 날아다니는 스파게티 괴물이 존재하는 것과 비슷하다. 신은 인간이 만들어 낸 허상이요, 성경은 신화에 불과하기에 기성 신자들을 그 무지로부터 돌아서게 하고, 세계의 모든 잠재적 무신론자들을 노골적 무신론자들로 만들며, 그들을 격려하겠다”는 저술 목적과 같이 아주 무서운 열정으로 무신론을 전파하고 있다. 아니, 온 세계는 그로부터 스스로 전파 당하고 있는 듯한 분위기다. 마치 은행에 예치해 둔 돈이 저절로 이자가 불어나듯이 말이다.

교회 바깥에선 이렇게 엄청난 일들이 일어나고 있음에도, 우리 교회 안에선 우물 안 개구리처럼, 고정된 우리만의 틀 안에 갇혀, 낮잠만 자고 있어 보인다. 마치 첨단 디지털 시대에 여러 개의 직업을 갖고 사는 사람들이 가만히 앉아 있어도 매월 수억 수천의 현금이 차곡차곡 통장계좌로 쌓이는 시대에, 하루하루 막노동해서 몇 만원 일당을 받는 것과 비교되는 기분이다.

물론 오늘날 모든 교회의 전도 방법들이 구태의연한 것만은 아니겠지만, 「만들어진 신」이라는 책의 예상을 뛰어넘는 파급 현상을 보면서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수많은 교회와 목회자들이 한 영혼을 구원하기 위하여, 많은 땀을 흘리며, 고생하지만, 그런 목회자들의 헌신과는 아랑곳없이, 교인 숫자는 해마다 무서울 정도로 줄어들고 있다. 그런데 한 무신론자의 책 한 권에 세계의 수많은 사람들이 열광적인 반응을 하고, 기성 신자들까지도 흔들린다니, 자존심이 상하고 자괴감마저 든다. 그동안 우리가 뭘 해왔으며, 앞으로 뭘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혼란스럽기만 하다. 그래도 「만들어진 신」이라는 제목은 비교적 예쁜 번역이다. 원제목은 「The God Delusion」으로 직역하면, “신이라는 망상”이다. 너무 원색적이고, 자극적이어서 불쾌감마저 든다.

원래 “망상”이라는 말은 “병적으로 생긴 잘못된 판단이나 확신으로써 사고(思考)의 이상 현상”을 의미한다. 우리 성도들을 과학적으로 증명되지도 않고, 존재하지도 않는 신을 믿는 자들로, 모두 비정상적 사고(思考)를 하는 자들로 규정한다. 쉽게 말하면 정신병 환자들이라는 말이다. 세상의 모든 것은 증명되고, 논리적일 때만이 가치나 의미가 있는데, 신과 성경은 증명할 수도 없고, 논리적이지도 않기에 신이라는 존재는 인간들이 만들어 낸 허상에 불과하며, 따라서 이를 믿는 자는 망상이라는 것이다. 그는 “누군가 망상에 시달리면 정신 이상자요, 다수가 망상에 시달리면 종교라고 한다”는 R. 피시그의 말을 인용하여, 우리 기독교인들을 가혹할 정도로 평가절하한다. 따라서 현명한 일은 과학으로 신의 자리를 대체하고, 과학으로 종교를 이길 수 있는 용기를 갖는 일이라고 강권한다.

물론 그가 모든 종교를 다 언급하는 것은 아니다. 불교와 유교는 신이 없는, 단순한 철학이나 도덕으로, 엄밀한 의미에서 종교로 보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 개신교는 아주 직접적이고 노골적으로 반박하는데, 바로 그 이유가 유일신을 믿기 때문이요, 세계 최대강국이며, 신권국가인 미국을 예상 독자층으로 선정함으로써 거두게 될, 극적인 효과를 노리는 시도라고 본다.

이어서 그는 신(종교)이 없어도 인간은 충분히 행복할 수 있으며, 도덕적일 수 있다고 한다. 미국에서 예수를 가장 잘 믿노라, 자처하는 보수 지지층들이 운집해 있는 지역(주)에서 강도와 같은 범죄들이 더 많이 발생하고 있다는 사실을 예로 들면서, 우리 인간은 결코 신(종교) 때문에 행복하거나 도덕적이지 않다고 강변한다.

오히려 종교(신)는 지식에 적대적이고, 세상에 행복이 아니라, 불행을 가져다줄 뿐이라고 힘주어 말한다.
그는 앞으로 종교(신)의 힘을 필요로 하지 않는 사회를 건설하는 게 그의 꿈이며, 신이 사라진 이후의 세계가 더 희망적이기에 마땅히 종교(신)의 자리를 과학으로 대체해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미래사회의 대안은 신(종교)이 아니라, 인간 그 자체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미국 사회에서는 무신론자의 지위가 유대인, 흑인, 동성애자보다 못하다고 하면서, 그들의 자긍심을 높이고, 위로하겠다는 것이다.

사실 이 책의 내용을 꼼꼼히 살펴보면, 결코 이 정도까지 세인의 주목을 받을만한 책이 아니다. 논리적이지도 않고, 체계적이지도 않다. 학문으로서의 가치가 있는 책도 아니다. 그가 하는 말이 다 옳은 것도 아니며, 완벽하거나 이성적이지도 않다. 문장력이나 논리전개도 매우 허술하기 그지없다. 캐런 암스트롱(영국종교학자)은 “포이어 바흐나 마르크스와 비교하면, 그의 지적인 깊이는 아주 얄팍한 사람이요, 그의 책은 한 무신론자의 과학적 측면의 견해 정도에 불과하다”고 혹평했다.

그런데도 이렇게 허술한 책이 왜 많은 사람들의 영혼을 흔들며, 열풍을 일으키는 것일까? 그 이유는 도대체 뭘까? 그것은 한마디로 부정적인 오늘날 우리 기독교의 현실과 화려한 그의 이력, 그리고 자극적인 사이다 발언을 좋아하는 현대인들의 취향들이 한데 모아진 결과라고 본다. 그러기에 사실 이 책은 어떤 논증을 위한 책이 아니라, 선동을 위한 책이라는 표현이 더 정확할 것이다. 문제는 이 책(만들어진 신)과 거기에 수반된 현상들이 어떤 이벤트 행사처럼, 일회성으로 끝나지 않을 거라는 사실이다. 1976년에 이미 「이기적인 유전자」라는 책으로 세계에 이목을 집중시킨 그는 <확장된 표현형> <에덴의 강> <눈먼 시계공> <악마의 사도> <지상 최대의 쇼>와 같은 걸출한 작품들을 출간했다. 금년 초에도 <신 만들어진 위험>이라는 무신론 시리즈를 발간하였다.

그의 나이가 1941년생이니 적지 않은 나이이다. 그러나 기독교의 유일신을 반박하고, 무신론을 옹호하는 서적들을 저술하고, 활동할 때는, 청년들의 체력 못지않게 열정이 넘쳐난다. 그는 지난 2006년의 「만들어진 신」 출간 직후, 그의 이름으로 재단까지 설립했다. 건강한 사회건설을 위하여 세속적인 사고, 세속적인 세계관, 세속적 가치관 등을 주장하고 표명하겠다는 것이다. 기독교 서양문명 일색인 현 사회에서 미신적인 종교 활동을 지양하며, 무신론을 체계적으로 전파하고, 무신론의 사도 노릇을 더 적극적으로 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로 보인다.

그는 원래 우리 기독교의 유일신을 믿는 독실한 신자였다. 하지만, 10대 때에 진화론을 공부하면서 철학자 B. 러셀의 「나는 왜 기독교인이 아닌가?」라는 책을 읽고, 영향을 받은 후, 신앙에서 돌아서 무신론자가 되었다. 70년 전, 한 무신론 철학자의 책을 통해서 신앙을 포기하고 무신론자가 되어버린 어린 소년, R. 도킨스는 다시 70년이 지난 지금, 세기적 무신론자가 되어 하나님과 우리 기독교를 공격하고, 잠재적 무신론자들을 노골적인 무신론자들로 만들며, 수많은 기성 신자들을 흔들어, 신앙의 자리에서 돌아서게 하는 데 앞장서고 있다.

한발 늦게 이 사실을 깨닫고, 역시 옥스퍼드대학 교수인 A. 맥그래스 박사가 1) 과학과 신앙은 충돌하지 않는다. 2) 믿음은 진보로부터 후퇴하지 않는다. 3) 종교의 세계관은 허상이 아니다. 4) 종교는 인간성을 손상시키지 않는다. 등의 내용을 담은 「도킨스의 망상」이라는 책을 써서 그를 비판하고자 했지만, 기대한 만큼의 효과나 반향을 일으키지는 못했다.

그동안 우리 기독교계는 도대체 무엇을 생각하며, 무엇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었다는 말인가? 오늘날 우리 교회와 우리 책들은 왜 그들의 책들과 또 그와 관련된 현상들에 대하여 속 시원한 대응을 못하고, 무기력하게 관망만 하고 있어야 하는가? 세상은 이들의 책에 열광하고 주목하고 적극적으로 반응하는데, 우리 기독교는 열광은 커녕 왜 냉소적이고 외면만 당해야 하는가? 너무 안타깝고 속이 상한다.

세상 사람들은 더 이상 신과 종교는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지도 못할 뿐만이 아니라, 전혀 도덕적이지도 않고, 오히려 사회에 해악만 가져다 줄 뿐이라는 그들의 말에는 아주 적극적으로 호응을 하지만, 우리 교회의 손짓에는 아주 무덤덤하다. 아니, 냉소적이고 부정적이며, 적대적이기까지 하다. 그럼에도 우리는 아무 일도 없다는 듯, 너무도 한가하게 “예수 믿으면 행복합니다. 예수 믿고 축복받으세요”라는 고전 전도용 축음기판만 되돌리고 있다. R. 도킨스는 우리 개신교의 유일신을 애초부터 존재하지도 않는 가상의 신이기에 “망상”이라고 규정한다. 그럼 영원 전부터 이미 완전함으로 존재하고 계신 그 하나님을 잘못 이해하고, 잘못 깨닫고 있는 것은, 과연 무엇이라고 불러야 할까?

지난 2000년대 미국의 성공한 목회자 중, 한 사람으로 평가되던 짐 베이커(세계 1,400만의 수신자를 가진 P. T. L이라는 기독교방송 네트워크와 300만평 규모의 해리티지 대표)는 실정법 위반으로 수감 중, 자신의 지난 목회를 반성하며 <내가 틀렸었다 I Was Wrong>라는 책을 출간하여 그를 부러워하던 많은 사람들을 놀라게 하였다. 사실 그는 목회 사역만이 아니라 성경을 보는 눈, 성경을 통해서 그가 인식했던 하나님까지도 잘못된 자기식 하나님이었음을 시인했다.

눅 10:25~26에 예수께서 “율법에 무엇이라 기록되었으며, 네가 어떻게 읽느냐”라고 물으신다. 예수의 질문인즉, 율법사 당신은 성경(본문)을 어떤 관점, 즉 어떻게 해석하느냐고 묻는 말씀이다.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영원 전부터 이미 존재하고 계신 하나님을 발견한다. 그러기에 성경의 해석은 매우 중요하다. 성경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서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 내 속에 계신 하나님은 과연 어떤 하나님일까? 하나님께서 계시해주시기를 바라셨던 그 하나님을 제대로 깨닫고, 그 하나님을 제대로 표현하며 사는 걸까? 혹여라도 하나님의 의도, 성경의 취지와는 전혀 다른 엉뚱한 하나님으로 오해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나님은 우리를 오해하는 법이 없으시지만, 우리 인간은 하나님을 얼마든지 오해할 수도 있다.

핸드폰에 내장된 내비 어플이 완벽할지라도 나의 활용 미숙으로 목적지를 정확하게 찾아가지 못하는 것처럼, 아무리 기록된 성경이 완전해도 해석의 불완전함으로 오류를 범할 수도 있고, 하나님을 오해할 수도 있는 것이다. 더 나아가 목회자의 하나님 오해는 목회자 개인만의 문제로 끝나지 않고, 교회 안에 있는 온 성도들에게 그대로 전가 되는 것이다.

신앙의 본질은 우리가 하나님을 알고, 그 하나님 앞에서 합당한 반응을 하는 것이다. 우리가 성경을 통해 깨닫는 하나님은 과연 어떤 하나님이며, 나를 통해서 성도들에게 전달되는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일까? 번영신학과 기복신앙, 적극적 사고방식과 긍정신앙, 표면적 문자주의, 율법적 도덕주의 신학과 신앙만으론 결코 R. 도킨스의 「만들어진 신」을 넘어설 수 없으며, 그와 관련된 광풍 같은 무신론 현상들을 잠재울 수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