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망의 코로나 vs 생명의 코로나
최광희 목사(행복한교회)
사망의 코로나에 너무 집중 말고 생명의 코로나(면류관)를 소망하며 살자
지난 2년 동안 우리가 날마다 들은 외래어가 ‘코로나’이다. 코로나(corona)는 원래 라틴어로 왕관(王冠)을 뜻한다. 그런데 천문학에서는 태양이나 다른 천구체의 빛나는 플라스마 대기를 코로나라고 한다. 플라즈마 대기의 모습이 마치 태양이 왕관을 쓰고 있는 것과 같기 때문일 테다. 이 코로나는 평소 ‘코로나그래프’라는 특수 망원경으로만 볼 수 있지만, 개기일식 때는 육안으로도 관측 가능하다.
또한, 의료계에서는 RNA 계열의 바이러스를 코로나바이러스라고 부른다. 이는 이 바이러스를 전자 현미경으로 관찰하면 겉 부분 가장자리가 왕관 혹은 태양의 코로나를 연상시키는 모양이기 때문이다. 이런 돌기 모양은 이 바이러스가 다른 사물의 표면에 잘 달라붙게 하는 특징을 가지게 한다.
코로나바이러스가 널리 알려지게 된 것은 2003년 사스(SARS) 때부터이다. 그 후 2015년의 메르스(MERS) 역시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한 병증세이다. 하지만 당시에는 증세에 따라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사스 SARS)나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MERS) 등으로 불렸기에 코로나바이러스는 크게 익숙하지 않았다.
그러나 2019년 12월부터 중국 우한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이 발생하자 이를 다른 해에 발생한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과 구별키 위해 해외에서는 COVID-19라고 불렀고 국내에서는 ‘코로나19’라고 부르기로 했다. 세월이 지나면서 사람들은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19’를 간단히 ‘코로나’라고 부르게 되었는데, 그 가운데 코로나가 원래 왕관을 뜻하는 좋은 말임을 기억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지 의문이다. 하여간 우리는 작년과 올해 날마다 ‘코로나’라는 소리를 들으며 코로나와 싸워 왔다. 이놈의 지긋지긋한 코로나는 도대체 언제 끝날까? 이 코로나가 과연 끝이 나긴 할까?
한편, 신약성경에는 코로나라는 아름다운 이름이 여러 번 등장하는데 대표적인 곳은 요한계시록 2:10이다. 여기에서 예수님은 죽기까지 믿음을 포기하지 않는 신자에게 생명의 관을 주리라고 약속하신다. 예수님은 서머나교회처럼 박해를 받는 상황에서 목숨 걸고 믿음을 지킨 사람에게 생명의 면류관을 주실 것을 약속하시면서 목숨을 잃더라도 믿음을 지키도록 격려하고 있다.
물론 신약성경은 헬라어로 기록되었기에 관(혹은 면류관)이 라틴어 코로나(corona)가 아니라 헬라어로 쓰였는데 그 단어는 바로 스테파노스(στέφανος)이다. 잘 아는 대로 스테파노스는 사도행전 6장과 7장에 등장하는 스데반 집사의 이름이다. 스데반(세테파노스 Στέφανος)은 목숨을 걸고 예수 그리스도를 증언하다가 돌에 맞아 순교했다. 하지만 하나님 나라에서 스데반은 생명의 면류관 즉 스테파노스를 받아쓰고 있으며 그의 이름은 교회사에서 해처럼 빛나고 있다.
신자가 매일 묵상해야 하는 코로나, 즉 스테파노스는 죽음의 코로나 즉 코로나바이러스가 아니다. 신자는 날마다 생명의 코로나, 즉 스데반 집사님이 천국에서 쓰고 있는 바로 그 스테파노스를 묵상해야 한다. 예수님이 서머나교회 신자들에게 약속한 바로 그 코로나, 즉 생명의 면류관을 묵상해야 한다. 야고보서에서, 시험을 참는 자에게 주님이 약속하신 바로 그 면류관을 묵상해야 한다.
그런데 2년 동안 코로나바이러스의 이름을 매일 듣다 보니 코로나 하면 생명의 코로나, 영광의 코로나보다는 사망의 코로나가 먼저 생각나고 사망의 공포에 사로잡히게 되었다. 신자가 믿음을 지키고 하나님을 섬기다가 죽더라도 생명의 코로나(면류관)를 받을 것을 믿는다면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이 무서워서 신앙생활을 포기하는 것은 합당치 않을 것이다.
예수님께서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실 수 있는 이를 두려워하라”(마 10:28)라고 하셨을 때, 두려워하지 말아야 할 대상은 박해자들만이 아니라 우리를 위협하는 코로나바이러스까지 포함하셨을 것이다. 그러므로 무려 2년 가까이 사망의 코로나에게 속아온 것이 속상하고 억울한 만큼 이제 더욱 생명의 코로나(면류관)를 소망하며 살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