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한데 미안하다고 말을 못하겠어”_백성훈 목사

0
136

“미안한데 미안하다고 말을 못하겠어”

백성훈 목사 (이름없는교회)

 

사랑한다는 말은 쉬운데 미안하다는 말은 어렵다.
나도 아내도 둘 다 부모님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많이 듣지 못하고 자랐다. 그런데도 우리는 연애를 하면서 서로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자주 해 주었다. 돌아보면 사랑은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 스스로 배우게 되고 말하게 된 것 같다.

“사랑해”
“왜 사랑해?”
“그냥 사랑하니까 사랑해”
“그러니까 왜 사랑하는데?”
“사랑하는 마음이 생겼으니까 사랑해”

그렇게 서로의 사랑은 그냥 사랑하니까 사랑하는 것으로 이해되고 해결되었다.  그런데 서로에게 미안하다는 말은 잘못했다. 나는 신혼의 행복을 누리는 동안 미안하다고 말하지 못하는 아내에게 서운함을 느끼고는 했다. 사랑한다는 말은 서로가 쉽게 해 줄 수 있었는데 미안하다는 말은 왜 그렇게 어려운 일일까? 
나는 미안하다고 말하는 것은 단순히 서로가 상황을 해결하는 하나의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미안하지 않은데도 미안하다고 한 적도 있다. 심지어 아내가 뭐가 미안하냐고 물어도 그냥 무조건 미안하다고 한 적도 많다. 나는 먼저 미안해함으로써 문제를 빨리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미안해”
“왜 미안해?”
“그냥 미안하니까 미안해”
“그러니까 왜 미안하냐고?”
“미안한 마음이 생겼으니까 미안해”
“아니 그건 미안한 게 아냐. 뭐가 미안한지도 모르면서…”

왜 사랑한다는 말은 되고, 미안하다는 말은 안 되는 것일까? 또 시간이 지나고 아내가 미안한 상황이 되었다. 그런데 아내는 그냥 미안하다는 말조차도 하지 않았다. 지난번에 뭐가 미안한지 물었던 적이 있으니까 지금 스스로 그 이유를 찾고 있는 것일까? 뻔히 미안한 상황인데 무슨 이유를 찾지?
나는 계속 아내를 이해하지 못하고 서운해했다. 그냥 미안하다고 말하면 다 끝날 것을… 그리고 또 시간이 지나고 나는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아내에게 화를 냈다. 왜 미안하다고 말하지 않는 거지? 분명한 이유가 있는데도 왜 미안하다고 말하지 않는 거지? 나는 따져 물었다. 아내는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한마디 울음 섞인 말투로 내뱉었다. 

“미안한데 미안하다는 말을 못 하겠어”

그때 알았다. 내가 모르는 감정이 아내에게 있었다는 것을. 내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감정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내가 아내에 대해 너무 모른다는 것을. 그 순간 예수님의 사랑이 생각났다. 회개하지 않는 우리를 십자가의 은혜로 덮어주신 그 사랑을 말이다. 십자가를 질 일은 아니지만 꼭 안아 주면 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생겼다. 그래서 나는 아내를 안아 주었다. 펑펑 우는 아내를 안아 줄 때 아내가 말했다.

“미안해”

정말 신기하게도 그 이후로는 아내가 미안하다는 말을 조금 더 적극적으로 하기 시작했다. 용기나 났나 보다. 나중에 아내에게 물었다. 왜 미안하다는 말을 못했냐고….

“미안하다고 말하면 내가 무너질 것 같았어”
“그런데 이제는 조금 편해졌어”

이제야 조금 알겠다 사랑은 그냥 사랑해서 사랑하는 것인데 미안함은 그냥 안 된다는 것을 말이다. 미안함은 어떤 사람에게는 쉽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어려울 수 있다. 그 이유를 묻기보다 그냥 안아주면 될 것 같다. 그것이 우리 예수님의 마음을 일상에 표현할 수 있는 좋은 방법임을 배우게 된다.

“여보 나도 미안해. 그동안 안아 주지 못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