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과 하나님의 나라 5
김진수 교수(합신, 구약신학)
여호와는 전쟁과 모든 삶의 문제에서 자기 백성을 구원하시는 구원자-왕이시다
구약에서 왕은 군사적으로 백성들을 적들의 위협에서 건져내는 “구원자”의 역할을 하도록 되어있었다. 이를 뒷받침 하는 예들은 많다. 몇 가지만 언급하면, 사울이 왕으로 세움을 입은 이유는 블레셋의 위협에서 백성을 구원하도록(yāšăʻ의 사역형) 하기 위함이었다(삼상 9:16). 다윗은 블레셋의 거인 장수 골리앗과의 대결을 통해 적들의 공격에서 백성을 지켜야할 구원자-왕의 자질을 발휘하였다(삼상 17장). 다윗이 아말렉 사람들에게 사로잡혀갔던 사람들을 구원한(nāṣăl의 사역형) 사건 또한 같은 의미를 갖는다(삼상 30:18). 훗날 압살롬의 난 이후 이스라엘 지파들은 다윗이 진정한 구원자였다고 고백한다: “왕이 우리를 원수의 손에서 구원하여 내셨고 또 우리를 블레셋 사람들의 손에서 구원하셨으나(mālăṭ의 강조형)”(삼하 19:9[10]). 왕과 구원자 역할의 관련성은 앗수르 왕 산헤립이 히스기야에 대하여 유다백성에게 한 말에서도 잘 나타난다: “너희는 히스기야에게 속지 말라 그가 너희를 내 손에서 건져내지(nāṣăl의 사역형) 못하리라”(왕하 18:29). 이 예들에서 알 수 있듯이 왕은 군사적 차원에서 구원자 역할을 했던 인물이다.
위의 사실로부터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의 참된 왕이심을 알 수 있다. 구약에서 여호와는 이스라엘의 구원자로 계시된다. 여호와의 구원자 되심은 출애굽 사건에서 특별히 강조된다. 이스라엘 자손이 바로의 압제 아래 신음할 때 하나님은 “강한 손과 편 팔”로 그들을 구원하셨다(신 4:34; 5:15; 26:8). 모세는 “여호와께서 애굽 사람에게 재앙을 내리실 때에 애굽에 있는 이스라엘 자손의 집을 넘으사 우리의 집을 구원하셨느니라(nāṣăl의 사역형)”(출 12:27)고 설명한다. 하나님의 구원자 되심은 홍해의 기적에서 더욱 극적으로 나타난다. 모세는 애굽 군대의 추격 앞에서 두려워 떠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구원자 하나님을 주목하도록 만든다: “여호와께서 오늘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yešûʻāh, yāšăʻ의 명사형)을 보라”(출 14:13). 이어지는 모세의 말은 백성을 위해 전쟁을 수행하는 왕의 모습을 연상케 한다: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출 14:14). 모세의 말과 같이 여호와는 이스라엘을 위하여 싸우셨다. 바로의 군대는 홍해에 수장되고 이스라엘은 여호와의 사자의 호위를 받으며 홍해를 마른 땅처럼 건넜다(출 14:19-20, 27-29). 홍해의 기적을 체험한 후 모세와 이스라엘 자손은 “여호와는 … 나의 구원(yešûʻāh)이시로다”(출 15:2) 하고 노래하였다.
출애굽의 구원사건은 구약 이스라엘 백성에게 지울 수 없는 기억을 남겼다. 이에 대해 베스트만(C. Westermann)은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구원의 첫 경험으로 인해 이스라엘은 여호와가 자신들의 구원자로 계신다고 이해했다. 처음에 그분이 구원자이셨던 까닭에 사람들은 계속 그분께 구원을 기대하고 간구하였으며, 구원을 경험하였다: 여호와는 구원하시는 하나님이다.” 출애굽의 구원사건은 죄로 인해 역사의 어두운 터널을 지나야 했던 구약 이스라엘 백성에게 구원의 소망을 다시 일깨워 주었다. 호세아, 이사야, 예레미야, 스가랴 등 선지자들은 과거의 출애굽 사건에 비추어 미래의 구원을 예언했다(호 2:14-15; 11:11; 사 43:16-20; 렘 16:14-15; 23:7-8; 슥 10:9-12). 특히 이사야는 이스라엘 자손이 포로에서 귀환할 일에 대하여 “애굽 땅에서 나오던 날과 같게 하리라”(사 11:15-16)고 예언하였다. 이사야는 또한 출애굽의 상황을 연상케 하는 표현을 사용하여 미래에 하나님이 이루실 구원을 예언하였다(사 52:11-12). 이사야서에는 하나님을 “구원자”(môšîaʻ)로 부르는 경우가 8회나 된다(43:3, 11; 44:6; 45:15; 47:4; 49:26; 60:16; 63:8).
하나님의 구원자-왕 되심은 그분이 자기 백성을 위해 싸우시는 “용사”라는 사실에서 가장 강하게 표현된다.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은 홍해를 건넌 후 “여호와는 용사시라”(출 15:3)고 고백하였다. 여기에 사용된 “이쉬 밀하마”(’îš milḥāmāh, 문자적으로 “전쟁의 사람”)는 여호와께서 전쟁을 수행하시는 분이심을 나타내는 시적 표현이다. 여호와는 구약에서 일반적으로 “용사”를 가리키는 칭호인 “깁보르”(gibbôr)로 불리기도 하신다(시 24:8; 사 9:5; 10:21). 선지자 스바냐는 여호와께 대하여 “구원하시는 용사”라는 뜻의 “깁보르 요시아”(gibbôr yôšîʻʻa, 개역개정역에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로 번역됨)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구약에 자주 등장하는 칭호 “만군의 여호와”는 하늘과 땅(이스라엘)의 군대를 지휘하시는 신적 용사(divine warrior)로서 여호와를 지칭하는 것일 수 있다. 출애굽 이후 이스라엘 지파들이 성막을 중심으로 진영을 갖춘 모습은 전쟁의 총사령관인 여호와-왕을 중앙에 모신 군대와 같다는 인상을 준다. 이스라엘 자손이 광야행진을 시작하기 전 “이십 세 이상으로 싸움에 나갈 만한 모든 자”를 계수한 일(민 1-2장)이나 광야의 행진을 “군대”의 행진처럼 묘사한 일(민 10장)이 이런 이해를 정당화해준다.
여기서 언약궤에 대한 민수기의 묘사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궤가 떠날 때에는 모세가 말하되 여호와여 일어나사 주의 대적들을 흩으시고 주를 미워하는 자가 주 앞에서 도망하게 하소서 하였고”(민 10:35). 이는 광야행진이 전쟁을 위해 나가는 군대행진과 같으며, 군대를 통솔하는 분이 여호와라는 사실을 알려준다. 언약궤는 가나안의 정복전쟁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스라엘 자손이 요단을 건널 때 언약궤가 앞서 나아가며 요단 강물이 갈라지게 만든다(수 3장). 이 놀라운 광경은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 가나안 땅으로 진군하시는 분이 여호와인 것을 나타낸다. 특히 다른 군사 활동 없이 언약궤가 여리고를 도는 것만으로 성이 무너진 사건은 여호와가 적군을 물리치는 신적 용사이심을 극적으로 보여준다(수 6장). 여호와께서는 때때로 전술을 구사하기도 하시며(수 8:1-2; 삼하 5:17-25), 필요한 경우 우박이나 우레(수 10:11; 삼상 7:10)와 천체(수 10:12-13; 삿 5:20)를 전쟁의 수단으로 사용하기도 하신다. 사사들이 적군과 전쟁할 때 그들에게 여호와의 신이 임한 것도 주목할 만한 일이다(삿 6:34; 10:29; 15:14). 그것은 여호와께서 친히 전쟁에 개입하신다는 것을 의미한다. 신명기의 전쟁규례 역시 같은 사실을 가르친다: “너희 하나님 여호와는 너희와 함께 행하시며 너희를 위하여 너희 적군과 싸우시고 구원하실 것이라”(신 20:4). 실로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삼상 17:47)이며 여호와는 “전쟁에 능한”(시 24:8) 분이다. 이런 의미에서 구약의 전쟁은 “여호와의 전쟁”이었다(삼상 18:17; 25:28 참조).
지금까지 살핀 내용에서 여호와가 강한 용사로서 적/원수들로부터 자기 백성을 구원하시는 구원자-왕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여기서 유다 왕 아비야가 북왕국 여로보암과 싸운 전쟁을 간단히 소개할 필요가 있다. 아비야는 여로보암에게 “다윗 자손의 손으로 다스리는 여호와의 나라”(대하 13:8)를 대적한다고 비난하였다. 유다 사람들은 여호와께 부르짖었으며 제사장들은 나팔을 불었다. 그러자 여호와께서 개입하셨다: “[그]때에 하나님이 여로보암과 온 이스라엘을 아비야와 유다 앞에서 치시니”(대하 14:15). 이 일은 구약 이스라엘이 다윗 왕가의 통치하에 연합하여야 할 “여호와의 나라”이며, 여호와께서 이 나라를 지키시고 보호하시는 진정한 구원자-왕이라는 사실을 재삼 확인해준다. 구약은 여호와께서 강한 용사로 임하셔서 적들을 심판할 “여호와의 날”에 대한 예언도 포함한다(욜 2:11 참조). 나아가 여호와의 구원이 미치는 범위가 군사적인 것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점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여호와의 구원은 질병에서의 치유(사 38:8), 죄의 용서(시 39:8; 51:16[14]), 사망에서 피함(시 68:20-21[19-20])까지 포함한다. 요약하면, 여호와는 전쟁을 비롯한 모든 삶의 문제에서 자기 백성을 구원하시는 구원자-왕이시다. 이 모든 일은 선지자 이사야가 장차 오실 여호와로 예언했던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되었다(사 40:3; 막 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