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개인주의 문화의 모순을 드러내라_고상섭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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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주의 문화의 모순을 드러내라

고상섭 목사(그 사랑교회)

 

혼자서는 이룰 수 없음을 알고 개인주의가 깨어져야 공동체가 형성된다

찰스 테일러는 <불안한 현대사회>에서 미국사회의 가장 큰 불안의 요소를 개인주의라고 꼽았다. 개인주의가 문명의 최고 업적이라고 말하지만 자기 생활방식을 자신이 선택하는 신념이며, 이것을 신뢰할 때 생기는 오류 중 하나는 자신보다 더 큰 질서를 무시하는 것, 즉 자신의 인생만을 중요시하기 때문에 삶의 폭이 좁아지는 것이다. 근대적 자유라는 구시대의 도덕적 지평으로부터의 단절을 통해 성취된 것이기에 옛날에는 자신을 보다 더 큰 질서의 한 부분으로 인식했지만 오늘날 개인주의는 자신보다 더 큰 질서를 제거해 버렸기에 삶의 영웅적 측면을 상실해 버렸다고 말한다.

<미국의 민주주의>를 쓴 토크빌도 “이런 목적 상실은 마음의 시야가 좁아지는 것으로 이어졌고, 사람들은 각자의 삶에만 초점을 맞추었기 때문에 보다 광범위한 시야를 상실해 버렸다.”면서 이전에는 ‘신’ 또는 ‘국가’라는 자신보다 더 큰 질서가 있었지만 이제는 개인의 자아만 남아 있고, 결국 열정의 결핍증을 앓고 있다고 한탄했다. 개인주의의 가장 어두운 면은 바로 자기 자신에게로 초점이 이동하는 것이다. 그러면 삶은 단조로워지고 협소해진다. 결국 삶의 의미를 갈수록 상실하기에 개인의 쾌락만 추구하게 되고 타인의 삶이나 사회에 대해서도 점점 무관심해진다.

얼마 전 갤럽조사에 따르면 교회에 다니지 않는 사람의 60%가 ‘관심이 없어서’라고 응답했다. 교회가 매력을 주지 못했다는 자성도 있지만 결국 개인주의라는 문화내러티브가 한국사회를 휩쓸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90년대 생이 온다’와 ‘관종의 시대’, ‘k를 생각한다’ 등의 새로운 MZ세대들을 따로 분석하는 책들이 나온다는 것도 개인주의에 물든 시대가 오고 있다는 이야기일 것이다.

찰스 테일러는 이런 개인주의의 뿌리에는 ‘도구적 이성 중심의 사고’가 있다고 말한다. 레슬리 뉴비긴도 다원주의 문화 속에서 복음을 전하는 방식을 이야기 할 때 ‘계몽주의 이성의 허망함을 드러내는 것’을 기독교 변증의 첫 번째로 이야기할 만큼 뿌리 깊은 문화내러티브인 개인주의를 깨뜨릴 필요가 있다. 단순히 복음을 선포하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개인주의가 깨뜨려지지 않는 복음은 교회 안에서 공동체가 아니라 점점 개인의 영성만 강화할 뿐이다. 그래서 문화 내러티브의 모순을 드러내 주는 것은 설교에서 매우 중요하다. 성경을 주해할 때 성경의 이야기를 드러내기보다, 당시 인간이 처한 상황, 즉 본문에 나타난 인간의 한계가 성경의 시대에는 그렇게 드러났지만 오늘날 문화에서는 동일한 인간의 죄가 어떤 형태로 드러나고 있는지를 알려 줘야 한다.

단순히 개인의 마음과 개인의 죄만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오늘날 우리의 사고와 세계관은 문화에 영향을 받으므로 반드시 오늘날 문화에서는 그것이 어떤 형태로 들어와 우리의 사고에 영향을 미치는지를 분명히 밝혀 줘야 한다. 그리고 포스트모던에서 버린 거대 담론을 개인의 일상과 연결시켜 줘야 한다. 내 자아보다 더 큰 의미가 있을 때 삶은 목적을 가질 수 있게 된다. 자기 자아가 가장 큰 인생을 살면 삶은 협소해지고 인생의 의미는 점점 상실된다.

혼자서는 이룰 수 없다는 것을 깨달으며, 개인주의가 깨어질 때, 비로소 공동체가 형성된다. 개인주의로 똘똘 뭉친, 계몽주의적 이성의 기준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청중인 현실 속에서 어떻게 복음을 선포해야 할지는 또 다른 숙제로 남아 있는 것 같다. 점점 인생의 의미가 없어지고 쾌락만을 추구하는 삶을 고통스러워하지만 여전히 그런 삶을 살아가는 이유는 개인주의 문화 내러티브의 모순을 깨닫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의 시대는 설교의 틀이 완전히 바뀌어야 할 것 같다. 기존 방식으로는 다음 세대에 효과적으로 복음을 전할 수 없을 것이다. 성경을 설교한다 말 속에는 시대의 문화적 내러티브를 분석해 삶의 모순을 드러내준다는 뜻이 포함된다. 선지자들이 구약시대 문화 내러티브를 드러내 선포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것을 해석해 주는 것이 설교가 아니라, 그것이 오늘날 어떤 형태로 나타나는지를 드러내어 문화내러티브의 모순을 드러내 줘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