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 교회의 미래?_임용민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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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의 미래?

임용민 목사(새소망교회)

교회의 미래는 교리적인 의미에서나 교회의 현실에서나 그리스도의 손 안에 있다

교회는 무엇인가? 교회에 대한 성경의 변함없는 진술은,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자의 충만이니라”(엡 1:23)이다. 교회의 머리이신 주님께서는 이 진리의 기초를 삼위일체 하나님의 영원한 뜻의 의논에 따른 작정에 있다고 친히 에베소서 1장에서 증거하셨다. 그래서 교회는 택자들의 모임이라 말하고, 이들에게는 하나님의 말씀이 주어지고, 이 말씀은 구원의 서정과 분리됨 없도록 성령의 적용하시는 은혜로 주어진다. 이러한 수단들은 교회인 택함을 받은 자들로 하여금, 삼위일체 하나님을 지극히 큰 상급으로 받는 일에 부족함 없는 수단이다. 참으로 유효적이고 복된 수단이다.

이렇게 복된 교회는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자의 충만으로서 존재한다. 그래서 택함을 받은 자들이 어디에 있든지, 어떤 시대에 있든지, 어떤 성별로 있든지, 어떤 형태의 빈부에 처해있든지, 건강하든 약하든 상관 없이, 선택의 작정의 실행의 기초이신 그리스도와 분리됨 없이 하나님의 말씀과 구원의 서정을 수단으로 구원을 받아, 삼위일체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게 된다. 문제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진리를 단순한 교리로만 받고 이해한다는 것에 있다. 아마 지금 이 글을 읽는 분들도 어쩌면 비슷한 생각을 할 것이다. “누가 이런 것 몰라!” “이런 교리가 무슨 현실의 대책이 된다고!”

그러나 바벨탑 이후에, 어느 누가, 아브라함의 구원과 그에게 하나님이 스스로 상급되어 주신다는 약속이 주어질 것이라고 상상했겠는가? 누가 바벨탑 이후 흩어진 인류의 죄악을 근심하면서, 아브라함을 부르시는 하나님의 예정하신 뜻을 미리 준비하고 있었는가? 다니엘이 죽고, 에스더가 죽고, 말라기 선지자가 죽은 이후에 누가 성자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을 미리 알고 준비하였는가?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이후에, 누가 사도 바울의 회심과 그 놀라운 복음의 증거를 미리 알고 준비할 수 있었는가? 타락한 로마 교회가 배교하여 악을 행할 때, 누가, 루터와 칼빈의 종교개혁을 미리 알고 내다보고 미래를 준비하였는가? 한국에 들어온 선교사들이 미래를 미리 내다보고 잘 대비하였기에, 현재의 한국교회가 있게 된 것인가?

교회는 조심해야 한다. 특별히 미래를 준비한다고 말하는 것을 특히 조심해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가 미래를 준비한다고 말하는 것이 대부분, 살아계신 하나님의 음성을 계시로 기록한 말씀을 거룩한 뜻을 알고, 그의 속성을 따라, 그 하나님의 영광에 합당한 방식으로 행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사람을 더 모이게 할 것인가가 아니면 어떻게 현재의 상태를 더 잘 유지할 것인가에 대한 것이기 때문이다. 교회의 존립은 사람의 많고 적음에 있지 않다. 살아계신 삼위일체 하나님과 그의 전체 속성과 분리됨 없는 뜻으로서 성경 계시를 합당하게 대하는, 하나님의 말씀의 흥왕에 달려있다.

이 하나님의 말씀의 말씀은 우리에게 명확하게 은혜의 수단들을 제시한다. 내적인 수단은 믿음과 회개이고, 외적인 수단은 말씀과 성례와 기도와 권징이다. 이것들을 가지고 오직 그리스도에게 돌아가고, 그리스도를 의존하고, 그리스도께 복종하고, 그의 말씀에 순복하는 것이 교회의 의무이다. 이런 의미에서 사도 바울은 에베소서 6:24에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변함없이 사랑하는 모든 자에게 은혜가 있을지어다”라고 말한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교회의 미래 오직 삼위일체 하나님의 은혜의 유무에 의존한 것임을 알아야 한다. 이 은혜는 은혜의 수단들과 분리됨 없이 역사한다. 은헤의 수단들이 없는데 은혜를 받았다고 말하는 것은 이상한 일일 뿐 아니라, 오히려 거짓된 것이 된다. 실제로 대요리문답은 주님께서 신약 교회에 은혜 언약을 경영하는 방식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은혜언약은 신약시대에 어떻게 경영되었습니까? [구약시대의 예표의] 실체이신 그리스도가 나타났던 신약시대에는, 동일한 은혜언약이 말씀 설교(막 16:15), 세례(마 28:19-20)와 주의 만찬(고전 11:23-25)이라는 성례의 집행에서 경영되었으며 아직도 경영되고 있습니다. 그것들을 통해서 은혜와 구원은 모든 나라 백성들에게 충만함, 증거, 그리고 [영적] 효력에 있어서 더욱 크게 제시됩니다(고후 3:6-18, 히 8:6, 10-11, 마 28:19).(웨스트민스터 총회의 문서들 중에서)”

우리는 생각해야 한다. 교회의 미래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신약 시대에 은혜 언약을 경영하시는 현실과 분리된 상태에서 말할 수 없다. 교회의 미래를 통계학적 수치로 말해서는 안 된다. 이것은 인간의 방식이다. 실제로 엘리야가 “나만 남았다”고 말했다. 그의 통계로는 구약 교회는 미래가 없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엘리야의 눈에 보이지 않는 무수한 자들이 택하심을 따라 되는 은혜로 바알에게 무릎꿇지 않고 존재케 하셨다고 가르쳐 주시며 교정하시고, 엘리사를 보내셨다.

삼위일체 하나님의 은혜와 그 은혜의 집행과 관련한 진리와 은혜의 수단들이 여전히 남아 있다면, 교회는 미래가 있다. 교회의 미래는, 우리의 예측에 있지 않고, 우리의 준비에 달려 있지 않다. 교회의 미래는 오직 삼위일체 하나님과 그의 뜻의 의논에 따른 선택의 작정의 실행의 기초이신 그리스도에게만 의존되어 있을 뿐이다. 현재 우리의 비참함, 우리의 세력의 몰락은 우리의 미래 없음을 함의하지 않는다. 이것은 오직 우리의 타락함을 함의할 뿐이다. 터진 웅덩이를 파고 있는 우리의 무지함을 함의할 뿐이다.

주님께서는 요한이 유배되어 소망이 끊어진 것 같은, 미래가 없어 보이는 신약 교회를 향해 이렇게 말씀하셨다. “두려워 말라 나는 처음이요 나중이니…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진 것을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치 아니하면 내가 네게 임하여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 … 모든 교회가 나는 사람의 뜻과 마음을 살피는 자인 줄 알리라 내가 너희 각 사람의 행위대로 갚아 주리라 … 거룩하고 진실하사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이 곧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닫으면 열 사람이 없는 그이가 가라사대 볼지어다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니 능히 닫을 사람이 없으리라”(계 2-3장).

교회의 미래는, 교리적인 의미에서 뿐만 아니라, 교회의 현실에 있어서도 오직 삼위일체 하나님의 뜻과 의논과 분리됨 없는 유일한 선택의 작정의 실행의 기초이신 그리스도의 손 안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