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단상] 자녀 교육에 관한 단상_민현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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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 교육에 관한 단상

민현필 목사(함께하는교회)

자녀들을 눈높이 교육이라는 미명 아래 너무 아이 취급만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프란시스라는 학자에 의하면 인생의 단계로서의 “유년 시절”은 최근에 생겨난 사회적인 구성물일 뿐이며, 로마 시대의 어린이들은 가족과 사회의 가치관 속에서 엄격하게 훈련되어야 할 필요가 있는 “만들어져 가고 있는 어른”으로 비춰지는 것이 일반적이었다고 주장한다.

흥미로운 연구인 듯하다. 이런 입장은 어릴 적부터 조상들의 이야기를 끊임없이 들려주고, 자신들이 누구이며, 어디에서 왔는지를 교육했던 유대인들의 전통을 떠올리게 한다. 그들 역시 아이들을 역사의식을 가진 당당한 사회의 주체로 세워가는 것을 중요한 소명을 인식했기 때문이다.

오늘날의 교회 교육, 학교 교육을 생각해 보면, 어린 자녀들을 눈높이 교육이라는 미명 아래 너무 아이 취급만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사단칠정 논쟁으로 유명한 당대 최고의 석학 퇴계 이황(50대 후반)과 젊은 초년생 기대승(30대 초반) 사이의 일화는 교육이란 것이 무엇이며, 다음 세대의 자녀들을 어떤 태도로 보아야 할 것인지에 대한 현대적인 인식에 새삼 신선한 도전을 던져준다.

당시 이황의 주변 사람들은 ‘젖 냄새나 는 어린 것과 무슨 천리를 논하느냐’며 핀잔을 주기도 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황은 역시 이황이었다. 기대승의 질문보다 훨씬 긴 답장을, 그것도 다른 제자들이 볼 수 있도록 공개된 편지 형식으로 보냄으로써 모든 이들이 기대승과의 논쟁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오늘날로 말하자면, 유명 신학교 교수가 자신의 학설에 도전하는 젊은 학부 신학생과 페이스북과 같은 매체를 통해 공개적인 토론을, 그것도 8년간이나 주고받은 셈이다.

이 논쟁을 통해, 이(理)와 기(氣) 사이의 관계를 논하던 한계에 묶여 있던 중국식 성리학은 인간의 마음과 정서에 대한 이기론의 심오한 함의를 성찰하는 독창적인 사유의 지평으로 한 단계 도약하는 결과를 가져왔다고 한다. 이황은 진정한 대인배였다. 내 요지는 이렇다. 유대인들과 로마인들, 이황과 기대승 사이의 논쟁은 각각 시대적인 분위기는 달랐을지라도 교육의 대상인 어린 자녀들이나 한참 어린 후배들을 ‘어떤 존재로 볼 것인가’라는 관점에서는 그들이 오늘날의 그것보다 오히려 앞서면 앞섰지 결코 뒤떨어져 보이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사역자들 세계에서, 담임 목사와 부교역자들 사이의 지나친 위계 구조가 창의적인 사역의 가능성을 치명적으로 제한시키는 경우가 허다하다. 10여년 정도 차이가 나도 한참 어린 후배 취급하기 일쑤다. 물론 조금 서툴 수도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약 후배들을 다음 세대의 교회를 이끌어갈 ‘지도자’라는 의식을 갖고 존대하는 태도를 취한다면, 향후 한국 교회가 어떻게 바뀔까.

또, 자녀들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보는 데는 대다수가 동의하겠지만, 여전히 야단치면서 다그쳐야할 어린 아이라고만 치부하는 것과, 그들을 하나님의 특별한 사명을 부여 받은 존귀한 존재로 인식하고 그들을 역사의식을 가진 존재들로 ‘키워나가는 것’은 전혀 다른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이르시되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마 18: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