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의 향기 8] 구약과 하나님의 나라 4_김진수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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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과 하나님의 나라 4

김진수 교수(합신, 구약신학)

 

여호와에게 목자의 칭호가 사용되거나 목양의 일이 돌려지는 것은 그분이 이시라는 사실을 나타낸다

하나님이 온 세상과 특별히 자기 백성을 통치하시는 “왕”(melek)이라는 사실과 밀접히 연결되어있는 개념이 “목자”(ʻeh)이다. 구약에는 직접 여호와를 “목자”로 칭하는 본문이 있는가 하면(창 49:24; 시 23:1; 28:9; 80:1; 사 40:11; 겔 34:15), 간접적으로 여호와가 자기 백성을 양떼처럼 먹이시고 인도하시는 “목자”로 묘사하는 본문들도 있다(창 48:15; 출 15:13, 17; 사 63:11; 렘 13:17; 23:1-4; 31:8-10; 50:19; 호 4:16; 미 7:14; 슥 9:16). 구약 이스라엘을 비롯한 고대 근동 세계에는 “목자”가 “왕과 신을 가리키는 통상적인 칭호”(common royal and divine epithet)였으며, 많은 경우 “여호와를 목자로 칭하는 것은 왕(melek)이란 칭호의 변형”으로 간주되기도 한다.

구약학자 소긴(J. A. Soggin)의 연구에 의하면, 주전 25세기 라가쉬의 왕 에난나툼 1세(Enannatum I), 고대 바빌론의 왕 함무라비(Hammurabi, 1792-1750 B.C.), 신아시리아의 아수르바니팔(Assurbanipal, 668-627 BC)이 목자의 칭호를 가졌다. 소긴의 말을 더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메소포타미아에서 목자의 칭호는 한편으로 제사장직의 수장이자 신들과 백성의 중재자로서 왕의 제의적 직능과 관계된다. 다른 한편, 왕은 자기 백성을 모아서 보호하며, 세상 재화들을 공급하며, 정의를 유지하는 일을 한다는 의미에서 목자이다.” 아이크롯(W. Eichrodt) 역시 목자 직분과 왕직의 관련성에 대하여 소긴과 유사한 설명을 한다: “왕의 통치를 가리키는 상징으로서 목자의 직분은 오리엔트 지역 전체에 퍼져있었으며 종종 정형화된 형태로 신들과 왕들에게 주어졌다. 궁정양식의 이런 요소는 철저하게 공적인 성격을 지녔다. 따라서 그것과 연결된 사랑과 돌봄의 특성이 그 직무의 성실도를 나타내는 자명한 요소의 하나로 나타나며, 신이나 인간 통치자의 보편적 속성이 된다.”

사실상 목축업이 발달한 유목문화에서 양들을 돌보는 목자의 직분과 백성들을 보살피는 왕의 직분 사이에 관련성을 발견하는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다. 목자가 양들을 풀을 뜯기에 좋은 목초지와 편안히 쉬는 장소로 인도하듯이, 왕은 백성들을 풍요롭고 평화로운 삶으로 인도하는 일을 한다. 또한 목자가 양떼들을 포악한 짐승들로부터 지키듯 왕은 백성들을 원수들로부터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뿐만 아니라 목자는 길을 잃고 산과 들로 헤매는 양들을 찾아오듯이 왕은 백성들 가운데 유리방황하는 자들을 바른 길로 이끈다. 이것은 구약 이스라엘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구약 이스라엘의 위대한 두 지도자 모세와 다윗이 원래 양을 치는 목자였다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어쩌면 그들은 양을 치는 일을 하면서 백성을 이끄는 지도자의 자질과 능력을 키웠는지도 모른다(시 78:70-72 참조). 훗날 다윗이 유다와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움을 입게 되었을 때 백성들이 그에게 한 말은 구약 이스라엘서 왕과 목자가 거의 동의어처럼 사용되었다는 인상을 준다.

“전에 곧 사울이 우리의 왕이 되었을 때에도 이스라엘을 거느려 출입하게 하신 분은 왕이시었고 여호와께서도 왕에게 말씀하시기를 네가 내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며 네가 이스라엘의 주권자가 되리라 하셨나이다.”(삼하 5:2)

이와 유사한 관점이 열왕기상 22:17에서도 발견된다. 선지자 미가야는 아합 왕이 아람과의 전쟁에서 죽게 될 일을 “목자 없는 양”에 빗대어 예언한다: “내가 보니 온 이스라엘이 목자 없는 양 같이 산에 흩어졌는데 여호와의 말씀이 이 무리에게 주인이 없으니 각각 평안히 자기의 집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더욱이 에스겔 선지자는 미래에 등장할 메시아 왕 다윗에 대하여 “목자”의 칭호를 사용한다: “내가 한 목자를 그들 위에 세워 먹이게 하리니 그는 내 종 다윗이라 그가 그들을 먹이고 그들의 목자가 될지라 나 여호와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내 종 다윗은 그들 중에 왕이 되리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겔 34:23-24; cf. 겔 37:24). 이런 말씀들은 구약에서 “목자”가 “왕”에 대한 은유로 사용되었음을 나타낸다.

따라서 구약에서 여호와에게 “목자”의 칭호가 사용되거나 또는 목양의 일(“인도하다”(nāḥāh); “먹이다”(ʻāh))이 돌려지는 것은 그분이 “왕”이시라는 사실을 나타내는 것이 분명하다. 여호와는 목자처럼 자기 백성을 인도하시는 분이다(출 13:17, 21; 15:13; 신 32:12; 느 9:12, 19; 시 5:8[9]; 23:3; 27:11; 31:3[4]; 43:3; 61:2; 67:4[5]; 73:24; 78:14, 53; 107:30; 139:10, 24; 143:10; 사 57:18; 58:11). 또한 구약의 여러 본문은 이스라엘 백성을 구체적으로 “양 떼”(ṣôn 또는 ʻeder)에 비유하며 여호와께서 그들을 인도하시고(시 77:20[21]; 78:52; 80:1), 지켜 주시며(시 107:41), 수효를 많게 하시며(겔 36:37), “우리”(개역개정역에는 “보스라”로 번역됨)에 두시며(미 2:12), 구원하신다(슥 9:16)고 말씀한다. 다른 한편, 여호와는 목자가 양을 먹임 같이 자기 백성을 먹이시는 분이다: “그는 목자 같이 양떼를 먹이시며 어린 양을 그 팔로 모아 품에 안으시며 젖먹이는 암컷들을 온순히 인도하시리로다”(사 40:11; cf. 겔 34:13-14, 16); “원하건대 주는 주의 지팡이로 주의 백성 곧 갈멜 속 삼림에 홀로 거주하는 주의 기업의 양 떼를 먹이시되 그들을 옛날 같이 바산과 길르앗에서 먹이시옵소서”(미 7:14; cf. 호 4:16).

구약에서 여호와가 “목자”이신 것을 가장 아름답게 표현하는 곳은 시편 23편이다. 여기서 시인은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1절)고 고백한다. 이 고백의 이면에는 자기 백성을 가장 좋은 길로 인도하시는 여호와에 대한 깊은 신뢰가 있다. 이스라엘 백성은 40년간 광야에서 결핍을 경험하였지만,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시는 여호와로 인해 결핍에서조차 만족을 얻을 수 있었다(신 2:7 참조). 시인은 계속해서 목자가 양을 돌보는 모습을 연상케 하는 은유를 사용하여 자기 백성의 필요를 공급하시며 바른 길로 이끄시는 여호와의 왕적 보살핌을 노래한다(2-3절). 여호와는 목자의 지팡이와 막대기로 양떼(백성)를 안내하고 사나운 짐승들(원수들)을 물리치신다(4절). 마침내 여호와는 양떼에게 승리를 주시고 그들을 “여호와의 집”(성전)에서 영원히 살게 하신다(5-6절).

여호와의 목자 되심과 관련하여 빼놓을 수 없는 본문은 에스겔 34장이다. 이곳에서 하나님은 양떼를 돌보지 않고 도리어 양들을 잡아먹는 목자들의 악행을 강하게 질타하시며 그들에게 심판을 선고하신다(1-10절). 그런 다음 하나님은 친히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실 것을 말씀하신다. 하나님은 잃어버린 양들을 찾으실 것이며, 흩어진 모든 곳에서 그들을 건져내실 것이며, 좋은 꼴을 먹이실 것이며, 이스라엘 높은 산에 두실 것이며, 좋은 우리에 누워있게 하실 것이다(11-15절). 하나님은 또한 쫓기는 자를 돌아오게 하시고, 상한 자를 싸매 주시고, 병든 자를 강하게 하실 것이다(16절). 뿐만 아니라 하나님은 양과 양 사이에 심판하여 좋은 꼴을 독점하고 약하고 병든 양들을 괴롭히는 “살진 양”을 벌하실 것이다(17-22절). 특별히 하나님은 다윗을 목자로 세워 이스라엘을 먹이게 하실 것이라고 말씀하신다(23-24절). 여기서 “다윗”은 다윗 계열의 메시아 왕을 가리키며, 훗날 스스로를 양들을 위해 목숨을 버리는 “선한 목자”로 소개하는 다윗의 자손 예수에게서 성취되었다(요 10:11). 끝으로 하나님은 “내 양 곧 내 초장의 양 너희는 사람이요 나는 너희 하나님이라”(겔 34:31)고 말씀하심으로써 당신 자신이 이스라엘의 참된 목자이심을 분명히 하신다. 이상의 내용은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참된 왕이시며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백성임을 재확인해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