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신 40년! 나의 인생 40년!
허태성 목사(HIS 파송 일본 선교사)
합신총회를 통해 그 구성원으로 사용해 주신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
나의 사랑이요 자랑인 합신 총회 설립 40주년을 맞이하여 총회를 세워주시고 오늘까지 40년 동안 선한 길로 인도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린다. 그리고 지난 40년 동안 총회를 신실하게 섬겨주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를 드린다. 또한 나를 그 구성원의 한 사람으로 선택해 주셔서 함께 걷는 영광과 기쁨을 누리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찬양을 올려 드린다.
1980년은 한국 사회에 있어서 격동의 한 해였다. 갑작스런 대통령의 유고 상황을 맞이한 대한민국은 혼란 속에서도 희망을 꿈꾸는 ‘서울의 봄’을 맞이했으나 봄은 오지 않았다. 오히려 광주에서 들려오는 믿기지도 않고 확인할 방법도 없는 기막힌 소식을 숨죽이며 들어야 했다. 암울한 시대에 희망의 등불이 되어야 했던 한국의 장로교회마저 지방색과 교권 문제로 크게 분열되어 맛을 잃은 소금처럼 밖에 버려져 밟힐 지경이었던 그 해에 대학을 졸업하고 안면도 꽃지 해변의 작은 초등학교에서 교사로서의 사역을 시작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미래를 향한 희망과 힘찬 전진을 하여야 할 청년의 때에 나는 무기력증에 빠져 있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은밀하게 일하고 계셨음을 세월이 한참 지난 후에야 알게 되었다. 나에게 있어서 안면도에서의 5년은 사도 바울의 숨겨진 아라비아에서의 삶과도 같았다. 아이들을 가르치고 지역교회를 섬기며 살아가던 중 맞이한 첫 번째 여름방학 때 신복윤 목사님을 처음 뵙게 되었다. 그 때까지만 해도 합신 총회는 아직 구성되기 전이었다. 하지만 신복윤 목사님을 알게 된 것이 8년 후에 내가 합동신학교를 선택하는데 결정적인 요인이 되었고 결과적으로 그 선택은 나를 합신 총회의 구성원이 되게 만들었다. 그리고 8월에는 여의도 광장에서 열렸던 80세계복음화대성회에 참석하여 선교사가 되겠다는 서원기도도 드렸다. 왜 그런 엄청난 기도를 드렸는지 나도 모른다. 이러한 모든 것은 오랫동안 맞출 수 없는 비밀의 퍼즐과도 같았다.
1980년에 하나님께서는 나보다 앞서 가시며 나의 목회자로서의 인생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두 기관을 먼저 출범시키셨다. 나의 신학적 고향 합동신학교와 내가 한국에서 13년간 부목사와 담임목사로 섬겼던 강변교회가 그 해에 태어나게 하셨다. 그리고 이어서 1981년에 나의 자랑인 합신총회가 세워지게 되었다. 그러나 그 당시에는 이러한 사실을 나는 전혀 알지 못했다. 대한민국 역사상 최초로 올림픽이 개최되던 1988년에 나는 첫 번째 사역인 8년간의 교사생활을 끝내고 합동신학교에 입학함으로써 두 번째 사역인 목회자의 길에 들어섰다. 나는 신학교에 입학할 때까지만 해도 합신총회가 있다는 것도 몰랐고 합신 총회 내에 아는 분도 전혀 없었다. 하지만 합신총회는 나를 따뜻하게 맞이해 주었고 경충노회를 통해서 전도사와 강도사 그리고 목사로 만들어 주셨다. 신학교 3학년 때 공주에서 교회를 개척하여 첫 목회를 시작하던 나에게 그 시절에 선배 목사님들께서 베풀어 주신 사랑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합신총회를 통해서 하나님은 나를 계속해서 키워주셨고 그 안에서 마음껏 일하게 하셨다. 50세가 되기도 전에 나는 은곡교회의 담임목사로서 목회를 하면서 총회 지도부장, 남서울 노회장, 기독교개혁신보 편집위원, 총회 선교부 이사,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 법인이사 등 총회내의 여러 기관들을 섬기게 하셨다. 돌이켜 생각해 보니 그 모든 것은 감당할 자격도 없는 무익한 종에게 메워진 부담스러운 멍에였지만 동시에 어린 나귀 새끼와도 같은 나를 사용해 주심에 대한 감사와 즐거움이 넘치는 명예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60세가 되기 전에 하나님은 나를 세 번째 사역인 선교사로 부르셨다. 당시 합신총회세계선교회(HIS) 부이사장이었던 나를 강변교회 목회를 끝내고 선교사 후보생이 되어 HIS에서 MRC 훈련을 받고 2017년 12월 17일에 강변교회에서 HIS로부터 일본선교사로 파송을 받아서 일본으로 오게 하셨다.
나의 미래는 앞으로도 합신총회와 같이 가게 되리라 전망된다. 내가 일본에 들어오던 해에 합신총회와 일본장로교회가 선교협약을 체결하게 되면서 나는 일본장로교회 초청으로 종교비자를 얻어서 일본에 입국하게 되었다. 그리고 지금은 일본장로교회 소속 일본인 교회를 출석하면서 일본인 교회 목회를 준비하고 있다. 나는 지금 남들이 가보지 않은 길을 걸어가고 있다. 환갑 나이에 선교사로 파송되어 현지 언어를 배워서 현지인들을 대상으로 목회하는 선교사를 아직 만나 보지 못했다. 내가 일본에 와서 새로운 도전을 할 수 있는 것은 일본장로교회가 신뢰하는 합신총회에 내가 속해 있기 때문이다. 나의 이 도전이 성공한다면 내가 먼저 걸어서 생겨난 그 길로 많은 후배들이 걸어올 수 있게 되리라 기대하며 준비하기를 부탁드린다.
지금 일본의 교회 숫자는 약 8,000개로 추산하고 있는데, 그 중의 1/10 이상이 목사가 없는 무목(無牧)교회이다. 그리고 목사의 고령화로 무목교회는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일본교회는 한국교회가 목회자를 보내주지 않으면 자체적으로 이 문제를 해결한 길이 없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나는 합신총회가 바울이 보았던 환상을 보기를 기도한다. ‘현해탄을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는 일본교회의 음성을 들을 수 있기를 바란다. 그러고 보니 안면도에서 전임사역자가 되게 해달라고 기도했던 날로부터 꼭 40년이 되었다. 하나님은 나의 기도를 들으시고 나를 위하여 합신총회를 세워 주셨다. 더욱 귀하게 합신총회를 사용해 주시길 축복하며 기도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