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과 하나님의 나라 (1)
김진수 교수(합신, 구약신학)
구약 신앙의 근간은 하나님과의 언약관계이며 구약의 중심은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나라의 건설이다
지난 번 글에서 밝혔듯이 구약의 신학적 중심은 “하나님의 나라”이다. 그런데 구약에는 “하나님의 나라”라는 표현이 직접 나타나지 않는다. 비슷한 표현인 “여호와의 나라”가 나오지만 역대상(28:5)과 역대하(13:8)에 각각 한 번씩 사용된 정도다. 물론 역대기에는 하나님의 나라 또는 주권을 뜻하는 단어 “마믈라카”( ממלכה )도 두 번 사용된다(대상 29:11; 대하 13:8). 다니엘서는 형편이 조금 낫다. 이곳에 여섯 차례(4:3; 34; 6:26; 7:14, 27) 반복되는 “그의 나라”(아람어로 מלכותה )는 “하나님의 나라”를 가리키며, 다니엘 2:44의 하나님이 세우실 “한 나라”(아람어로מלכו) 또한 마찬가지다. 시편에도 하나님의 통치/나라를 가리키는 명사가 나온다. “믈루카”( מלוכה), “말쿳”מלכות ), “멤샬라”( ממשלה ), “고이”(גוי) 등이 그것이다(시 22:29[28]; 45:6; 145:11, 12, 13; 106:5). 선지서에서는 오바댜 1:21에 하나님의 나라를 지칭하는 명사 “믈루카”(מלוכה)가 한번 나타난다. 하지만 이런 용례들은 구약의 방대한 분량에 비추어볼 때 소수에 지나지 않는다. 물론 구약에는 “왕”을 뜻하는 명사 “멜렉”(מלך)이 여호와 하나님을 가리키는 칭호로 사용된 경우가 42회나 된다. 그렇다고 할지라도 그것은 전체 구약과 비교할 때 여전히 미미한 숫자에 불과하다.
이런 관찰은 “하나님의 나라”를 구약의 신학적 중심으로 보는 것이 무모하다는 인상을 불러일으킬지도 모른다. 그러나 비슬리-머리(G. R. Beasley-Murray)가 옳게 말하였듯이 구약은 “나라”라는 추상적 개념 대신 역사 속에서 실행되는 하나님의 통치와 주권적 행위를 소개함으로써 하나님이 우주의 왕이실 뿐만 아니라 특별히 자기 백성 이스라엘의 왕이심을 드러내신다. 예를 들어, 아브라함의 역사를 보자.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큰 민족”을 약속하신 적이 있다(창 12:2 참조). “민족”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고이”(גוי)는 사실상 “지리적, 인종적, 사회적 또는 문화적 요소들로 특징지어지는 정치적 단위”로서 “나라”를 의미한다. 창세기 저자가 단지 “민족”이나 “백성”을 가리키고자 했다면 오히려 “암”(עם)이란 단어를 사용하였을 것이다. 후에 창세기 저자는 아브라함에게서 “왕들”이 태어날 것(창 17:6)과 유다의 후손 가운데 “통치자”(מהקק, commander)가 나올 것(창 49:10)을 예고한다. 이러한 사실로부터 알 수 있듯이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왕이 통치할 “큰 나라”를 약속하셨으며, 이 나라는 하나님이 직접 세우실 것이기에 “하나님의 나라”로 부르는 것이 합당하다.
아브라함에게 주어진 약속은 우선 다윗에게서 성취된다. 사무엘서는 다윗 시대에 어떻게 큰 나라가 세워지는지를 잘 보여준다. 특히 다윗 언약을 소개하는 사무엘하 7장은 다윗 왕국이 어떻게 세워질 수 있었으며 그 미래가 어떻게 될 것인지를 소상히 알려준다. 그런데 여기서 놓쳐서는 안 될 요소가 바로 하나님의 주권이다. 이곳에서 하나님은 1인칭(“나”)을 35회나 사용하시며 다윗을 통해 이뤄졌고 앞으로 이뤄질 모든 일이 하나님 자신의 뜻에 따른 일이라는 점을 강조하신다. 필자가 다른 곳에서 밝혔듯이, “양치는 목동이던 다윗을 불러 이스라엘의 주권자로 세워주신 분은 바로 하나님이셨다(8절). 다윗의 이름을 위대하게 만드시고, 그로 하여금 모든 대적들의 손에서 벗어나 평안을 누리게 하실 분도 하나님이시다(9-11절). 그리고 다윗을 위하여 집을 이루어 주실 분도, 다윗의 위를 영원히 견고케 하실 분도 여호와 하나님이시다(11-16절). 이런 의미에서 다윗을 통해 세워졌고, 또한 장차 세워질 나라는 하나님이 친히 세우시는 나라, 곧 ‘하나님의 나라’라고 부를 수 있다.”
“하나님의 나라”를 생각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언약”이다. 구약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언약의 하나님이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비롯하여 족장들과 언약을 맺으셨으며, 아브라함의 후손인 이스라엘 자손들과도 언약을 맺으셨다. 이들이 출애굽하여 가나안 땅으로 가던 도중 시내산에서 여호와와 맺은 언약이 그것이다(출 24:4-8 참조). 그런데 이 언약관계는 대개 다음과 같은 공식적인 문구로 표현된다: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겠고 너희는 내 백성이 되리라”(레 26:12; 렘 7:23; 11:4; 30:22). 이와 유사한 표현이 출애굽기 19:5-6에 나타난다: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할지니라.” 이 문구는 언약관계 안에서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백성이며 하나님은 그들의 왕이시라는 개념을 잘 표현한다. 결국 이스라엘 자손과 언약을 맺으신 하나님의 의도 속에는 택하신 백성을 자신의 뜻에 따라 통치하시는 왕국, 곧 하나님 나라의 건설이 자리한다고 할 수 있다.
이와 더불어 고려해야 할 사항이 있다. 그것은 1931년 코로섹(V. Korosec)의 연구에 힘입어 출애굽기, 신명기, 여호수아가 소개하는 언약의 형식이 기원전 2000년 후반기 히타이트 종주권 조약(suzerainty treaty)과 유사하다는 점이 알려지게 된 것이다. 코로섹을 따르는 멘덴홀(G. E. Mendenhall), 클라인(M. G. Kline), 킷천(K. A. Kitchen) 등은 히타이트 제국의 대군주가 주변의 소군주들에게 일방적으로 충성을 요구하는 조약체결의 관습이 있었으며, 성경의 저자들은 이것을 하나님과 그 백성간의 관계를 표현하는 수단으로 사용하였다고 추정한다. 클라인과 킷천은 히타이트 종주권 조약의 형식과 구약(특히 오경)에 나오는 언약형식의 유사성에 근거하여 성경기록의 고대성을 주장하기도 한다. 이것은 오경의 모세 저작설을 수용하는 우리에게 매우 고무적인 일임에 틀림없다. 이와 함께 우리에게 중요한 내용은 히타이트 종주권 조약이 보여주는 대군주와 소군주 사이의 관계이다. 그것은 오직 여호와만을 왕으로 섬겨야 하는 이스라엘 백성의 위치에 대한 구체적 유비를 제공해준다. 언약관계 안에서 이스라엘은 하나님께 절대적 충성을 바쳐야 하는 백성이며, 하나님은 그들에게 배타적 충성을 요구하는 하늘의 대왕이시다. 이 언약관계가 구약신앙의 근간을 이룬다는데 반대할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나라의 건설이 구약의 중심을 차지한다는 생각은 구약의 가르침에 부합되며 그것과 잘 조화를 이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