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며 섬기며] 인가귀도(引家歸道)_강현식 목사

0
335

인가귀도(引家歸道)

강현식 목사(북서울노회, 전도목사)

 

지금은 진정한 심방목회의 기회,

가정들을 하나의 진리로 묶어 주는 사역에 나서는 기회

오래 전 일산의 S교회에서 강도사로 학생부 심방을 실행한 적이 있다. 학생들의 경건한 삶을 이끌기 위해서 각 가정의 도움이 무척 필요하다는 당위로 인하여 시작된 심방이었다.
하나님의 말씀은 말씀 그 자체에 구속적 효력이 있다. 하지만 그 말씀의 구속력이 학생들에게 온전히 증험되기 위해서라면 한 가정이 한 말씀을 듣고 하나의 의식을 공유한 가운데 가족구성원들 서로서로가 서로에게 말씀의 경계와 독려가 되는 가정이어야 한다는 절박한 요구에 가치를 두었다. 그리고 이 절박함은 학생부 심방임에도 학생들과 함께하는 가족들 전원이 함께하는 심방이 되어야 한다는 원칙을 세워야 했다. 이러한 의도를 허락하신 담임목사님의 지도 아래 각 가정들이 함께해야만 하는 학생부 심방이 실천되었다.
당시 주님께서는 “한 가정이 한 말씀 아래 하나의 의식을 공유하게 해야 한다”는 교회의 신념을 주님을 향한 믿음의 실천으로 받아 주셨다. 심방 속에서 말씀의 권위를 신뢰하는 자들의 연합은 가정 내 불신자들을 향한 가족의 애정과 말씀의 권면을 나누는 장으로 인도되었다. 그리고 각 가정이 말씀을 따라 하나의 의식을 공유함으로 가정을 세워가야 한다는 ‘절박한 가치’를 그 가정의 가족규칙으로 수용하는 은혜를 주셨다.
심방을 마친 후 학생부에 속한 각 가정들이 가족단위로 함께 예배당에 와 예배를 드리게 되었다. 나는 담임목사님을 통해 부모님들이 듣게 된 말씀들이 학생들에게도 고스란히 주어질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으로 부교역자의 몫을 감당하게 되었다.
말씀 자체의 구속력을 믿는 교회의 신념은 말씀 자체의 구속적 효력이 이루어지는 최소단위로 성도의 가정들을 붙잡았다. 성도 개개인의 신앙과 삶의 경건은 성도 개인의 분투로 이루어질 수도 있겠지만, 성도연합의 최소단위이면서도 생활공동체의 최소단위인 가정을 통할 때 자연스럽게 성숙해지게 됨을 일깨운 계기가 되었다.
코로나19 이후의 사회문화는 혼란과 현란 속에서 새로운 절대와 기준을 만들어 내야만 하는 시대를 조성해 간다. 이념의 신앙화와 이상적 인간사회상의 추구는 대중의 종교성을 복속시키는 새로운 신앙들로 변모된다. 기독신앙의 전도지향이 현실의 상대적 가치와 현란한 표면의 가치에 몰려 있을 때, 성도들의 가정은 대중사회가 대신 세워가는 신앙화 된 이념에 잠식되고 있다. 신앙조차 이념의 이상적 가치로 인식되게 된 교회의 현실은 대중문화의 다양한 가치들로 전도(顚倒)되고 있다.
우후죽순 난립한 종교적 가르침들과 전도에 교회들의 신념들조차 부산스럽다. 인터넷과 SNS로 조성된 ‘집단지성’은 교회의 혼탁함을 찾아내어 비판하며 폄하하는 능력과 논리가 차고 넘치는 ‘대중’들을 만들고 있다. 성도들은 현실 속에서 ‘대중’들이 되고, 부산스러운 교회 속에서 정갈한 신앙에 대한 갈망에 눌려 숨죽인다. 코로나19에 의해 평범한 일상이 얼마나 귀한 은혜인지를 깨달은 세대들은 심령적 팬데믹을 동시에 경험하며 교회의 가장 기본 된 가치와 가르침의 정결함을 사모하며 신음하고 있다. 동방교회의 영성적 깨달음이 위로가 되는 삶으로 내몰리고 있다.
이러한 때, 나의 시선은 그 때의 아름다움을 바라본다. 오늘의 교회들에게 진정한 심방목회의 기회가 주어진 것이 아닌가! 주님께서 현실을 지배하는 보이지 않는 원리를 뒤집도록 무엇보다 먼저 가정, 가정들을 하나의 진리로 묶어 주는 사역에 나서게 하시고 있다는 목회적 판단이다. 신사참배를 거부한 채 유리방랑하면서도 이 땅에 임한 하나님 나라를 외쳤던 순교자들의 “인가귀도”가 오늘 우리에게서 결실을 맺을 때라는 촉급한 마음이다. 우리가 이미 사사시대와 신사참배 시대의 가르침 속에서 얻게 된 기본에 이 시대의 해법이 있다는 믿음이다.
개인적으로 조색을 해야 할 일이 많았다. 수백 가지의 색들로 채워진 색상표를 보고 소비자가 선택한 색들을 조색해 낸다. 삼원색인 파랑, 빨강, 노랑 색소들과 명도와 채도를 위한 흰색과 검은색으로 색상표의 모든 색들을 조색해 내는 것이다. 다섯 가지의 색들의 비율을 달리하며 하나하나를 섞어 나갈 때 경험하게 되는 색들의 조화는 자못 신비롭다.
그러나 그 조화의 신비를 경험하게 만드는 근원은 언제나 다섯 가지의 기본색이었다. 이에 비추어 나는 우리가 조화의 현상보다는 기본의 무한함에 주의하게 되는 기회가 주어지는 것이기를 희원한다.
우리는 현상의 현란함 속에 다양한 가치를 좆았던 분주함으로부터 기이한 조화와 신비의 기초가 되는 기본으로 돌아가야 할 시대 속에 서 있다. 그래서 기독신앙의 기본 가치를 붙들고 정갈하게 목회의 자리를 지켜온 합신의 목사님들께 시대적 책임과 소명이 주어지고 있다고 본다.
지금은 성경의 권위 아래 ‘다시금 끼워놓은’ 인과율에 매인 종교성들이 그 혼란과 결실에서부터 거부되는 때이다. 내일은 하나님의 내려오심이 원인이 된 결과 안에서, 그 결과가 원인이 된 성도들과, 그 성도들의 교회로의 신앙과 삶의 경건을 거룩과 영광의 내용으로 선언해야 하는 날이다. 내일은 성경의 권위 아래 정갈한 신앙에 대한 다림줄이 새롭게 놓이는 날이다. 계시신앙과 진리에 충실함이 기본이었던 선배들의 단순한 기본진리들이 오늘에 되살려져야 한다면, 그 토대는? 그렇게 주님께서 우리 합신을 ‘다림’하시는 것이기를 희구한다.
우리가 이 시대의 궤계를 이길 수는 없다. 그러나 그 궤계를 뚫고 갈 수는 있다. 말씀이 가신 구속력과 그 효력이 확장되는 증험을 따라, 우상숭배의 망령과 얽혀진 시대를 뚫고 가기 위한 시대의 외침으로 외쳐진 “인가귀도”가 그와 같은 오늘 우리의 시대를 뚫고 가는 동력이 되리라 본다. 교회 밖으로의 전도지향이 교회 안의 기본과 가치를 부요케 하며 성숙하게 하는 것이 될 수 있다. 우리에게는 주님의 뜻을 이루는 가정들로 주님의 뜻을 실행하는 지교회를 이룬다는 기본이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