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발
유영재 안수집사(남포교회)
우리의 발이 아름답다 칭함 받을 시간이 속히 되돌아오기를 간절히 기도해
고교시절 친하게 지내던 독실한 장로님, 권사님 댁의 아들이던 친구는 퇴계로에 있는 교회를 주일마다 강남부터 걸어 다녔습니다. 그 친구 부모님은 성경에 나오는 모든 금기사항을 자신들과 가족 그리고 주변에 철저하게 요구했었습니다. 그래서 주일에는 차비를 쓸 수가 없었습니다. 그 당시도 지금의 후불교통카드가 있었으면 문제가 없었을 듯합니다. 얼마 후 버스 토큰이 나오자 토큰은 괜찮다고 버스 이용을 양해해 주셨었습니다.
또 한 친구는 “주일날 교회를 빠지면 꼭 새똥이 하늘에서 떨어져”하고 말하곤 했습니다. 이 친구는 새똥뿐 아니라 교회를 빼먹은 다음날에는 얼굴에 여드름이 나서 나타나곤 했었습니다. 당시 교회를 다니던 많은 사람들은 성수주일이 주일헌금보다도 중요한 일이었던 것 같습니다.
가슴에 성경을 품고 그 위엄으로 말씀하시던 분들은 모두 위엄이 있으셨습니다. 그 분들은 모두에게 그러한 권위로 지시하고 안내하고 또한 쉽게 판결까지 하셨습니다. 성경을 어떻게 인용하였는지의 문제보다는 그 분들의 말씀 자체가 크게 염두가 되던 시절이었습니다. 우리들은 그분들의 지도에서 답을 못찾고 혼란이 오면 선배나 친구들에게서 도움을 받았습니다.
이런 도움은 정말 긴 시간의 대화로 이어졌습니다. 며칠 밤을 새기도 했습니다. 구석진 곳이나 우리만의 좁은 장소에서 붙어 앉아 소소한 이야기에서 진지한 이야기까지 대화를 하였습니다. 물론 답을 얻은 것은 아니었으니 또 모였습니다. 그 시간에 계속 그 문제만 이야기한 것은 아니지만 그런 끈끈한 대화로 많은 것들이 해결되거나 혹은 시간이 가며 무마되었었습니다.
오늘날은 그 모든 자리를 포털 검색 사이트나 SNS가 차지하지 않았나 하는 느낌입니다. 지금은 대화중에도 동시에 검색 사이트에 물어보며 대화합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는 손가락 터치 하나로 해결될 일을 만나서까지 의논하려 하지 않게 됩니다. 문제의 답은 얻었지만 결국 모두 혼자 방안에 화면만 보고 있습니다.
예전에 유명한 설교를 들으러 혹은 유명한 집회를 찾아 몰려다니던 열심히 있었지만 동영상 사이트에서 모든 것을 찾을 수 있는 지금은 그런 발걸음들이 무색해지고 말았습니다. 우리는 답은 얻을 수는 있지만 결국 혼자입니다.
내가 말씀을 찾아 다녔고, 확인한 은혜를 옆 사람과의 공감으로 확신하고, 나의 찬양을 성도들과 나누며, 성경지식을 구하러 다니며, 그 찾은 지식을 열광적으로 기뻐하며 뛰어 다녔던 발걸음들이 있었습니다. 무엇인가 찾으러 다녔고 또 찾은 것을 전하러 다녔던 것입니다.
헨델도 그의 역작 메시아를 통해 이러한 발걸음을 찬양했습니다. 이 오라토리오 제2부에 나오는 “How Beautiful Are Feet Of Them”. 이사야 52장의 내용을 노래로 전하며 헨델은 그들의 발을 아름답다고 표현합니다. 기쁜 소식을 전하고 있는 자,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치하심을 알리는 자의 발을 아름답다 하였습니다.
바이러스로 말미암은 우리의 멈춰져 버린 발걸음. 바이러스방역을 위해 성탄의 기쁜 순간을 나눠야만 하는 귀한 성탄 시즌을 전국민이 부득불 얼어붙게 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교회에서 함께 들어야 할 헨델의 메시아 오라토리오를 혼자 듣습니다. 우리의 발이 아름답다 칭함을 받을 시간이 속히 되돌아오기를 간절하게 기도해 봅니다. How Beautiful Are Feet Of Them의 그 Them이 우리가 되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