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은 2019년도 포럼 현장 모습
포커스
“한국 기독교 미술의 실천과 과제”
2020 ‘크리스천 아트 포럼’(C.A.F) 개최
제18회 크리스천 아트포럼이 아트미션(회장 이영신, artmission.co. kr) 주최로 열렸다. 이번 행사는 8월21일(금) 오후 2시부터 비대면(zoom) 학술대회로 진행했다. 기독교 예술사역단체 ‘아트미션’은 그동안 전시회와 학술회를 통하여, 창조질서의 회복을 위한 문화 사역을 22년간 달려왔다. 올해로 18회를 맞는 ‘크리스천 아트 포럼’(C.A.F)의 주제를 “한국 기독교 미술의 실천과 과제”로 정하여 예술 현장에서 일하는 네 사람의 작가, 이론가를 초청 한국 기독교미술의 현안과 미래의 청사진에 대해 토론을 벌였다. 이날 학술대회에는 방효성 (한국기독교미술인협회 회장)의 “한국 기독교 미술의 현주소”, 오의석 (대구 가톨릭대 교수)의 “한국 기독교 미술의 체현된 선교의식과 사역의 현장”, 김병호 (백석대학교 기독교전문대학원 교수)의 “한국기독교미술의 과제, H. R. 로크마커에게 길을 묻다”, 서성록 (안동대학교 미술학과 교수)의 “재난의 미술 – 14세기 흑사병에서 21세기 난민 사태까지” 등이 발표되었다.
발표 요지 >>>
첫 발제자로 나선 방효성 회장은 기독교미술을 좁은 의미의 ‘종교화’로 바라보는 것에 반대하는 대신 기독교세계관의 관점에서 기독교미술을 삶과 신앙의 집약으로 바라본다. 그는 “한국교회는 기독교 미술가들의 작업이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는 데 한 몫을 한다는 점을 인정해 주어야 하며 미술을 기독교인의 소명에서 배제하지 않아야 한다. 한국교회는 성도들이 하나님을 지성이나 의지로만 아는 것을 넘어 가슴으로 느끼고 눈으로 즐김으로써 하나님을 풍성히 누릴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향후 기독교 미술에 대한 관심과 이해를 촉구하였다.
오의석 교수의 발표에서 유럽 F국에 파송되어 작품을 창작과 전시, 설치를 통한 복음전도자의 삶을 살아온 P국제예술선교사의 사역 등 여러 해외선교 사례를 소개했다. 그는 이런 사역의 성격을 1) 작품 창작과 전시 발표를 통한 복음전도, 2) 미술교육을 통한 기독교 문화관과 복음의 확산, 3) 문화교류와 현지의 환경의 개선 등으로 구분하였다. 오 교수는 미술선교 단체와 미술선교사의 활동과 사역, 현장의 상황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고 또한 이 발표로 한국선교가 미술선교 사역을 효과적으로 활용하고 협력할 수 있는 길을 찾는 데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고 제언하였다.
김병호 교수는 개혁주의 미술이론가 로크마커에게서 방안을 찾으면서 성경적이고 동시에 기독교적인 두 가지 방안을 제시하였다. 김 교수는 기독미술인은 신앙과 하는 일(삶)과 그 일을 하는 방식(예술) 사이의 일치에 대해 숙고해야 한다며 기독교 성령의 도우심 안에서 신앙과 삶과 예술의 일치를 위해 평생을 두고 씨름해야 한다고 했다. 김 교수는 “부르심에 대한 응답으로서의 미술”을 강조하였다. 기독교미술가들은 자기작품에 만족하는 데서 벗어나 ‘예술적 성숙’을 도모할 것을 요청하였다. 여기에서 ‘예술적 성숙’은 사실적인 표현의 성숙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 조형 능력의 성숙을 포함한 ‘종합적 완성도’를 포함하는 말로 신앙이 뒷받침된 조형적 공교함을 일컫는다.
마지막으로 서성록 교수는 코로나 19로 지구촌이 신음하는 것을 염두에 둔 듯 “재난의 미술”이란 주제발표를 통해 미술가들이 재난과 어떤 관련성을 띠어왔는지 발표하였다. 그는 14C 유럽의 흑사병으로부터 비롯된 마카브르 단스, 16C 네덜란드 흑사병이 촉발시킨 바니타스 정물화, 그리고 1910년대 후반의 스페인독감에 감염된 화가들, 9.11 사건과 그로 인한 작품, 지구촌 난민들과 그들의 고통을 담은 작품들을 소개하였다. 서교수는 크리스천 미술가들도 시대의 아픔을 공감하고 이들과 함께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암울한 시기야말로 고귀한 소명을 받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며, 이 통찰은 우리의 세상을 지금보다 친근하고 우호적인 세상으로 나가게 만들 것이라고 믿는다.”며 기독교미술의 역할을 강조했다.
주최측은 이번 학술대회를 통해 교계에서 한국 기독교미술에 대해 이해가 높아지고 또한 창작 및 수용의 두 방면에 걸쳐 한층 저변이 넓어지기를 희망했다.
<취재 _ 편집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