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하는 신앙| 주머니와 신발 _ 김종열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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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는 신앙

 

주머니와 신발

 

<김종열 목사 | 총회 교육부 총무>

 

우리에게 신발주머니는 없고 복음의 신발만 있으나
주님은 그 발을 부르트지 않게 하신다

 

신발과 주머니가 있다. 아들이 고등학교 때 교복을 입고 실내화 주머니를 들고 등교하던 모습이 선하다. 이제 장성하여 더 이상 신발주머니를 가지지 않고 대신 해병대 장교요 군목답게 두꺼운 군화를 신는다.

신발 입장에서는 주머니가 고마운 존재다. 그러나 신발이 주머니 안에만 있으면 제 역할을 할 수 없다. 신발이 제몫을 하기 위해서는 주머니에서 벗어나 산에 오르고 들판을 뛰어야 한다.

타락한 죄인인 사람은 그 성향이 신발보다 주머니에 가깝다. 주머니 안에 머물러 안전하게 보호 받기 원한다. 거친 길을 다니며 닳고 찢어지고 상하는 것을 회피하려 한다.

사도 바울은 예수님은 하나님의 비밀이요 충만하신 보배인데 우리가 질그릇에 가졌다고 했다. 보배가 드러나기 위해서는 질그릇이 금 가고 깨져야 한다. 질그릇은 바로 주머니고 보화는 신발 같다고 생각한다.

주머니의 시간은 과거와 미래이다. 과거에 신발을 샀다. 미래에 신을 것이다. 현재가 없다. 그러나 신발은 항상과 지금과 영원의 현재이다. 항상 신을 수 있고 지금 당장 신고 길을 나선다. 그 길은 영원 복락의 길이다.

미련한 자는 신발을 주머니에 담으려 한다. 베드로는 예수님이 고난을 받고 죽음과 부활을 말씀하실 때 “주여 그리 마옵소서” 했고 “사탄아 물러나라”는 책망을 받았다. 예수님의 왕의 길 십자가 구원과 부활 영광의 길을 막은 것이다.

나는 어떠한가. 신발인가 주머니인가. 우리 교회는 어떠한가. 지금 코로나 사태로 교회보다 집이 또 혼자가 더 안전하다는 주머니 안으로 들어가길 강요받고 있다. 이럴 때 우리는 주머니를 찢고 신발을 신고 푯대를 향하여 전진해야 한다.

박윤선 목사님은 새로운 곳에 가시면 가장 먼저 기도할 곳을 찾으셨다고 말씀했다. 우리는 신발을 신고 그곳이 산이든 골짜기든 성경 읽고 묵상할 곳을 찾아야 한다. 신발을 신고 때로는 높은 곳으로, 깊은 곳으로, 넓은 곳으로, 좁은 곳으로 가서 주님을 찾고 만나야 한다.

에덴에서 마귀는 하와의 생각을 권리와 불만의 주머니에 또 골리앗에겐 거짓과 탐욕과 위협의 주머니에 감옥처럼 가뒀다. 우리의 주머니 안에는 이런 죄의 오염과 부패가 가득 차 있다. 그래서 쉽게 원망하고 분노한다.

주머니에 어떤 로고가 새겨 있든 신발보다 가치가 없다. 나는 지금 나라고 하는 브랜드의 주머니를 아름답게 꾸미고 그 브랜드에 스스로 만족하고 있는가, 아니면 더러워진 신발을 신고 있는가. 사람은 주머니의 브랜드를 본다. 그런데 주님은 헤진 우리의 신발을 보신다.

천국문 앞에는 신발주머니는 없고 내가 어떤 신발을 신고 있는가가 보일 것이다. 나의 신발은 주머니에 잘 보관된 깨끗하고 고운 신발인가 아니면 닳고 더럽혀진 신발인가.

주님의 군사에게 신발주머니는 없다. 광야의 이스라엘처럼 낡고 오래된 신발만 있을 뿐이다. 주님은 복음의 신발을 신은 자의 발을 부르트지 않게 하시고 만나를 주시며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인도하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