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밤이 깊어 빛나는 별
<이상목 목사 | 동산안교회>
자기 앞가림도 힘들고 사방이 막힌 이때가 함께 기도할 때다
내가 사는 이곳은 도시보다 별이 밝다. 늦은 밤에 올려다보는 별은 유난히도 영롱하게 빛난다. 별에 빠져 한때 망원경을 사기도 하였지만 별을 보는 최고의 길은 더 깊은 어둠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라는 것을 곧 알게 되었다. 맑은 날 밤에 깊은 어둠에서 하늘의 별은 “햐~”하는 외마디 감탄을 자아내고야 만다. 그렇다고 내가 어둠을 사랑하는 것은 아니다. 그저 어둠속에서 별이 빛나더라는 말이다.
지금 세상은 어둠이 짙어가고 있다. 코로나19가 짙은 색을 더하는데 일조는 하였지만 사실 이 어둠이 시작된 지는 꽤 오래 되었다. 그리고 점점 어둠이 칠흑처럼 짙어지는 듯하다. 이런 형편이니 예수님이 우리더러 너희는 빛이라 하신 말씀이 새롭다. 다니엘은 주안에 있는 우리가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날 것이라 하였다.
요즘의 짙은 어둠은 우리가 맑고 투명한 빛이라는 사실이 밝히 드러날 기회인 듯하다. 지금은 우리가 과연 빛인가 하는 것이 가장 큰 이슈다. 빛이기만 하다면 이 캄캄한 시절에 밝히 드러나는 것은 당연하겠으니 말이다.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다(엡5:9). 호시절에야 누구나 착할 수 있다. 의롭고 진실할 수 있다. 곡간에서 인심난다고 하지 않는가? 그러나 어둠의 계절이라면, 누구나 힘들고 어려운 시절이라면 참으로 빛의 자녀만이 빛의 열매를 맺지 않겠는가? 내가 이렇게 장황하게 빛을 노래한 것은 여러 날 내 마음을 번민케 하는 두 동역자 때문이다.
개척교회를 하는 동역자와 농촌교회를 목회하는 다른 동역자다. 저들은 열심히 주를 섬기는 중 어려운 일을 당했다.
한 분은 아내가 악성 뇌종양에 걸렸다. 교회를 개척하여 신실하게 충성되게 섬기다가 뜻하지 않게 만난 암초다. 다른 한 분은 올 가을에 은퇴를 앞두고 있으나 은퇴 후의 생활에 대해서는 아무 대책도 세울 수 없는 가난한 농촌교회를 평생 목회하신 분이다.
저들을 생각하면 앞이 캄캄하다. 내가 해 줄 수 있는 것이 너무 작아서 어깨만 처진다.
“그동안 열심히 살았으니 이제 마지막으로 장렬히 죽으시오!”
이럴 수는 없지 않은가? 세상에 믿는 자들이 저들 두 가정뿐이라면, 우리가 저들과 함께 죽기까지 주께 헌신하는 동지가 아니라면 그럴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저들은 우리의 동료다. 함께 울고 웃으며 주를 섬긴 형제다. 그러니 가슴이 끓는다. 신실하고 충성되게 주를 섬겨온 저들을 저렇게 두고 볼 수는 없는 노릇이다.
지금이 호시절이라면 좋겠다. 지금이 교회의 부흥기라면 좋겠다. 그러면 저들과 함께 하기가 더 좋을 것 같다. 그러나 지금은 코로나의 계절이다. 어둠에 어둠을 더하였다. 힘든 이들은 더 힘들고, 모두가 자기 앞가림도 벅차다. 사방이 막혔으니 지금은 주님께 기도할 때다. 힘든 이들이라도 함께 기도하면 좋겠다.
“하나님, 열심히 살았으니 이제 남은 것은 장렬한 전사입니까? 어둠이 깊어 빛을 기다립니다. 이 깊은 어둠을 밝힐 빛은 어디에 있습니까? 저들을 보시옵소서. 하나님, 저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자비를 베풀어 주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