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기독교 시
묵시 默示
박이도
오래 전 그것이 내 앞에 나타난다
하루가 가면 새 날인데
오래 전 그것이 또 나타난다
강바람에 물 냄새 맡으며
하염없이 따라가던 강둑길
하구의 질펀한 뻘밭에서
아
나는 바다가 있음을 처음 보았다
그때
어두컴컴한 하늘
마지막 부서지는 햇살을 차단하며
나타나는 형상을 보았다
말로는 다 할 수 없는
두려움과 순종의 내 모습을 보았다
사방이 막혀 버린 길
나는 눈을 감았다
오래 전 그것이
문득문득 내 앞에 나타난다
* 박이도 朴利道 시인(1938년~ ) : 평북 선천 출생. 1962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당선. 경희대 국문과 교수 역임. 기독교적 상상력과 인간의 보편적 삶을 감성적인 언어로 구현했다고 평가받는다. 대한민국 문학상(1991), 편운문학상(1995), 기독교문화대상(1984), 교육부장관표창(2003)등 수상. 시집 <회상의 숲> <북향> <폭설> <불꽃놀이> <홀로 상수리나무를 바라볼 때> <누룩>. 시선집 <침묵으로 일어나> <반추> 등 다수. 현재 <창조문예> 주간.
사진 _ 포구의 구름 | 편집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