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의 뜨락| 하나님의 은혜, 다시 생각하기 _ 김영완 성도

0
113

은혜의 뜨락

 

하나님의 은혜, 다시 생각하기

 

<김영완 성도 | 목포장로교회>

 

철저한 이타심으로 최전선에서

몸을 사리지 않은 분들에게 경의를 표한다

 

올해도 어김없이, 봄날이 왔다. 가만히 눈을 감고 하늘을 향해 햇살을 온몸으로 받아내면 봄의 온기가 겨우내 얼었던 마음을 녹이고 어느새 야릇한 욕망이 되어 온종일 가슴을 설레게 한다. 봄꽃들도 들뜬 마음을 진정하기 어려워 서둘러 화려한 색을 지천에 토해내고, 한편에선 잔바람에 쉬지 않고 흔들거리는 꽃나무 가지가 “날 보러 와요”하며 반갑게 손짓한다. 하지만 올해에는 사람들이 찾아오지 않아서일까, 아니면 너무 이른 봄날의 열정 때문일까? 계절의 중력을 버티지 못하고 일찍 생을 마감한 꽃들이 서서히 지기 시작한다. 실연당한 어느 젊은이의 찢어진 연애편지처럼 지면에 아무렇게 무리지어 쓰러진 꽃잎들은 어디선가 불어오는 바람에 이리저리 흩어진다. 애석하게도 그 텅 빈 꽃길에서는 이를 누구 하나 측은하게 바라보는 이가 없어 쓸쓸하다. 올해는 그렇게, 봄날은 간다.

태초에 하나님께서 천지를 선하게 창조하셨으나 아담이 선악을 알게 하는 열매의 맛을 보게 된 이후로 피조세계는 심하게 일그러져 버렸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 창조 때 부여하신 질서는 온전히 존재하고 있다. 비록 인간의 죄로 인해 자연은 고통 속에서 생성과 소멸의 과정을 반복하고 있지만, 하나님께서 자연세계를 통해 보여 주신 위대한 섭리는 전적으로 타락하여 오만하게 되어버린 인간을 겸손하게 만든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지독하게 부패한 인간을 불쌍히 여기시어 어둠 속에서도 진리를 더듬을 수 있는 지성과, 도덕적으로 옳지 못한 것에 대해 어느 정도 스스로 판단할 수 양심을 주셨다. 이를 수단으로 인류는 문명의 발전과정에서 괄목할 만한 성과를 낼 수 있었던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인간 모두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신 증거이며, 때문에 믿지 아니한 사람들조차 하나님을 모른다고 핑계할 수 없는 이유이다.

물론 그 은혜는 구원에 이르는 은혜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모두에게 베풀어 주신 은혜를 택자들을 위해 별도로 베푸신 특별은혜와 혼동하여 이해하고 있다면 그것은 심각한 오해다. 다만 교회 울타리 너머에도 진선미가 있고, 정상적인 사고를 지닌 사람이라면, 이에 대한 가치를 인정하면서 크게 존중할 줄 안다. 예를 들어, 현 재 전 세계적으로 강타하고 있는 큰 재난의 중심에 노고와 헌신을 아끼지 않고 너나 할 것 없이 뛰어드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만 보아도 무리 없이 알 수 있는 부분이다. 때로는 불신자들도 불합리한 것에 목숨을 걸고 저항하여 세상을 바로잡기 위해 노력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인간의 삶에 있어서 높은 차원의 윤리적 가치에 대한 기준을 제시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들이 세상에 선한 영향력이 끼쳤다고 해서 믿지 아니한 그들에게 구원의 영역으로 초대하는 것은 굉장히 위험한 일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기 위해 애쓰는 것이 아니라 자기 신념에 따라 생각하고 행동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에도 다양한 분야에서 불신자들의 공헌으로부터 크고 작은 혜택을 누리고 있는 것만은 부인하기 어려운 사실이기 때문에 신자들은 이를 결코 무시하거나 거부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그들을 위해 격려하고 기도해야 한다. 또한 그들을 통해 세상에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를 깊이 생각하고 항상 그 사랑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을 지니며 살아가야 한다.

예년과 다를 바 없이 맞이하는 계절이지만 어수선한 시국으로 인해 올해에는 봄을 누릴 만한 여유가 없다. 만약 감상에 젖어 봄날의 낭만 따위를 이야기한다면 곧바로 적나라하게 비난을 들어야 할 만큼 오늘날 모두에게 찾아온 이 ‘불손한 손님’을 곤혹스럽게 응대하느라 온 세상이 분주한 모양새다. 그러면서 단 한 번도 경험해 본 적이 없는 까다로운 손님을 어떻게 달래서 잘 보내드려야 할지 다들 고심 중이다. 대체로 미숙한 응대 탓에 손님의 화를 돋우어 가까운 시일 내에 보복을 당하기도 하고, 다른 어떤 곳에서는 노련한 솜씨로 그분을 적절히 만족시켜 당사자가 감당해야 하는 손실을 최대한 막아내고 있다.

철저한 이타심으로 재난의 최전선에서 몸을 사리지 않고 앞장선 많은 분들에게 깊은 경의를 표한다. 하루 속히 상황이 진정되어 일상을 되찾을 수 있기를 희망한다. 그리고 이번 사태로 인하여 안타깝게 희생당한 사람들의 생명이 한낱 통계표의 숫자로 표기되어 기억되는 일이 없어야 한다. 어려운 일을 대처하는 각자의 방식에 대해 좋은 평가를 내리고 이들 중 뛰어난 것을 모범으로 삼는다고 할지라도, 오늘 목숨을 잃은 자의 침상 앞에서 모두가 고개 숙여 애도하는 일을 생략해서는 안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