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의 뜨락| 캄캄한 밤, 희뿌옇게 밝아오는 아침 _ 원미옥 사모

0
141

은혜의 뜨락

 

캄캄한 밤, 희뿌옇게 밝아오는 아침

 

<원미옥 사모 | 대구 율하소망교회>

 

깜깜한 어둠 뒤에 햇살을 준비하시는 주님의 손길을 간구함

 

“마스크 착용하지 않은 사람은 출입을 금합니다.”

가게 문마다 붉은 글씨가 발걸음을 멈칫 서게 합니다.

“마스크를 하지 않으면 들어올 수 없습니다.”

마트 점원의 한 마디에 물건을 사러 온 젊은이는 말없이 돌아섰습니다. 콩나물을 사서 돌아오는데, 모든 가게는 문이 닫혔고, 귀가한 차들로 인해 주차장은 빼곡했습니다. 퇴근 후에는 회식 대신에 가족끼리 모였고, 아침마다 도시락을 챙겼고, 마스크를 사기 위해 긴 줄도 마다하지 않았으며, 엘리베이터 대신 계단을 오르내리는 소소한 변화가 생겼습니다.

‘혹시나 나 때문에’ 하는 생각에 집안에 발을 꽁꽁 묶어두었고, 감염자의 수치가 우리를 묵직하게 눌러서 유리 속에 갇힌 채 소리 없는 아우성을 내질렀습니다. 무선통신에서 난무하는 온갖 소문은 날마다 우리의 영혼을 어지럽혀 코로나19 바이러스보다 흉흉한 소문에 감염될 것 같았습니다. 함께 모여 말씀을 나누지 못하고, 믿음의 언어로 소통하지 못하자 영혼이 시들시들 메말라가는 느낌이었습니다.

교회에서 성도님들과 까르르 웃던 일상이 감사와 그리움으로 파란 새싹처럼 새록새록 돋아났습니다. 하나님을 만나고 싶으면 언제든지 찾아갈 수 있는 교회, 늘 그 자리에서 만날 수 있었던 교회 가족을 문자와 전화로만 만나는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교회의 화장실 청소, 식당에서 점심 준비, 영아부 아이들과 촉촉한 눈맞춤, 어른들과 따스한 악수 등 하찮게 여겼던 일상이 엄청난 선물임을 절감했습니다. 기적과 축복은 예쁜 포장지로 싼 특별한 게 아니라 행주치마처럼 평범한 일상이었음을 뼈아프게 고백했습니다.

따가웠던 교회를 향한 빗발친 원성, 매섭게 날선 비판 등도 묵묵히 감내해야 하지만, 그보다 주일예배를 영상예배와 가정예배로 대체하는 것이 가장 큰 아픔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과 끈을 놓치지 않기 위한 저마다의 노력도 눈물겨웠습니다. 주일예배를 가정예배로 대신하던 첫 주일에는 연인과의 만남을 두 눈 부릅뜨고 막는 부모님을 피해 안절부절못하는 청년처럼 마음이 답답하고 조마조마했습니다.

그러나 온가족이 드리는 가정예배에 주님은 친밀하게 찾아오셔서 깊은 임재하심을 느꼈습니다. 카톡에 올라온 주일설교문을 읽고, 나눔을 하는 예배시간은 깊은 감동이었습니다. 예배 후 카톡에 올려 준 다양한 가정예배의 모습에서 광야에서 만나를 내려 주신 뽀얀 쌀밥 같은 주님의 은혜도 맛보았습니다. 아침마다 큐티로 만나는 말씀 묵상, 소그룹으로 함께 읽어가는 성경통독, 저녁 8시마다 온교회가 각자 처소에서 드리는 기도 시간은 주님과의 끈을 튼튼하게 이어주었습니다.

가게마다 내걸린 ‘임대’라는 글자에 담긴 소상공인의 너덜너덜한 아픔, 긴급생계지원금을 신청하는 목마름보다 애타는 기다림, 온라인 개학에서 원격수업의 낯섦, 천마스크를 만드는 분주한 자원봉사자의 손길, 자발적인 격리를 자처하는 숱한 서민들의 숨은 노력, 타인의 목숨을 위해 자신을 버리는 의료진들의 뜨거운 사랑, 철저한 방역과 사회적 거리 두기 실천 등으로 거센 폭풍우는 조금씩 잦아들고 있는 것 같습니다만 여전히 안심할 수는 없는 상황입니다.

요즘은 깜깜한 어둠 뒤에 햇살을 준비하시는 주님의 손길을 간구합니다. 주님은 우리를 위해 때로 고난을 준비하심을 압니다. 코로나19로 온 세상이 시끄러운 와중에 주님은 강을 정화하고, 공기의 미세먼지를 말끔히 닦아내고, 바다를 깨끗하게 맑히시는 일을 묵묵히 하시고 있습니다. 이제 함께 모여 예배할 때는 고통과 고난을 이겨낸 사람답게 주님을 생각하고, 주님 편에 서서 예전과 다른 모습으로 거듭나야 할 것입니다. 편협과 교만과 불평과 판단의 허물을 벗어내고, 주님의 편에서 겸손과 감사와 관용과 이웃을 감싸 안으며 작은 사랑을 실천할 날을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