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 평
교회를 위한 신학자 바빙크(Herman Bavinck)
『기독교 세계관』 서평
<이춘성 목사 | 대전 광명교회, 협동>
바빙크는 교의가 삶이 돼야한다는 강력하고 살아있는
신앙을 추구한 현실주의적인 신앙인
바빙크는 극단적 상대주의와 극단적인 객관주의를
조화시키는 것이 기독교 세계관이라 한다
참된 기독교는 말과 사상이 아닌 삶과 육체가 돼야 하며
영적이면서 육적인 진리를 가르쳐 유지하고 지킨다
- 바빙크, 왜 읽어야 할까?
헤르만 바빙크(Herman Bavinck, 1854-1921)라는 이름은 한국 교회의 개혁파 진영에서는 익숙한 이름이다. 보수적인 신학교에서 교의학 교과서로 쓰이는 벌코프(Louis Berkhof), 후크마(Anthony Andrew Hoekema)의 조직신학 책의 주요 참고서인 『개혁주의 교의학 Reformed Dogmatics』의 저자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의 여러 책들이 번역 소개되어 왔지만 그의 주저라 할 수 있는 『개혁주의 교의학』은 영미권에서도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번역 출간되기 시작하였다. 최근 10년 사이에 개혁주의 교의학은 화란어에서 한국어로 번역되어 바빙크에 대한 깊이 있는 공부가 이루어지고 있다.
바빙크에 대한 연구는 미국의 칼빈 신학교의 볼트(John Bolt) 교수와 영국의 에딘버러 대학교의 에글린턴(James Eglinton) 교수를 중심으로 새로운 중흥기를 맞이하고 있다. 그 일환으로 올해부터 바빙크의 교의학만이 아닌 그의 윤리학, 기독교 세계관 등이 영어로 최초로 번역되거나, 화란어로 최초로 출간되었다. 이는 바빙크의 교회의 신학자로서의 진면모를 보여주는 의미 있는 사건이라고 생각한다. 이것들은 교리를 단지 형이상학적인 추상적인 내용이 아닌 현실 교회와 신자들의 문제의 답으로 제시하기 위한 끊임없는 분투의 결과이며, 목회적 몸부림을 보여주는 열매이기 때문이다.
바빙크는 누구보다 교의가 삶이 되어야 한다는 강력하고 살아있는 신앙을 추구한 현실주의적인 신앙인이었다. 그는 당대의 과학, 경제, 철학 등의 유명한 학자들의 글을 대부분 소화해내고 이에 대한 적절한 성경적 비판을 교회에 제공하였다. 마르크스, 엥겔스, 칸트, 쇼펜하우어, 다윈, 이름 모를 과학자들 등 그는 단지 신학만 아는 안전한 길이 아닌 전쟁터의 선봉에서 가족과 전우의 안전을 위해 자기의 몸에 상처가 남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이 와중에도 놀라운 것은 바빙크는 그의 반대자와 그가 반대하는 사상가들에 대해서 놀라울 정도로 정중했으며, 그들의 사상 중에서 옳다고 생각되는 부분이 있다면 이를 쿨하게 인정하였다는 것이다. 이는 그가 일반은총의 신학자로서 하나님의 주권을 전 영역에서 인정하는 겸손한 학자였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이러한 그의 교양 있는 태도가 그를 더욱더 위대하게 하는 부분이라 생각된다. 마지막으로 그는 종말을 기대하며 끝까지 희망을 붙든 희망의 신학자이자 목사이며, 한 신자였다.
- 왜 기독교 세계관인가?
지난 9월에 바빙크의 『계시철학』이 새롭게 번역 출간되었다. 그리고 11월 중에 다함 출판사에서 『기독교 세계관』이 화란어 직역으로 한국에 소개된다. 이 책은 10월에 미국의 Crossway에서 출판되었는데, 이는 최초의 영어 번역이다. 조금만 일찍 한국에서 출판하였다면 최초의 외국어 번역본이 되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필자는 기독교 세계관을 오랜 시간 연구하고 가르치는 일을 해왔다. 20대에 프란시스 쉐퍼가 세운 라브리(L’Abri Fellowship)에 찾아가 세계관과 변증학을 공부한 후에 간사로서, 국제 위원으로서 10년 이상을 일해 왔다. 지금은 기독교 윤리를 공부하는 학생으로 연구를 하고 있지만 여전히 기독교 세계관은 나의 주된 관심사이다. 이러한 이유로 영역본 바빙크의 “기독교 세계관”을 읽은 후 간략한 서평을 독자들과 나누려 한다.
바빙크는 초판의 서문을 통해 이 책을 쓴 배경에 대해서 밝히고 있다. 간략하게 말하면 당시에 유행하던 다양한 사상과 학문을 연구하면서 그것들이 극단에 치우친다는 것을 깨닫고 기독교는 이 극단을 조화시키는 세계관이라는 사실을 변증하고자 하였다. 양극단이란 정서주의라 할 수 있는 극단적 상대주의와 이와 정반대에 있는 극단적인 객관주의, 이성주의이다. 바빙크의 기본적으로 이 두 극단에도 옳은 지식이 있지만 이 둘의 문제는 극단의 이론으로 상대를 통합하려는 급진적인 자세에 있다는 것이다. 이런 면에서 바빙크의 태도는 지극히 현실주의적이며, 이는 다른 말로 보수적으로 흐를 수 있다는 비판을 받을 여지가 있다.
하지만 이러한 비판으로부터 그가 자유로울 수 있는 이유는 그가 양극단은 통합할 수 있는 근본적인 대안으로 제시하는 것이 어떤 이론이 아니라 인격이라는 것이다. 바로 삼위일체 하나님이라는 인격이다. 이 하나님은 동시에 인간인 예수 그리스도로 성육신하여 세상에 오셨으며, 성령으로 세상 속에 여전히 계신다. 바로 이 존재가 양극단을 통합하게 하는 주체이며, 그분의 계시가 그 원리이다.
이론은 자체의 논리에 의해 그 논리에 부합되지 않는 것을 제거한다. 그러기에 극단으로 흐르게 된다. 하지만 인격은 듣고 따르며, 순종하는 존재이기에 논리에 앞서며 논리에 제한 받지 않는다. 그러므로 양 극단을 포괄하고 통합하는 원리가 될 수 있다. 그렇다면 결국 믿음이라는 전제가 없이는 이 원리를 받아들일 수 없다. 기독교 세계관은 인격에 대한 믿음을 전제로 한다는 점에서 결국 신앙이라 할 수 있다. 바빙크는 이러한 기독교 세계관에 대한 확신을 사유(Thinking), 존재(Being), 됨 또는 발생(Becoming), 행위(Acting)라는 4가지 키워드를 통해 설명한다. 이것이 인간이 항상 마주해야 하는 근본 질문이며, 기독교만이 이에 대한 바른 답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바빙크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인간이 항상 돌아가서 마주해야 하는 문제들은 이런 것들이다. 사유와 존재의 관계는 무엇이며, 존재와 됨의 관계는 무엇이며, 됨과 행함의 관계는 무엇인가? 나는 누구이며, 세계는 무엇이며, 내가 있는 곳은, 이 세상에서의 소명은 무엇인가? 자율적인 사상들은 이러한 질문에 만족할만한 답을 주지 못한다. 그러나 기독교는 이것들을 조화시켜 우리에게 지혜를 들어낸다. 그리하여 하나님과 함께, 이 지혜를 통해, 이것 자체와 함께, 세계와 함께, 생명으로, 인간을 회복시킨다.(Bavink, Christian Worldview, p.29)
- 유기적 세계관
바빙크는 1장에서 사유와 존재에 대해서 설명하면서 주관과 객관에 대해서 논한다. 주관과 객관은 대립된 것이 아니라 주관과 객관은 유기적이다. 더 자세하게는 주관(하나님의 생각)이 없이는 객관(존재)이 없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주관으로 세상은 창조되고 인간의 주관은 이를 인식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기독교 신앙 안에서 주관과 객관은 대립이 아니라 통합된다.
2장에서는 존재와 됨(발생)의 관계를 논한다. 이는 통일성과 다양성의 논의이다. 이 둘은 서로 공존 할 수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자연의 다양성은 창조자의 마인드, 목적에 따라 통합된다. 서로 다른 방향으로 가는 것 같지만 인간의 지혜를 뛰어 넘는 신적인 지혜는 이를 어떤 목적을 향해 이끌어 간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신적인 지혜를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을 극단으로 치달아 서로 싸울 수밖에 없다. 2장의 내용은 주로 자연 과학에 대한 내용을 다루고 있다. 당대의 유행하고 있던 다윈의 진화론과 생화학 이론들을 열거하면서 바빙크는 이들의 극단적인 주장들에 대해서 비판하고 왜 기독교가 답인지 제시한다.
3장은 ‘됨(발생)과 행위’라는 제목으로 각각의 창조된 인간의 행위가 지니는 의미에 대해서 논하고 있다. 바빙크가 지적하는 문제점은 당시에 유행하던 칸트의 윤리이다. 칸트의 윤리는 초월적인 존재를 제거하고 인간의 자율성 안에서 윤리를 세우려했다. 칸트는 인간의 도덕 위에 종교를 세우려 했으며, 이는 인간 안에 도덕이 있다는 전제인데, 이것은 결국 도덕을 인간의 자율에 맡기는 도덕적 상대주의를 낳았다. 바빙크는 당시의 도덕이 인간의 자율성으로 다시 세워지는 시대이며, 절대적인 도덕이 무너지고 인정받지 못하는 시대라고 정의한다. 이는 우리 시대의 문제의식과 공유하는 지점이다. 결국 진화론이 유행일 수밖에 없는 이유가 도덕도 진화의 대상이라는 논리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바빙크는 이러한 당시의 위기를 윤리적 위기로 정의하고 기독교 세계관은 바른 윤리적 기준을 제시하고 이를 세우는 일에 매진해야 한다고 제시한다.
오늘날의 전쟁은 더 이상 교황이나 공회, 교회와 신앙고백의 권위에 대한 것들이 아니다. 성경의 권위나 그리스도의 인성과 같은 셀 수 없는 다른 교리적인 내용도 아니다. 이 문제가(agenda)가 묻는 질문은 여전히 인간을 묶을 수 있는 원리가 되는 어떤 권위나 법이 존재하는가 이다. 이것은 가치를 다시 새우는 것(reevaluation)을 의미한다. 지금 우리는 눈앞에서 진화가 그 자리를 차지하는 것을 목격하고 있다. 이 싸움에서 모든 기독교인 전문가들은 진리의 왕의 깃발 아래 모여야만 한다. (Bavink, Christian Worldview, p.129)
- 육적인 진리
마지막으로 바빙크는 이 모든 것을 통합하고 인간에게 삶의 목적을 회복시키며, 인간의 참된 구원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에게만 있다는 사실을 밝힌다. 그러나 이것은 결코 피상적인 것이 아닌 우리의 살과 피가 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강력하게 주장한다. 참된 기독교는 말과 사상이 아니라 삶과 육체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고상하고 영적인, 또한 참으로 육적인 진리를 세상에 맛보게 하는 것만이 아니라 유지하고 지켜야 한다. 이렇게 해야만 그것이 진리라는 사실을, 참된 세계관임을 증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오늘 한국 교회에 하는 외침으로 바빙크의 말을 들어 보자.
그리스도는 너머에 계신다. 그러나 그는 시간의 완전함 속에서 여자에게서 태어났으며 율법 아래서 태어났다. 만약 죄가 의지적 성향이고, 도덕법이 절대적 타당성을 가지며, 선이 -이러한 사상을 통해서- 모든 반대를 이기고 승리할 수 있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하자. 만약 그렇다면 이러한 승리를 가져다 줄 수 있는 종교는 반드시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가 있어야만 한다. 이러한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는 말뿐 아닌 행동으로, 교리만이 아닌 삶이어야 하며, 우리 인류 안에서 살과 피가 되어야 만 한다. 그리고 신적인 에너지의 사역으로서 그것은 세상의 한복판에 그 자신을 침투시켜 지속시켜야만 한다. (Bavink, Christian Worldview, p.115)
* 이춘성 목사 _ 합신 M. Div. 고신 일반대학원 기독교 윤리학 박사과정 수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