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에 동참하는 성도들
< 림헌원 목사 · 한돌교회 · 한국설교전문학교학술원 연구위원 >
바울 사도는 골로새 교인들에게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하라고 권면하면서 “나는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 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골 1:24-25)고 하였다.
여기서 말하는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이란 그리스도가 죄의 대속을 위하여 당한 십자가 고난의 불충분성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리스도께서 죄의 대속을 위하여 담당하신 고난은 결코 부족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의 개인적인 고난은 이미 완성되었다. 다시 말하면 죄의 대속을 담당하는 그리스도의 구속을 위한 고난에 대하여는 절대적인 의미에서 그 누구도 동참할 수 없다.
그런데도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주님의 십자가 고난을 채우는 ‘성자의 고난’으로 잘못 이해하고 마치 고행이 부족한 자들의 결함을 보충한다고 해석한다면 이것은 어림도 없는 그릇된 소리이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은 무엇을 뜻하는가? 그것은 그리스도와 한 몸을 이루는 교회가 복음 전파를 하면서 당연히 받아야하는 고난을 말한다. 유기적인 관계에서 머리가 되신 예수님이 전하시는 복음 때문에 당하는 고난을 몸의 각 지체인 성도라 한다면 복음 전도로 인하여 필연적으로 겪어야 하는 고난을 지적하고 있다. 쉽게 말하면 그리스도와 사도들을 뒤 따라서 복음을 증거하는 전도자들은 복음의 증인으로서 고난이 반드시 따른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마태복음 10장 16-17절에 보면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냄과 같도다 그러므로 너희는 뱀 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 사람들을 삼가라 그들이 너희를 공회에 넘겨주겠고 그들의 회당에서 채찍질하리라”고 이 말씀하고 있다. 이 말씀은 주의 복음을 전하는 사역자들은 이 복음을 전하다가 주님과 같은 취급을 받게 될 것임을 말하고 있다. 이처럼 주께서 남기신 고난은 어김없이 전도자들이 복음을 인하여 당하는 고난인 것이다.
골로새서 1장 25절 하반 절는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려 함이니라”고 말씀하고 있다. 여기서 ‘이루다’는 말은 선교 사역과 관련하여 ‘전달하다’는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다시 말하면 바울 자신이 이방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편만이 충분하게 전파하였음을 밝히고 있다.
바울은 골로새 교회를 위해 사명감에 불이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바울이 왜 이렇게 대단한 열심을 쏟았겠는가? 그 이유는 하나님의 말씀 성취가 말씀을 전파하는 가운데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바울에게는 하나님의 사랑과 영생을 얻은 감격과 기쁨이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 중에서 복음 전도로 인하여 겪어야 하는 고난을 두려워하는 성도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 된 교회를 위하여 우리의 육체에 채울 각오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말씀을 맡은 일꾼들이라면 당연히 바울과 같은 사명감과 각오, 그리고 철저한 종의 의식을 가져야 한다. 오늘날에도 우리들의 직무가 바울처럼 복음을 전파하는 것임을 확신하고 삶의 현장에서 고난을 극복하며 말씀을 전달하는 성도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