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리와 원칙 중시하는 스승 통해 인내 배워야”_도지원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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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리와 원칙 중시하는 스승 통해 인내 배워야” 

< 도지원 목사·예수비전교회 > 

전도서 12장 11절은 이렇게 말한다. “지혜자의 말씀은 찌르는 채찍 같고 회 
중의 스승의 말씀은 잘 박힌 못 같으니 다 한 목자의 주신 바니라.” 

스승은 하나님이 주신 선물 

스승의 좋은 영향력은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다. 그러기에 좋은 스승을 둔 사 
람은 복되다. 그리고 좋은 스승 밑에서 인재가 자라는 것이 당연하다. 엘리 
사는 엘리야 밑에서 자랐고, 디모데는 사도 바울 밑에서 자랐다. 이렇듯 누 
구를 스승으로 두느냐는 자기가 어떤 사람이 될 것인가와 직결되어 있다. 

그렇지만 유감스럽게도 오늘 좋은 스승을 둔 사람은 많지 않다. 학교에서도 
그렇고, 사회에서도 그렇고, 심지어 교회에서도 그렇다. 사도 바울은 디모데 
후서 4장 3절에서 이렇게 말한다.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 
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좇을 스승을 많이 두고…” 오 
늘 우리가 사는 시대도 이와 같다. 사람들은 좋은 스승보다 다른 것에서 더 
많은 영향을 받고 산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좋은 스승을 두고 싶다면 다음 몇 가지 
사항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첫째, 책 속의 좋은 스승을 만나는 것이다. 물론 생활 속에서 좋은 스승을 
만난다면 그것은 더 없이 좋은 일이다. 하지만 그렇게 되기란 쉽지 않다. 그 
렇다고 좋은 스승을 둘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책 속의 좋은 스승 
이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책 속의 스승을 만나 큰 영향을 받은 사람들은 얼마든지 있다. 예를 
들면 영국 런던의 웨스트민스터 채플 목사였던 마틴 로이드존스 목사가 그렇 
다. 1929년 그는 아주 우연한 기회에 조나단 에드워즈 전집 두 권을 만나게 
되어 5실링을 주고 샀다. 그런데 그는 자신이 그 책에서 받은 영향을 이렇 
게 말했다. “나는 극히 값진 진주를 발견한 사람의 비유 속에 나오는 자와 
같았다. 그 두 권이 나에게 끼친 영향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는 책 속의 좋은 스승을 만난 것이다. 그래서 그는 이 스승을 자신의 사위 
에게도 소개했다. “자네는 조나단 에드워즈를 읽어야 해. 자네의 정치 활 
동 속에서, 그리고 세계를 여행하고 다닐 때에 조나단 에드워즈를 읽어요. 
그는 자네의 발을 바위 위에 단단히 세워 줄 수 있는 자니까. 에드워즈를 읽 
고 그에게서 배우도록 하게나.” 
보다 최근에 역시 조나단 에드워즈를 책 속의 좋은 스승으로 만난 사람이 있 
다. 미네아폴리스에 있는 베들레헴 침례교회의 목사인 존 파이퍼다. 그는 신 
학생 시절 조나단 에드워즈를 알게 되어 다른 누구보다 그에게 몰두했다. 그 
는 하나님을 영원토록 즐거워함으로써 하나님을 영화롭게 한다는 진리를 조 
나단 에드워즈를 통해서 배웠다. 
그는 한 책에서 이 진리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이것이 나의 삶과 신학과 
설교에 미친 영향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사실, 내가 쓴 모 
든 것은 이 진리를 설명하고 예증하려는 노력입니다.” 이처럼 책 속의 좋 
은 스승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만남이 가능하다. 오늘 우리에게도 이런 
만남은 열려 있다. 

둘째, 스승의 가르침뿐 아니라 인내를 주목하는 것이다. 이것은 성경이 분명 
히 가르치는 바다. 히브리서 13장 7절은 이렇게 말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너희에게 이르고 너희를 인도하던 자들을 생각하며 저희 행실의 종말을 주의 
하여 보고 저희 믿음을 본받으라.” 
이 말씀은 요즘 우리에게 특히 중요하다. 왜냐하면 한 때 우리가 존경했던 
스승이 추문에 휘말리는 경우를 이따금 보기 때문이다. 나의 생각에는 신학 
과 교리를 무시하고 실용적인 방법론을 추구하는 스승일수록 그렇게 될 위험 
성은 더욱 큰 것 같다. 교리와 원칙을 중시하는 스승은 인내로써 자신의 신 
실함을 입증하게 될 것이다. 그런 스승이 좋은 스승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스승의 가르침뿐 아니라 그의 삶을 통해 보여준 인내를 주목하는 것이 필요 
하다. 

셋째, 스승에 대한 맹목적인 추종을 피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맹목적인 추종 
은 스승의 가르침에 대한 무비판적인 수용을 낳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떤 좋 
은 스승의 가르침이라도 흠이 있게 마련이다. 
존 프레임(John M. Frame)은 그의 스승 코넬리우스 반틸의 사상을 분석한 책 
에서 이런 사실을 지적한다. 그것은 반틸에 대한 대부분의 책들이 그에게 전 
적으로 무비판적이거나 아니면 전적으로 비판적이라는 사실이다. 그는 그 이 
유가 반틸을 학자나 사상가로서보다 운동의 리더로서 본 데 있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운동의 리더를 비판하면 그것은 그 운동에 불충성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프레임은 학자나 사상가로서 반틸은 비판을 받아야 한다 
고 생각한다. 그의 잘한 점과 잘못한 점을 구별하는 것은 그의 생각을 잘 활 
용하기 위해서도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것과 함께 프레임은 “범사에 헤아리라”(살전 5:21)고 말한 사도 바울의 
말을 언급한다. 그러면서 반틸 자신이 어떤 신학자도 그러한 헤아림에서 예 
외가 아니라고 가르쳤던 점을 상기시킨다. 그러므로 우리도 스승에 대한 맹 
목적인 추종과 무비판적인 수용을 지양해야 한다. 그것이 스승의 가르침을 
잘 배우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헤아리는 지혜 또한 필요해 

스승의 날, 스스로에게 이런 질문을 던져본다. ‘나는 좋은 스승을 모시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