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법’이란 무엇인가? 김용주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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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법’이란 무엇인가?

김용주 목사_소식교회

율법은 그리스도로 인도하는 하나님의 자기 계시
율법 통해 하나님의 ‘의’이신 그리스도를 나타내

누구도 율법, 즉 하나님의 요구로부터 자유할 수 없어
율법 통해 하나님의 관용과 은혜 절실히 기다리게 돼

율법에 대한 기본 인식은 하나님 자신과 함께 우리에게 주신 선물이라는 사
실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선하신 뜻을 따라 천상의 삶을 유산으로 주시기
를 기뻐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먼저 이 율법의 단계를 허락하셨습니다. 
곧 하나님은 “자신의 택하신 자들이 자신들의 양심과 죄 짐 때문에 몹시 고
통을 받아 신경외(神敬畏)에로 부추겨지는 것”을 구원을 위한 전 단계로 설
정해 놓으셨습니다. 그러기에 주님은 이 인식 안에서 우리를 단련시키는 율
법을 먼저 선물해 주셨습니다. 

1. 율법을 주신 목적

기독교강요 제2권 시작 지점에서는 전체 맥락을 요약 제시하면서 “그리스
도 안에 계신 구속자로서의 지식 : 곧 이 지식이 처
음에는 율법으로 조상들
에게 그리고 다음에는 복음으로 우리에게 제시되었다”라고 정의하고 있습니
다. 이것도 사실상 ‘하나님의 자기 계시로서 성경의 통일성’을 아우르는 
표현들입니다. 그러므로 개혁자들은 이구동성으로 ‘율법은 복음의 한 형식
이다’라고 하였습니다. 
기독교 강요 제2권 7장 시작 지점에서 “율법을 주신 목적은 구약 백성을 그
것으로 억제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을 얻으리라는 희망을 
그가 오시기까지 배양하시려는 것이었다”라고 하였습니다. 이어서 ‘도덕
과 의식에 관한 율법은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한다는 점에서 중요하다’는 내
용으로 그런 사실을 확고히 하고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율법이라는 말은 모세 오경을 가리켜 말하든, 구약 전체를 가리
켜 말하든 또 성경 전체를 아우르면서 말하든지 큰 차이가 없습니다. 삼위일
체 하나님의 자기 계시 그 자체와 그 계시의 통일성을 생각할 때 그렇습니
다. 
특별히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서 십계명의 두 돌판을 주시면서 말씀하실 때
(신 10:12-13; 6:5; 레 19:18)와 그리스도께서 율법의 요의를 하나님 사랑
과 이웃 사랑에 둘 때에도(마 
22:37) 사실상 십계명이 성경 전체를 아우르
는 내용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사도신경과 주기도문도 마치 한 산맥 안에서 
솟아오른 산봉우리와 같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신약과 구약에 대립 각이 세워져 있는 것처럼 이해하지 않
습니다. 또 신약의 계시가 구약의 계시에서 점진적으로 발전되었다고도 말하
지 않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한 말씀, 한 말씀이 충족하고 그분의 말씀은 통일되어 있다
고 말합니다. 단지 ‘어떤 말씀은 또 다른 말씀보다 더 판명하다’라고만 말
할 수 있을 뿐입니다. 어떤 사람들이 “하나님의 자기 계시”에 대하여 잘
못 이해하고 적용할 때에, 계시 이해가 분명하지 못하여서 오류가 발생한 것
으로 말합니다.

2. 구약에서 율법은 어떤 의미인가?

1) 구약에서 율법의 역사적 신학적 위치는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의 언약 
관계입니다. 개혁신학자들이 율법을 하나님이 언약하신 법으로 이해하는 것
도 이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언약은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을 위한 은혜언약입니다. 은혜언약이
란 시간 전에 삼위일체 하나 님의 목적 있으신 의논의 작정, 혹은 예정하신 
것을 시간의 경륜 속에(역
사) 나타내신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택한 백성이라 할 때에도 시간 전에 하나님의 택하심이 시간 안에 어김없이 
펼쳐지는 내용이 우리를 위한 구원의 서정이다. 그러므로 율법이든 복음이
든 은혜언약의 방식들임에 분명합니다.

2)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택하여 자기 백성 삼으십니다. 또 하나님은 그들의 
하나님이 되어 주십니다. 이런 기본 언약 원리가 율법의 직접적인 기호입니
다. 따라서 율법은 하나님의 은총의 선택으로 그분에게 속해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전 생활을 지배하는 여호와 하나님의 의지요, 그분의 뜻의 총체입
니다. 
구약에서 율법에 대한 일반 용어로 사용된 히브리어 ‘토라’가 있습니다. 
토라는 바로 이스라엘 백성들의 예배, 종교 행사, 개인적 사회적 국가적 도
덕 생활에 관련된 법조문과 교훈으로 하나님께서 모세와 선지자들과 제사장
들을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신 하나님의 모든 계시된 의지요, 그분
의 선하신 뜻입니다. 
이 율법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드리는 단순한 순종의 표가 아니라 
오히려 고결한 의미에서 택하시고 부르신 언약 백성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
님 자신
의 요구입니다. 
하나님은 먼저 자신의 은총 가운데 이스라엘에게 자신을 계시하시고 알게 하
십니다. 또 하나님은 그 백성들과 언약을 체결하셔서 그들의 하나님이 되어 
주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그 백성들에 대한 당연한 요구를 
가지십니다. 
그러나 이 요구는 자기 백성이 언약 안에 있게 하셨다는 점에서 맹목적이지 
않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이 친히 그 언약을 완전하게 이루시고야 마신다는 
점에서(고후 5:19) 하나님이 친히 내리신 선물로 자기 백성에게 자신을 상급
으로 주신 것입니다(창 15:1). 이런 점에서 율법은 하나님이 자기 백성들을 
친히 다스리시는 “은총의 내림”입니다.
이것이 율법의 독특한 요소입니다. 이것이 율법과 여러 민족 법과 근본 차이
입니다. 이처럼 율법은 이스라엘 백성에 대한 하나님 자신의 의지요, 선하
신 뜻으로서 역사 안에서 하나님께서 그 자신을 그들의 하나님으로 주셨다
는 사실이 전제됩니다. 
따라서 그 백성은 항상 그분의 보호하심 아래서 살아야 한다는 사실을 전제
합니다. 그래서 이 율법은 이스라엘로 하여금 항상 하나님의 백성들의 위치
를 지키게 합니다. 동시에 이 
율법은 하나님의 절대성과 초월성 및 신적 계
시의 순결성을 말씀해 줍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창조적인 활동으로 역사 과정에서 확립되고 제
정된 이 율법을 통하여 그들이 어떻게 하나님을 그들의 창조주와 구속주로 
사랑하고 섬기며 그와 함께 어떻게 이웃을 사랑할 것인가를 배웠습니다.

3. 신약에서 율법은 어떤 의미인가?

1) 신약에서 율법을 지칭하는 헬라어 ‘노모스’는 아주 다양하게 사용되었
습니다. 
① 구약 전체나, 모세를 통해서 주신 율법 및 동일한 계시 혹은 율법의 해설
서로 알려진 여러 선지서 등 구약 일부분을 가리키기도 합니다.
② 시내산에서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서 주신 법전을 말하기도 합니다.
③ 때때로 하나님의 선하시고 온전하신 뜻의 총체적인 표현으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④ “예수 그리스도 안”과 대조하여 “율법 아래”라는 말로 인간의 절망
적 상태를 말하기도 합니다. 
⑤ 지배 원리 혹은 하나님의 통치 원리 등을 말하기도 합니다. 
이처럼 신약에서 ‘율법’이란 단어는 본문에 따라 이해해야 용어상의 많은 
혼란을 막을 수 있습니다. 성경 본문의 문맥이나 저작자이신 
하나님의 의도
하심에 따라 율법이라는 말의 쓰임새가 의식법에 관한 말씀인지, 재판법에 
관한 말씀인지, 하나님의 본성에 따른 영원한 도덕법적 성격을 말씀한 것인
지를 분별해야 성경을 올바르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2) 구약에서 율법은 그리스도를 바라보게 하는 언약 관계에서 이해할 수 있
습니다. 신약에서도 그리스도 중심의 관점에서만 율법의 의미를 바르게 파악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율법을 주신 것은 율법을 
통하여 그들을 죄와 죄책과 사망에서 구원하실 메시야, 곧 그리스도를 바라
보게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이것을 가리켜 율법의 제1용도라고 합니다. 
다시 말하자면 율법을 통하여 하나님의 의이신 그리스도를 나타내기 위해서
였습니다. 따라서 이스라엘에게 주신 율법은 그리스도를 통하여 성취되는 복
음의 약속입니다. 율법을 가리켜 복음의 필연적인 형식이라고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율법이 무엇을 가르치고 무엇을 규정하고 무엇을 약속하고 있는가
를 알기 위해서는 복음의 총체적인 내용이신 그리스도와 그분의 사역에 눈
을 돌려야 합니다. 
구약의 모든 율
법, 예배 의식, 법 조문들은 이스라엘 백성으로 하여금 그리
스도 안에 있는 구원에 대한 소망을 가지고 그가 오시는 날까지 하나님의 백
성들이 소망 중에 믿음으로 기다릴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약속이요 상징이요 
그림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약속의 성취요 그림자로 표하신 실체이신 그리스도가 없다
면 율법은 사실상 아무런 효력을 발휘할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 외에 그 어
떤 사람도 율법의 요구를 다 이룰 수 없기 때문입니다. 
복음서는 그리스도의 생애를 율법의 완전한 수행으로 묘사합니다(눅 24:27, 
44). 그리스도께서는 율법 아래 태어나셨습니다(갈 4:4). 또 그리스도께서
는 자신의 전 생애를 통하여 죽으시기까지 구약의 모든 율법을 온전히 지키
심으로써 모든 의를 완전하게 이루셨습니다(마 3:15; 5:17). 
하나님의 율법에 대한 그리스도의 완전한 순종은 단순한 모범이 아니라 율법
의 정죄와 저주 아래 놓여 있는 그의 백성들을 위한 구원 그 자체입니다.

3) 신약에서 그리스도를 중심한 율법의 의미를 명확히 하는데 쓰임 받은 사
람은 바울 사도입니다. 주님께서는 사도를 통하여 율법 자체는 하나님의 선
하심에서 
나온 만큼 완전하다고 말씀하십니다. 따라서 주님께서는 사람이 율
법을 완전히 지키면 율법을 통하여 의로와질 수 있다는 사실을 말씀하십니
다. 
그러나 그 어떠한 사람도 율법을 온전히 지킬 수 없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인간은 율법의 행위로 구원을 받지 못합니다. 오히려 율법은 인간을 하나님 
앞에서 율법을 범한 철저한 죄인으로 정죄하고 저주하면서 사망에 처한 자라
는 사실을 엄숙히 선언합니다. 여기에서 인간은 영원히 절망하게 됩니다(롬 
2:16; 3:19, 20; 7:7; 4:15; 7:11; 8:2; 고전 15:56).

4) 바울 사도를 통해서 이렇게 율법으로 인한 인간의 절망 상태를 선언하시
는 것은 하나님께서 친히 택하시고 부르신 자들을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롬 3:21)로 나타나신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기 위해서입니다(갈 3:24).
예수 그리스도는 인간이 지킬 수 없는 율법을 인간을 대신하여 온전히 지키
심으로써 하나님의 의를 이루셨습니다. 그러므로 엄밀한 의미에서 모든 율법
이 가리키는 진정한 대상은 인간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구약의 모든 율법을 복음의 약속으로 이해할 때 이 약속은 그리스도로 성취
되었습
니다. 그러기에 인간은 율법을 지킴으로 의로워지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율법을 온전히 지키면 의로워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율법을 온
전히 지킬 수 없습니다. 
만일 인간이 율법을 지킬 수 있는 것처럼 생각하고 말하면서 율법으로 말미
암아 의로워지려고 행동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을 속이고 자신을 스스로 속이
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은 그리스도를 통해 나타난 하나님의 의를 거부하
는 이중적인 죄인이 됩니다. 
우리는 예외 없이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로서 나타나신(롬 3:21) 그리스
도를 믿음으로 의롭다고 칭해집니다(롬 1:17; 갈 2:16). 하나님께서는 그리
스도께서 온전한 율법의 순종으로 하나님 자신의 의를 이루신 사실에 근거하
여 믿음으로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된 신자들을 의롭다고 선언하십니다. 바
로 이 사실이 복음의 중심 교리 중에 하나인 ‘칭의’입니다. 
그리고 삼위일체 하나님의 영원하신 목적 있으신 의논으로 예정하심 아래 구
원의 서정이 빈틈없이 연결되고 가지런히 놓이게 하시는 것이 살아 계신 하
나님의 뜻일진대, 우리의 구원을 칭의에 머물지 않고 정하신 그분의 의지로 
말미암아 성화를 거
쳐서 영화로움으로 나아가게 하십니다. 따라서 율법과 복
음은 서로 반대하는 관계에 있는 것이 결단코 아닙니다. 
구약의 율법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약속으로서의 복음이요 신약의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성취된 율법입니다. 우리의 주님 예수 그리스도께
서 자신이 율법을 폐하러 온 것이 아니라 완전케 하려 왔다고 말씀하신 것
도 이런 이유에서입니다(마 3:15; 5:17; 눅 12:27, 44).

5) 이렇게 율법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단번에 성취되었습니다
(히 9:24-28).
예수께서 완성하신 이 ‘의’를 믿음으로써 우리는 율법의 정죄와 저주에서 
해방되었습니다(갈 3:13). 또 죄와 사망의 법에서 자유하게 되어 영원한 생
명으로 인도되었습니다(롬 7:4-6; 8:1-2).
그렇다면 이제 그리스도를 믿는 신자들에게는 이 율법이 아무 소용이 없습니
까? 하나님께서 친히 의롭다고 선언해 주신 자는 하나님의 율법과 아무 상관
이 없습니까? 
하나님은 성경을 통해서 자신이 택하시고 부르셔서 의롭게 되었다고 선언된 
신자가 율법의 정죄나 저주와 같은 율법의 요구에서는 자유로워졌다고 말씀
하십니다. 그러나 율법 자체, 
곧 하나님의 법에서 완전히 자유하게 되었다고
는 말씀하시지 않습니다. 
오히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율법은 새 언약으로(렘 31:33), 마음에 
쓴 법으로(고후 3:3), 생명의 성령의 법으로(롬 8:2), 그리스도인의 올바른 
삶을 위한 그리스도의 법으로(고전 9:21; 갈 6:2) 신자로 하여금 그리스도
의 은혜 아래 감사하면서 성화의 길을 걷도록 해 준다고 가르쳐 줍니다(마 
5:16, 20; 엡 6:2; 약 2:8-13; 요일 5:3). 이것을 율법의 제3용도라고 말합
니다. 
주님은 바울을 통해서 로마서 13장에서 율법을 사랑의 빚으로 새롭게 해석하
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사도를 통해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라
고 말씀하십니다(롬 13:8-10). 
이 점에서 개혁신학자들은 율법에 대해 구속의 은혜를 맛보거나 경험한 그 
이전이나 그 이후에라도 성도들의 올바른 생활을 위한 도덕법으로 이해함으
로써 율법 폐지론을 거절합니다. 
하나님의 율법에서는 모든 의의 완전한 기준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 율법
은 하나님의 영원한 뜻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그 율법의 축소판이 십계명입
니다. 하나님께서는 요구하시는 뜻을 두 돌판에 충분하고 명백
하게 나타내셨
습니다(출 31:18). 이 돌판에 하나님에게만 예배(경배)하라는 율법을 정하
여 놓으셨으며 하나님이 내신 사람을 사랑하라는 율법을 친히 기록하셨습니
다. 이리하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율법을 청종하며 살아가게 하셨습니
다.

4. 마치는 말

우리가 새롭게 되고 하나님이 자신의 영으로 우리의 굳은 마음 대신에 부드
러운 마음을 주시기 전에는 모든 율법을 우리 귀에 설명해봤자 소귀에 경 읽
기 식일 뿐입니다. 이렇게 되는 것은 우리의 타고난 부패 때문에 이 모든 율
법을 배척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친히 제정하신 율법을 그분의 성령으로 우리 마음 속에 새
겨 주시면 그 율법과 그것에 따르는 제반 의식의 외형적인 교훈도 우리에게 
도움을 줍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자녀들을 화해의 영을 통해서 다스리시는 것은 그 자녀들
이 그분의 음성을 경청하고 순종하게 하시려는 목적이 있으시기 때문입니
다. 하지만 하나님의 자녀들은 언제고 그것을 완전하게 지킬 수는 없습니
다. 
그러므로 그들은 율법에서 무엇이 옳은 것인가를 배우게 될 뿐 아니라, 자신
들은 아직 연약하지만 하나님의 관용
과 은혜를 통해서 하나님을 기쁘게 해 
드릴 수 있는 만큼의 거저 베푸시는 자비가 절실히 필요하다는 사실을 또 한
편으로 배우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