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강|좌| 우리 시대의 교회가 가야할 길_이세령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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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강|좌

우리 시대의 교회가 가야할 길

이세령 목사_암스텔담 사랑의교회

“생수 버리고 터진 웅덩이 선택하는 어리석음 빠지지 말아야”
교회는 복음으로 설명된다. 복음 위에 세워졌고, 복음을 소유한 것이 교회이
다. 복음은 물론 예수 그리스도이다. 인간이 되신 하나님의 아들이 부활의 
능력으로 하나님의 구원을 온전히 드러내 보이셨다. 역사에 개입하셔서 역사
를 새롭게 만드신 하나님의 구원을 복음이라 부른다. 구약 시대에 복음은 약
속의 하나님 자신이다. 이스라엘을 통해서 온 세상에 복을 주신다는 약속의 
하나님이 바로 복음이다. 
항상 현실을 산다는 것은 보이는 것에 대한 동경으로 말미암아 사람들을 흥
분하게 만들기도 하고 유혹에 떨어뜨리기도 한다. 현실이 무엇 때문에 존재
하는 것인지에 대한 방향을 잊어버리게 만들 수 있다. 
구약 시대를 되돌아보면 바알이라는 물신의 영향력이 가나안 땅을 흔들었던 
시대로 볼 수 있다. 가나안의 풍요를 보장하는 신이 여호와보
다 우수하다는 
판단이다. 이는 나아가서 이방의 강력한 세력들인 애굽과 앗수르 그리고 바
벨론이 현실을 더욱 많이 주장한다는 판단으로 발전한다. 
따라서 이방 신을 섬기는 것은 곧 이방 세력들에 대한 의존을 포함한다. 보
이는 신에 대한 의존이 보이는 세력을 지향한다. 여기서 하나님이 주신 약속
과 거룩에 대한 소망은 철저히 짓밟혔다. 

1. 예레미야의 현실 이해

이런 대략적 현실을 예레미야 선지자는 한마디로 이렇게 집약했다. 

“백성이 두 가지 악을 행하였나니 곧 생수의 근원되는 나를 버린 것과 스스
로 웅덩이를 판 것인데 그것은 물을 저축지 못할 터진 웅덩이니라”(렘 
2:13).

선지자가 제시하는 두 가지 악은 하나에 대한 부정과 이에 대한 대안으로 다
른 것을 선택한 것으로 이해된다. 버린 것은 생수의 근원되는 여호와 하나님
이다. 생수는 끊어지지 않는 샘물을 말한다. 양이 많지는 않지만 그러나 계
속해서 물이 나오는 샘물로서 하나님을 비유한다. 
그러나 샘물은 한꺼번에 많은 양을 내어놓지 않기에 어쩌면 답답할지 모른
다. 그러나 계속 나오는 물이고 이를 통해서 목마른 자들이 기갈을 면하
게 
한다. 이런 답답한 양의 물에 만족하지 못하고 이스라엘은 웅덩이를 팠는데 
터진 웅덩이를 팠다. 웅덩이는 물이 귀한 가나안 지역에서 석회를 발라서 물
을 저장하는 흔한 방식인데,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석회에 균열이 생겨서 물
이 새 나가게 된다. 
여기서 주된 대조점은 시간이 지나도 계속해서 물을 내어놓는 샘물과 시간
이 지나면 물을 잃어버리는 웅덩이가 대조가 된다. 처음에는 많은 물을 가
질 수 있을 것 같이 만들어 주는 웅덩이가 가진 매력이 나중에는 오히려 해
를 끼친다. 
이것은 비유이다. 비유는 목적한 메시지를 가진다. 샘물은 하나님 자신임을 
선지자가 밝혔다면 후자의 터진 웅덩이는 문맥적으로 확인해야 한다. 하나
를 부정하고 다른 것을 선택하는 표현이 2장에서 여러 번 반복된다. 

“나를 멀리하고 허탄한 것을 따라 헛되이 행하였느냐”(렘 2:5).
“여호와께서 어디 계시냐 하지 아니하며 법 잡은 자들은 나를 알지 못하며 
관리들도 나를 항거하며 선지자들은 바알의 이름으로 예언하고 무익한 것을 
좇았느니라”(렘 2:8).
“나의 백성은 그 영광을 무익한 것과 바꾸었도다”(렘 2:11).
“네 발을 제
어하여 벗은 발이 되게 말며 목을 갈하게 말라 하였으나 오직 
너는 말하기를 아니라 이는 헛된 말이라 내가 이방 신을 사랑하였은즉 그를 
따라 가겠노라 하도다”(렘 2:25).

또한 직접적으로 현재의 이스라엘(유다)이 추구하는 방향을 지적하는 본문
도 제시된다. 

“여호와가 너를 길로 인도할 때에 네가 나를 떠남으로… 네가 시홀의 물을 
마시려고 애굽 길에 있음은 어찜이며 또 그 하수를 마시려고 앗수르 길에 있
음을 어찜이뇨”(렘 2:17-18).
“처녀가 어찌 그 패물을 잊겠느냐 신부가 어찌 그 고운 옷을 잊겠느냐 오
직 내 백성은 나를 잊었나니 그 날 수는 계수할 수 없거니와 네가 어찌 사랑
을 얻으려고 네 행위를 아름답게 꾸미느냐”(렘 2:32-33).
“어찌하여 네 길을 바꾸어 부지런히 돌아다니느뇨 네가 앗수르로 안하여 수
치를 당함같이 애굽으로 인하여 수치를 당할 것이라”(렘 2:36). 

정리해 보면 현재 유다는 광야에서 이스라엘을 인도하여 주셨던 하나님을 잊
어버리고, 바알 신과 그리고 이방의 세력들 애굽과 앗수르를 의지하려고 한
다. 이에 대해서 선지자 예레미야가 책망하는 메시지를 전한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유다 왕국이 멸망하기 직전에 예언한 선지자로서 예루살
렘의 멸망을 목도하였다. 이런 멸망의 근본적인 원인을 소개하는 것이 초반
부의 그의 메시지이다. 생수이신 하나님을 버리고 대신 이방 신과 이방 세력
을 의지한 것이다. 
그러나 이런 선택은 궁극적으로 부끄러움과 수치를 가지고 오고 형통함을 얻
지 못한다고 선포한다.

“네가 앗수르로 인하여 수치를 당함같이 애굽으로 인하여 수치를 당할 것이
라 네가 두 손으로 네 머리를 싸고 거기서도 나가리니 이는 네가 의지하는 
자들을 나 여호와가 버렸으므로 네가 그들을 인하여 형통치 못할 것임이니
라”(렘 2:35-36).

이제 언약의 하나님 여호와가 주시는 생수를 버리고 세상과 같이 힘과 권력
과 보이는 것을 추구하는 이스라엘이 결국 형통함을 얻지 못한다. 이 말은 
예루살렘이 멸망당하고 결국 바벨론 포로가 된다. 포로의 70년은 이스라엘
의 정화기간이고 사죄의 은총만으로 회복되는 기간이다. 다시금 세워지는 새
언약의 약속으로 마음에 심겨지는 거룩한 법을 소유한 백성으로 회복된다. 

2. 이사야의 시대 이해 

이와 같은 예레미야 선지자의 시대 
이해는 이사야 선지자의 시대 이해와 다
르지 않다. 비유의 표현이 물이라는 동일한 대상을 가지고 이루어졌다.

“이 백성이 천천히 흐르는 실로아 물을 버리고 르신과 르말리야의 아들을 
기뻐하나니”(사 7:6).

이 본문은 북 왕국 이스라엘 왕 베가와 아람 왕 르신이 연합해서 남 왕국 유
다를 침략했던 때에 주어졌던 말씀이다. 북 왕국 이스라엘의 형편을 짧게 평
가한 이사야 선지자의 평가이다. 천천히 흐르는 실로아의 물은 솔로몬 왕이 
등극을 했던 장소인 기혼 샘에서 발원하는 물줄기이다. 이 물은 기울기가 적
어서 천천히 흐르는 물이다. 왕상1:33에 보면 다윗이 솔로몬을 왕으로 세우
라고 나단 선지자에게 부탁한 장소이다. 
여기서 언급된 의도는 북 왕국 이스라엘이 남 왕국과의 유대를 깨뜨리고 당
시의 패자였던 아람과 연합하여서 남 왕국을 무너뜨리는 일이다. 그 당시 침
략 의도는 국제 정치적으로는 북에서 일어나는 신흥 강대국인 앗수르를 대적
하기 위한 연합전선에 남 왕국을 합류시키려는 의도가 있지만 성경은 남 왕
국 유다에 있는 다윗 왕가를 끊어버리려는 의도를 포함시키고 있다(사 
7:6). 이런 모략과 도모
를 한 마디로 말해서 천천히 흐르는 실로아의 물을 
버리고 북 왕국 전체가 르신과 베가를 선택함으로 세상 나라로 기울었음을 
한탄한다. 
그러나 이런 선택은 앗수르의 침략을 불러오고 결국은 멸망을 자초하게 된
다. 그 내용은 “그러므로 주 내가 흉용하고 창일한 큰 하수 곧 앗수르 왕
과 그의 모든 위력으로 그들 위에 덮을 것이라. 그 모든 곬에 차고 모든 언
덕에 넘쳐흘러 유다에 들어와서 창일하고 목에까지 미치리라”(사 7:7)는 말
씀에서 찾을 수 있다. 
북 왕국이 다윗 왕가를 부정하고 이방 세력을 의지하면서 세상적 세력으로 
등장하려고 하는 것을 천천히 흐르는 실로아의 물을 버림이라고 했다면 그 
결과는 유브라데 강의 넘치는 물이 그들을 쓸어버린다고 경고한다. 
북 왕국과 아람 나라의 연합국의 침략을 받은 남 왕국의 아하스 왕도 마찬가
지이다. 그가 하나님을 의지하기보다는 그들 배후에 염려하던 앗수르에 도움
을 청해놓고 있던 시점이었다. 그래서 이사야 선지자에게 징조를 구하지 않
겠다 혹은 하나님을 성가시게 않겠다고 답한다(사 7:12). 이때 이사야는 유
다의 소망은 임마누엘의 메시야의 탄생에 있음을 징조
로 제시한다(사 
7:14). 
실제로 앗수르의 넘치는 물은 그들의 잔인한 군사력으로 유명하다. 결국 북 
왕국을 기원전 722년에 멸망시켰고 또한 남 왕국 마저 아하스의 아들 히스기
야 왕 때에 예루살렘을 포위하게 된다(사 36-37). 이런 상황이 바로 천천히 
흐르는 실로아의 물을 버린 이스라엘과 유다의 태도에 대한 하나님의 엄중
한 심판이다. 넘치는 홍수의 물 앗수르의 세력이 남북 왕국을 위기로 인도한
다. 
다윗 왕권과 그를 잇는 임마누엘의 천천히 흐르는 물의 소망을 버린 북 왕국
과 남 왕국은 앗수르와 바벨론의 넘쳐흐르는 홍수로 멸망을 당한다. 

3. 복음만을 가진 교회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율법과 약속을 가지고 살아가는 백성이었듯이 신약 시
대의 교회는 바로 하나님께서 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만을 가지고 산다. 
복음은 값없는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드러낸다. 그리고 철저히 하나님의 
은혜에만 의존해서 살도록 인도한다. 세상의 돈이나 부귀 그리고 명예와 학
벌이 아닌 복음의 은혜만을 붙잡도록 한다. 

“금과 은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의 이름으로 걸으라
”(행 3:6).

베드로와 요한 사도가 가진 것과 가지지 못한 것을 보여준다. 교회가 가진 
것은 금과 은이 아니다. 교회가 가진 것은 바로 나사렛 예수의 이름이다. 바
로 복음이다. 교회는 자신이 가진 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아야 한다. 
지나가는 길에 얻는 것이 있을 수 있다. 그리고 있다가도 없어지는 것들이 
있다. 누가 빵을 줄 수도 있고, 누가 옷을 던져 줄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런 
것은 있다가도 없어지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 교회가 항상 가지고 있는 것
은 복음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다. 
바로 사도들과 교회가 가지고 있었던 이 복음으로서 교회는 세워져 갔다. 바
울은 신령한 은사인 이 은혜의 복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나누
기 위해서 로마의 교회를 방문하기를 원했다. 그 결과는 교회를 견고하게 만
드는 것이었다.

“내가 너희 보기를 심히 원하는 것은 무슨 신령한 은사를 너희에게 나눠 주
어 너희를 견고케 하려 함이니”(롬 1:11). 

교회의 견고함과 세움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에 의존된다. 복음이다.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다. 유대인이게나 헬라인에게나 마찬가지이다. 시대
와 
장소를 떠나서 언제나 유효하다.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는 로마서 1장 17절의 고백은 삶과 생
명에는 오직 복음에 대한 신뢰만으로 가능함을 고백한다. 
교회에게 주어진 것은 돈이 아니다. 수익이 아니다. 교회는 값없는 은혜와 
은혜를 나누는 것이다. 이런 본질적 자기 이해를 상실해 버릴 때 교회는 세
상과 다르지 않는 존재 양식과 행동 양식을 가지게 된다. 

4. 마치는 말

교회가 가진 복음은 역사 현실 속에서 항상 복음적 존재를 지향해야 한다. 
복음적 존재는 잃어버리는 것이고 낮아지는 것이고 포기하는 것이다. 현재
의 아픔과 상처와 고통을 위로하기 위해서 섬기고 그리고 그곳에서 얻는 힘
과 권력과 지위를 포기할 줄 아는 것이다. 
과거의 역사만을 붙잡고 살기 원하는 것은 복음적 가치가 아니다. 신사참배 
거부나, 삼박자의 축복이나, 전제 정치의 항거 그리고 교회의 대형화 등을 
붙잡고 오늘의 역사 현실에서 기득권의 위치를 주장하는 것은 복음을 상실
한 증거이다. 
복음은 끝없이 잃어버리는 길을 요청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는 것은 우
리에게는 교회에게는 끝없이 솟는 생수가 있기 때문
이다. 모여진 웅덩이가 
아니고 넘쳐흐르는 강물은 아니지만 끝없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생수가 
우리를 온전하게 한다. 
더 낫은 곳을 지향하는 교회적 존재와 섬김의 가치가 오늘 필요하다. 질병
과 가난, 굶주림과 기근 그리고 전쟁과 테러와 학살 또한 재난과 파괴, 탐욕
과 미움, 이혼과 학대 등으로 고통 당하는 현실을 위로하는 일에 참여하는 
교회가 바로 복음을 가진 교회이다. 
실로아의 물을 버리고 창일한 유브라데 하수를 찾지 말아야 한다. 생수를 버
리고 터진 웅덩이에 소망을 두지 않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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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개혁신보
기독교개혁신보사는 대한예수교장로회(합신)의 기관지로서 바른신학, 바른교회, 바른생활이란 3대 개혁이념을 추구하기 위해 설립되었습니다. 본사는 한국 교회의 개혁을 주도하는 신문이 되기 위하여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