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게인 1907’전에 예배회복 필요하다
최재호 기자_뉴스엔조이
최근 한국교회의 이슈는 ‘어게인 1907’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때의
부흥이 우리 시대에 재현될 것이라 믿고 그렇게 기도하고 외치며 프로그램
을 준비하고 있다. 상당수 교단과 단체, 기구가 참여하고 점점 분위기를 띄
워가고 있다. 이른바 평양 대부흥의 평가도 엇갈리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
만, 긍정적으로만 생각한다 해도 과연 이것이 가능한 일일까?
평양 대부흥 평가 정확해야
안타깝지만 그것은 아니다. 하나님의 시기와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의도에
달린 것을 우리 인간에게 맞춰달라고 간구하는 일은 과연 하나님 나라에 대
한 열심이란 용어로 정당화 될 수 없다. 그리고 그것이 프로그램과 캠페인
을 통해 이뤄질 수도 없다.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의 때에 가능한 일이며 인
간의 열정이나 갈망과 관계없다. 단 하나님에 의해 시작된 일이 인간에게 열
망과 열정을 부으시는 것으로 이어진다면 다른 문제이
다.
지금의 한국교회의 열정이 하나님으로부터 시작된 것인가? 하나님의 말씀이
바르게 선포되는 예배의 회복이 전제되지 않은 가운데 이런 열심과 정열은
참된 부흥으로 이어질 수 없다. 일말의 가능성까지 배제하지는 않지만 하나
님의 바른 계시가 참 예배와 부흥의 전제란 점은 분명하다.
예배는 하나님의 계시에 대한 인간 편의 반응이다. 주지하듯, 하나님의 계시
에는 일반계시와 특별계시가 있다. 사실 일반계시란 것도 특별계시의 조명
과 인도가 없다면 그리고 부패한 인간이 하나님을 바르게 인식할 수 없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특별계시를 통해서만 하나님을 인식(지)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 옳다.
우리가 성경 말씀을 통해 계시된 하나님을 인식하게 될 때 그 하나님의 어떠
하심(성품), 창조와 구속사역, 섭리와 은혜, 심판과 권능을 통해 우리는 하
나님이 예배와 경배받기에 합당하신 분임을 깨닫게 된다. 즉 계시된 하나님
의 실존 앞에서 피조물로서, 또 구속받은 죄인으로서, 하나님의 자녀로 입양
된 은혜받은 자로서 감사와 영광을 그분께 돌리게 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예배의 가장 중요한 요소는 설교(하나님 말씀의
선포)인 것이
다. 하나님께서 스스로를 인간에게 계시하신 말씀이 없이는 하나님을 찾을
수도 없고 알 수도 없으며, 당연히 예배로 나아갈 수도 없는 까닭이다. 우리
시대 교회에는 말씀과 성령의 인도와 무관한 ‘인간의 종교적 열정’으로 충
만하다. 예배를 뜨겁게 드려야 한다는 전제에서 열심과 열정을 강조한다. 하
지만 말씀의 인도와 지시 없는 그 어떠한 행위도 죄악이며, 우상숭배에 다
름 아님을 기억해야 한다.
오늘날 강단에서 바른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지 않는 것은 우리 시대 참된
예배가 사라지고 있다는 반증으로 볼 수 있다. 개혁자들은 이런 행위에 대
해 ‘우상숭배’라고 규정한 바 있다. 말씀의 기준을 따라 하지 않는 모든
것이 잘못이고 죄로 성경은 규정하고 있기도 하다.
즉 예배란 우리편의 행위적 열심이나, 엄숙한 분위기도 나의 종교적 감흥도
아니며 따라서 내가 열심히 노력했다고 해서 하나님께 바른 예배를 드렸다
고 착각해서도 안 되는 것이다.
예배가 회복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하나님께서 주신다면 우리에게 바른 설교
가 회복될 것이다. 그래서 말씀 앞에서 두려워 떨며 복음 가운데로 나아가
는 일
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사실에 감격하여 기쁨과 희락이 넘침을 경
험하게 된다. 그런 까닭에 창조사역과 구속사역 가운데 드러난 하나님의 영
광이 교회 가운데 예배 중에 충만하게 선포되고 드러나지게 되는 일이 일어
나야 한다. 이것이 참된 예배의 회복의 전제이다.
그러나 우리시대에 참된 설교가 사라지고 바른 성경의 사역자가 희귀한 것
은 우리 시대에 참 예배의 회복도 참 부흥도 요원하다는 반증이 아닐까. 하
나님의 교회는 다수가 아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소수의 남은 자들에 의해
계승되어지는 것이 성경의 증거다.
참된 예배회복부터 우선돼야
우리는 참 예배를 통해 이 땅에 소망없음을 인식하고 천국을 대망하는 자리
로 나가야 한다. 우리시대 참된 예배와 부흥을 열망하지만 그 일이 이뤄질
가능성이 없음을 보면서 우리는 우리의 부족과 무능한 현실 앞에 그리스도
의 위로와 공로를 기대할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