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안식일과 주님의 부활
(막 16:1-7)
이광호 목사_실로암교회, 홍은신학연구원 교수
예수님의 부활은 사망에 대한 승리이자 파괴된 안식의 의미를 회복했음을 선
포하고 있다. 엿새 동안의 창조 후 하나님께서 안식하셨다는 사실은 피조 세
계로 인해 하나님께서 영광 받으심을 보여주었던 것이다. 그러나 사탄의 유혹
에 빠진 인간들은 그 의미를 파괴하는 범죄에 이르게 된다.
이제 하나님의 아들이신 메시아가 인간의 몸을 입고 십자가를 지심으로 사탄
과 그로부터 들어온 사망을 이기시게 된다. 십자가를 지시고 죽으신 주님께
서 무덤에 계심으로 파괴된 안식의 의미를 회복하게 되었다. 신약시대에 주일
을 지키는 의미는 그것과 직접 연관이 있다. 주님의 부활은 새로운 세계의 회
복을 의미하는 놀라운 의미를 지니고 있다.
1. 안식 후 첫날 여인들이 먼저 무덤을 방문하게 된 이유
안식 후 첫날 새벽 막달라 마리아,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 살로메 등 여러
명의 여인들
이 예수님이 묻힌 무덤을 찾아갔다. 그들이 무덤을 방문했던 것
은 주님의 부활을 믿었기 때문이 아니라 도리어 믿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여인들이 무덤을 방문한 이유는 예수님의 시신을 향품으로 처리하기 위해
서였다. 그들이 예수님의 시신에 향품으로 처리하려했다는 사실은 그의 부활
을 믿지 않았다는 증거가 된다.
그렇다면 그 여인들이 남성들보다 신앙이 더 좋아서 먼저 무덤을 찾을 수 있
었던 것일까? 그것은 단순히 그렇게 말할 수 없다. 여인들이 새벽 일찍 예수
님의 무덤을 방문했던 것은 남성들에 비해 운신하기가 용이했기 때문이었다.
그때도 여전히 비상 사태 중이었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더구나 로마 군인
들이 예수님의 무덤을 인봉하고 지키고 있는 터였다.
그러므로 그 여인들은 무덤을 향해 걸어가는 동안 그 무덤 입구를 막고 있는
큰 돌을 어떻게 옮기고 무덤 안으로 들어갈 수 있을까 서로 염려했다. 로마
군인들에게 간청을 하면 과연 들어줄지 의문이었던 것이다. 그런 어려운 여
건 가운데서도 그들이 그렇게 하려고 했던 것은 그들에게 부활 신앙이 있었
기 때문이 아니라 예수님에 대한 사사로운 인정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들이 무덤 앞에 도착했을 때 그 입구를 막고 있던 커다란 돌이 이
미 옮겨졌고 무덤은 열려 있었다. 순간 그들은 상당히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예수께서 부활했다는 사실 때문이 아니라 누군가 예수님의 시신을 도
굴해 갔을 것이라는 염려 때문이었다.
그렇지만 예수께서는 십자가를 지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약속하신 대로 부활하
셨다. 부활하신 주님은 굳이 무덤의 돌문을 열지 않고도 자유롭게 그냥 나오
실 수도 있었다. 나중에 주님께서 제자들이 모인 장소에 문을 열지 않고 출입
하시던 사실을 보면 그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무덤을 막고 있
던 돌문을 열고 찾아온 여인들에게 빈 무덤 안을 보여주셨다.
그것은 실상 그 여인들에게 뿐 아니라 그 이후의 모든 성도들에게 보여주신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이다. 그것은 주님의 부활을 알리는 웅장한 나팔 소리와
도 같다. 돌문을 열고 빈 무덤을 개방하여 보여주심으로써 주님께서는 자신
의 부활을 세상에 대한 승리로써 선포하셨던 것이다.
2. 마지막 안식일의 의미와 주님의 부활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신 후 처음 맞
는 안식 후 첫날은 사탄에 대한 승리가
선포된 중요한 날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신앙은 바로 그 날 그 사건에 전적으
로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날은 특별히 오늘날의 주일과 직접
연관된다. 교회는 안식일 다음 날을 주일로 지키며 주님께서 선포하신 승리
의 부활을 공적으로 기념하고 있다. 그것은 역사 가운데 사역하셨던 주님의
승리를 현재의 역사 가운데서 지속적으로 기억하는 의미를 지닌다.
오늘날까지 주님의 교회가 안식 후 첫날을 주일로 지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
를 통해 승리가 선포된 그 날을 말씀을 좇아 언약 가운데 기억하고자 함이
다. 그렇지만 안식일과 주일에 관한 논쟁은 교회사 가운데 끊임없이 지속되
어 온 것이 사실이다. 그러므로 오늘날에 있어서도 여전히 구약의 안식일을
고집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신약의 주일조차도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주
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주일은 오늘날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언약적
의미를 지니고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무덤에 계
시던 그 기간 역시 매우 중요한 사역의 연속이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주
님께서는 무덤에 계시는 동안 지옥을 방문하여 영원한 승리를 선포하심으로
그의 사역이 지속되었던 것이다. 우리가 분명히 기억해야 할 점은 주님께서
무덤에 계시던 그 날이 안식일이었다는 사실이다.
천지 창조 후 하나님께서 피조 세계를 통해 영광을 누리시던 안식의 의미가
파괴된 것을 주님께서는 무덤에 계시는 기간 동안 그 의미를 완전히 회복하셨
다. 그것으로 인해 천지 창조 때 하나님께서 누리셨던 그 안식의 영원한 의미
를 회복하셨던 것이다. 사탄의 유혹에 빠져 인간이 파괴했던 하나님의 안식
의 의미를 주님께서 그 마지막 안식일 날 무덤에 계심으로써 승리의 회복을
하셨던 것이다.
주님의 부활은 사탄으로 말미암아 이 세상에 들어온 사망의 위력을 깨뜨린 놀
라운 사건이었다. 하나님의 자녀들마저도 사망의 능력 아래서 죄에 눌려 살았
지만 이제 그 문제가 해결되었다. 그것은 곧 파괴된 안식의 영원한 회복을 의
미한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죽음을 통해 영광을 회복하신 것이다. 그러므
로 안식 후 첫날 주님께서 부활하신 날은 새로운 세계가 열린 날이다. 앞에
서 언급한 대로 오늘
날 우리가 안식 후 첫날을 주일로 지키는 것은 바로 그
의미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 것이다.
3. 천사의 증언
예수께서 묻힌 무덤을 찾아가는 여인들의 손에 들려 있던 그 향품은 이제 필
요 없게 되었다. 의외의 상황으로 인해 그들이 빈 무덤 앞에서 놀라 당황하
고 있을 때 흰 옷을 입은 천사가 나타나 그들에게 말했다. 인간의 모습을 한
그 천사는 나사렛 예수께서 부활하셨으며 무덤 안에 있지 않다는 것을 알려
주었다. 그는 빈 무덤 안을 보여 주며 그가 거기 계시지 않음을 확인시켜 준
것이다.
그리고 천사가 그 여인들에게 이야기했다. 이제 돌아가서 다른 제자들에게 주
님께서 부활하셨음을 알리라고 말했다. 또한 주님의 제자들이 갈릴리에 가게
되면 그곳에서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게 되리라고 했다. 제자들이 고향 갈릴리
에 돌아가면 그곳에서 주님을 뵙게 될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이제 곧 갈릴리로 되돌아갈 것이다. 그들은 주님이 계시
지 않은 상황에서 더 이상 예루살렘에 머물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
다. 결국 그들은 고향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제자들이 먼 길을 걸어 갈
n릴리에 도착하려면 오랜 시간이 걸리겠지만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시공간을 초
월하여 그들보다 먼저 갈릴리에 도착하시게 된다.
“가서 그의 제자들과 베드로에게 이르기를 예수께서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
로 가시나니 전에 너희에게 말씀하신 대로 너희가 거기서 뵈오리라 하라”
(막 16:7).
4. 교회의 기초가 된 제자들
예수께서 제자들을 갈릴리에서 만나겠다고 하신 약속은 십자가를 지시기 전
에 이미 말씀하셨던 내용이다. 여기에서 말하는 ‘거기’란 일차적으로 갈릴
리의 한 산을 지칭하고 있다. 그러나 산악 지대인 갈릴리 지역의 어느 산에
서 만난다는 말인가?
위 본문에서 말하는 ‘거기’는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산상수훈을 주셨던 바
로 그 산이었을 것이다. 그에 대한 증거가 될만한 구절이 마태복음에 기록되
어 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그 산에서 제자들을 만나심으로써 맨 처음 그
들을 부르시고 교훈하셨던 산상수훈의 의미를 되새기도록 권면하셨을 것이다.
“열한 제자가 갈릴리에 가서 예수의 명하시던 산에 이르러 예수를 뵈옵고 경
배하나 오히려 의심하는 자도 있더라”(마 28:16-17).
이제 주님의 제
자들은 세상과 맞서 싸워야 할 교회의 기초가 된다. 그러므로
주님의 제자들이 앞으로 세워지게 될 교회 가운데서 세상에 대해 어떻게 싸우
며 대처해야 할지 산상수훈에 대한 언약적 측면을 다짐해 둘 필요가 있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