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들이 갈제”_김용주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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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들이 갈제”

마태복음 28장 11-15절 

김용주 목사_소식교회

시대가 많이 밝아졌는지 옛 중앙정보부, 국가 안전기획부 그리고 지금 국정원
에 이르기까지 그 비리가 일부 폭로되고 있습니다. 많은 죄가 조작되고 그 사
슬에 얽혀져서 박해를 받고 죽어간 인사들이 무수하였던 사실을 봅니다. 국가
의 기관이 타락해도 그렇거니와 교회 정치가 타락해도 같은 현상이 나타나고 
그보다 더한 상황이 나타납니다.
본문에서도 꼭 같이 빈 무덤을 보지마는 경건한 여인들이 자기들이 속한 사도
들과 교회로 가는 반면에 파수꾼 중 몇은 당시 타락한 교회의 지도자들인 대
제사장들을 찾아가서 자초지종을 고합니다. 곧 이어서 타락한 교회 회의는 세
상에도 없을 법한 조작극을 연출해 냅니다. 그들이 가진 지식과 부요를 가지
고 거짓을 창출해 냅니다. 여기서 부활의 은폐 조작과 신실한 증인들의 증언
이 영적 전투처럼 전개됩니다.

1. “여자들이 갈제 파수꾼 중 몇이 성에 들어가 모든 된 일을 대제사장들

게 고하니 그들이 장로들과 함께 모여 의논하고 군병들에게 돈을 많이 주며 
가로되 너희는 말하기를 그의 제자들이 밤에 와서 우리가 잘 때에 그를 도적
질하여 갔다 하라 만일 이 말이 총독에게 들리면 우리가 권하여 너희로 근심
되지 않게 하리라 하니”(마 28:11-14).
무덤을 경비하던 군인들이 돈으로 매수되었습니다. 그리고 제사장들의 뜻에 
따라 거짓말을 했을 것입니다. 이런 일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일입니다. 
그 뿐 아니라 사건 자체가 보여주고 있는 내용 그대로입니다. 그 경비병들은 
그들이 파견된 목적이 그리스도의 시체를 지키는 것이요 그런 낭설을 막는데 
있었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리스도께서 삼일 후에 다시 살아나셨다는 소문이 퍼지는 것
을 가장 두려워하는 제사장들의 속을 빤히 들여다보고 있었습니다. 여기서 저
기서 그리고 온 사방에서 이득을 보는데 재미를 붙인 사람은 일단 그들이 수
행해야 할 근면의 생활에서 열매를 상실하거나 자기 생활에서 만족하지 못하
면 현금을 갈취하는 새로운 방법을 짜내기 마련입니다. 
마태는 “파수군 중 몇이 성에 들어가”라고 기록
합니다. 그런데 나머지 군인
들과는 상관없이 재치 있는 몇 명에서만 그런 계획을 생각해 낸 것인지 아니
면 그들 모두를 대표해서 간 것인지에 대해서는 알 수 없습니다. 군인 몇이 
전체를 대표했을 것이 더 가능한 것 같습니다. 뒤에 마태가 기록하듯이 위증
에 대한 보상을 군인들 전체가 받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에 대한 잔인하고 악독한 처사가 제사장 전체의 음모였다는 점은 분
명합니다. 그들이 죄악에 관련되어 있다는 점을 빤히 들여다보고 있었기 때문
에 그들의 못된 양심에 압력을 가해서 돈을 우려먹자는 속셈이었습니다. 극악
한 범죄자들의 경우가 다 그렇지만 제사장들 편에서는 양심의 가책을 받고 있
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의 비행을 감추기 위해 군인들에게 거액을 주어 매수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버림받은 자들은 일단 죄악에 굴러 들어가기 시작하면 하나님께 한 잘못은 생
각지 않습니다 오히려 사람들 앞에서 자신들의 수치를 감추려 들기 마련입니
다. 그렇기 때문에 갈수록 새로운 사악에 말려들고 맙니다. 이 비참한 사람들
은 거액의 돈으로 병사들을 매수합니다. 그 뿐 아니라 만약 그들의 죄악이 탄
로 나게 될 
경우에는 자신들의 명성과 생명까지도 위험에 내맡깁니다. 
그들의 고집불통은 죄악의 산더미를 쌓기 전에는 물러서지 않겠다는 심산이었
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무엇 때문에 그렇게 많은 비용을 들여가면서 위험한 
일을 했겠습니까? 그리고 예나 지금이나 바른 신앙을 버리면 사람도 모이고 
돈도 모이는 모양입니다. 오늘날도 이단들이나 미신 성을 지닌 자들에게 넘치
는 수요가 공급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헛된 방식으로 인원이 동원되고 자금
이 쓰이는 일이 허다합니다.

2. “군병들이 돈을 받고 가르친 대로하였으니 이 말이 오늘날까지 유대인 가
운데 두루 퍼지니라”(마 28:15).
이렇게 군인들의 위증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의 부활 사건이 매장되었습니
다. 헛된 거짓말이 판을 치게 된 것은 하나님께서 유대인들의 눈을 멀게 하셨
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된 것은 유대인들에게는 하나님이 내리신 최후의 재앙
이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선택한 잘못 때문에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셨다
는 사실을 기만하였습니다. 
오늘날도 세상은 자발적으로 사탄의 협잡을 반겨하는 조롱의 희생제물이 되고
자 합니다. 눈만 제대로 뜨고 있었더라면 
길게 조사해 볼 필요도 없는 그런 
사건이었습니다. 무장한 군인들의 말이 그리스도의 몸을 민간인들이 그것도 
겁에 질려 있던 비무장의 소수 민간인들이 훔쳐갔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믿
을 수 있겠습니까? 
그들은 그때 잠들어 있었다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꼭 도둑맞았다고 
만 말할 수가 있겠습니까? 제자들이 수상했다면 왜 그들을 체포하지 않았습니
까? 그들은 왜 당장 날벼락을 때리지 않았습니까? 그들이 상대하고 있는 총독
이 정직하고 분별력 있었다면 그들을 그냥 두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죄악을 추적하지 말고 그냥 내 버려 두도록 한 것은 다 빌라도의 
묵인 하에서 그렇게 된 일이었습니다. 이것은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속 재판관들은 진실이 위증과 악의의 공격을 받아도 별로 신경을 쓰지 않습
니다. 아니 불쾌한 결과가 오지 않을 것 같으면 악당들과 합세하는 그들입니
다. 하나님께서 거짓 소문이 떠돌아다니며 자기 아들의 영광을 말소하는 것
을 인내하셨다는 것은 믿기 어려워 보이는 일이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우리
는 그분의 정당한 보응에 마땅한 경의를 표해야 합니다. 그들은 헛되고 시시
한 
거짓말에 창피하게 말려든 민족이었습니다. 
그러기에 구름이 빛을 가리우는 처사를 받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유대인들 거
의 모두가 거침돌에 넘어졌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의 눈은 흐려질 수밖
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사탄에게서 미혹의 잔이 자기들에게 퍼부어지는 것을 
보지 못하고 만 것입니다. 한마디로 이사야의 예언(사 6:8)대로 그들은 온갖 
종류의 광기에 내던져진 바 되었습니다. 
그런 점에서 자신들의 구속자를 멸시한 백성들에게서 구원의 소망을 빼앗아 
버리려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것이 그들에게 부과된 형벌이 아니라면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그러한 어처구니없는 사실로 기만당하게끔 허락하지 않
으셨을 것입니다. 
오늘날도 악인들의 고삐가 풀리고 세상이 더욱 더 악화되어 가는 악순환의 연
속입니다. 이렇게 되어 가는 것은 세상의 배은망덕에 대한 살아 계신 하나님
의 처벌 때문입니다. 어느 시대에나 바른 신앙이 중요합니다. 거기에서 바른 
교회와 바른 생활이 나옵니다. 그리고 그 시대 안에서 볼지라도 바른 신앙이 
그들 개개인이나 그 교회의 부가 가치입니다. 바른 신앙으로만이 우리 모두
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습니다.